*본 칼럼은 월간 폴리피플 5호(2009년 12월호)에 개재되었습니다.

박혜경_편집국장

세종시 수정의 칼을 빼든 것은 정권의 명운(命運)을 건 것

이명박 대통령은 가만있는 세종시 문제를 들쑤셔놓아 스스로 족쇄를 차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11월 27일 TV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세종시 백지화를 가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대통령은 “그냥 넘어가면 역사에 떳떳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지난 대선시 세종시 원안 추진을 약속한 데 대해선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혼란이 된 데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강조했다.
한나라당 내 친박과 야권은 전면전을 치룰 태세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 공식화에 대해 “할 은 이미 다 했고 입장에 변한이 없다”고 말했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확고히 한 것이다.
민주당 전세균 대표는 “기대보다 실망이 크다”며 “국민들의 납득이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민주당은 선진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과 공조해 장외투쟁 돌입을 예고하고 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대통령과의 대화’ 직후 가진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의 대답을 듣고 실망과 좌절, 분노를 느낀다”며 결사항전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이날 자정 즈음 선진당 의원 전원은 의원직 사퇴를 결의했다.
이미 2007년과 헌재의 위헌판결 후 2005년 두 번하여 여야 합의를 거쳤고 이 대통령 자신도 대선 후보 시절엔 대통령 공약으로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대국민약속을 했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 후에도 여러 차례 이를 확인했다.
그러나 지금 행복중심복합도시 세종시에 대해 ‘수정’의 칼을 빼든 것은, 이 대통령에게 정권의 명운을 건 도박이다. 사실 말이 ‘수정’이지 행정부처 이전이라는 핵을 모두 빼버린 ‘전면 백지화 정책’이다.
성공하면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위대한 선택으로 추앙을 받겠지만, 실패한다면 그것은 ‘국민과의 약속을 깬’ 거짓말 정권으로 스스로 몰락의 길을 자초하는 대재앙이 될 무서운 도박이다.

수정론을 들고 나왔던 초반의 민심은 5.5 대 4.5 정도로 수정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의 ‘원안고수’ 발언과 정부의 세종시 추진이 갈피를 잡지 못하자 이제는 7 대 3 정도로 ‘원안사수’가 우세해졌다.
민심의 역전지세는 세종시 정책문제에 대한 ‘입장’으로 끝나지 않고 있다. 국민적 ‘행동’으로 돌입하면서 국민대저항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국민들은 이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방침을 민심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우선 한나라당부터 위태롭다.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선전포고에 박근혜 전 대표도 결사응전으로 맞섬으로서 한나라당은 둘로 쪼개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반대 목소리는 친박만이 아니라는 점도 집권여당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정몽준 대표를 제외한 당지도부에서 세종시 수정 반대 목소리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당정청 불협화음을 아예 공개하고 있는 듯하다. 집권 2년밖에 안 됐고 내년 커다란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도 집권여당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아 보인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지역 역차별’ 문제가 터져버렸다.
애초 세종시를 ‘충청지역이기주의’ 쯤으로 몰아붙여 충청을 고립시킴으로써 자신의 기반인 수도권과 영남권을 확실히 틀어쥘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이 대통령에게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내년 지방선거를 대비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충청 고립화전략’은 실패했다. 충청은 물론이고 이 대통령의 수정안이 타 지역에 있는 기업과 연구기관 등을 모두 세종시로 옮기려는 것임을 아는 순간 전국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고 있다.
충청 대 비충청, 또는 수도권 대 비수도권 등의 신지역주의 갈등 양상이 한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다름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다.
내년 지방선거는 이명박 대통령 중간평가인데, 지금 추세라면 아마 한나라당의 대패는 불 보듯 뻔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기업프랜들리’라며 국민들의 반발에도 불구, 부자감세, 출자총액제한 폐지 등 각종 재벌특혜를 주었고 세종시 이전 인센티브까지 선물을 한다발 안겨주었지만, 대기업들은 정작 세종시 이전에는 시큰둥한 반응뿐이다.
그렇다고 충청을 완전 배제한 것도 아니다. ‘이 나라엔 충청밖에 없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로 여기저기서 좋은 선물보따리를 한아름 충청으로 옮기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다. 그럼에도 행정부처 이전이 백지화된 충청은 다른 어떤 선물도 눈에 안 찬다. ‘우리가 핫바지냐’는 또다시 핫바지론이 나오고 있다. 충청에서의 MB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은 ‘반MB 총체적 투쟁’을 선언한 상태다. 진보정당 뿐만 아니라 선진당, 친박연대까지 모두 ‘세종시 연대’를 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박근혜와 사실상 세종시 원안사수 연대를 구축하면서 ‘박근혜까지 포함한 反MB연대’의 그림을 세종시 정국에서 구체화하려 하고 있다.
이처럼 세종시 수정 국민저항은 정당, 정파, 이념을 초월해, 지역을 초월해 전 국민적으로 불어오고 있다. 이 대통령의 세종시 올인(All-In)은 이처럼 엄청난 국민저항에 직면하고 말았다.
집권 1년차에 쇠고기 저항으로 레임덕 위기에 휩쓸렸던 이명박 정부가 집권 2년차에 다시 조기레임덕이 찾아올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이 퍼지고 있다. 세종시 도박이 ‘조기레임덕’이라는 정권 파산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 그저 위태롭기만 하다.

MB, 박근혜 죽이려다 박근혜 공룡 만들어

이 대통령의 세종시 올인으로 생긴 문제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적, 전 지역적 반발정서를 심화시켰다는 것뿐만 아니라 차기 대선주자 박근혜의 지위를 공고히 해 줬다는 것은 MB에게는 가장 뼈아픈 치명적 실수가 아닐 수 없다.
미디어법 이후로 불안했던 박근혜 전 대표를 공고히 키운 것은 다름아닌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카드다. 이 대통령에 대한 갈수록 커지는 국민저항은 MB와 대척점에 자리매김한 박근혜에 대한 지지로 돌변했다.
‘원안고수’ 발언 초기 당시 ‘한나라당에서 탈당하라’는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던 보수의 비난이나 TK의 정서적 반발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비난여론은 가라앉았다.
지금은 충청은 물론이고 동요조짐이 일었던 영남과 50~60대, 한나라당층은 더욱 굳건해졌을 뿐만 아니라, 야당표까지 잠식하고 있다. 민주당층, 호남층과 20~30대, 부동층인 40대까지 박근혜 지지로 쏠림현상이 커지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투쟁에서 입지를 공고히 다졌듯이 박근혜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과 가장 첨예한 투쟁을 벌여 현존하는 정치인 중 가장 ‘야당’스러운 대선주자 입지를 구축했다. ‘투사’ 박근혜는 ‘야당보다 더 야당’ 다운 정치인이 돼버린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을 정면으로 승부수를 띄우면서 단지 충청표냐 수도권표냐의 표계산만 한 것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자신과 대척점을 세우면서 집권을 꿈꾸는 박근혜 대항마로 ‘정운찬과 정몽준 카드’를 내놓았다. 세종시 정국은 MB의 박근혜 대항마 카드를 내놓을 더없이 좋은 기회와 명분이었다.
그러나 두 鄭씨의 대선주자 앞길은 그다지 밝지는 않다. 피기 전에 시들어버린 꽃과 같은 신세다.
정운찬 총리는 총리 청문회에서 부터 ‘깨끗하고 능력있는 경제학자’란 과거의 이미지는 온데 간데 없고 ‘비리의 집합체’로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게다가 이번 세종시 정국에서는 ‘MB 꼭두각시’ 이미지만 각인시키고 말았다.
나라를 맡을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지도자가 아닌 단지 대통령의 심부름꾼, 지위만 높은 무능력한 인사라는 이미지만을 심어주었다. 게다가 고향에선 ‘충청의 배신자’로 낙인마저 찍혀 자신의 지역기반마저 상실했다.
일각에서는 정 총리의 ‘조기낙마설’까지 거론되고 있다. 세종시 수정의 ‘수장’으로서 세종시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할 경우 정 총리는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세종시 수정이 실패하면 여권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도 정 총리를 ‘팽’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 여권의 인식인 듯하다. 이른바 ‘용도폐기’다. 한때 ‘박근혜 책임론’이 일자 ‘정운찬 책임론’으로 여론의 역풍까지 맞게 된 ‘세종시 전도사’ 정 총리의 운명은 세종시의 성패로 갈린다.
정몽준 대표도 힘을 제대로 못 쓰고 있다. 10.28 재보선 패배로 정몽준 리더십의 한계가 역력히 드러났고, 세종시 정국에서 당과 협의 없이 청와대나 언론에 대고 개인 의견을 공개하는 등 한나라당 내에서 정몽준에 대한 불만과 반감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정 대표는 아직 정부 수정안도 나오기 전에 벌써 당대표로서 ‘수정 찬성’ 입장을 밝혀버렸다. 당내 친박과의 갈등도 엄연히 존재하고 세종시 태스크포스(TF)팀과도 협의를 거쳐야 함에도 정 대표는 불쑥불쑥 자신의 입장을 입밖으로 내놓고 있다. 친이계 안상수 원내대표와 갈등은 이제 새로운 뉴스거리도 아닐 만큼 갈등의 골이 깊다.
세종시 정국에서 정 대표는 당론을 ‘수정’으로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분란만 일으키고 말았다. 이 때문에 10.28 재보선 패배, 세종시 실패 등의 책임을 물어 정몽준 지도부 교체설도 떠돌고 있다.
‘2월 또는 3월 조기전당대회설’이 꺼지지 않고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MB의 뜻을 당에 관철함으로써 차기 대선주자로 부상하려던 정몽준 대표의 꿈은 현재로서는 파도에 부서지는 흰 파도 같은 신세가 된 듯하다.
결국 세종시 정국으로 박근혜 대항마를 내세우려던 이 대통령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가고 있다. 이제 박근혜를 막아설 대선주자는 현재로서는 없다. 세종시 정국이 그나마 가능성으로 존재했던 대항마를 모두 사라지게 만든 블랙홀이 되었다.
차기 대선을 ‘박근혜 독식’ 구도를 만들어버린 것이 다름아닌 세종시 정국이다.
한마디로 이 대통령은 ‘박근혜 죽이기’를 하려다가 되려 ‘박근혜 공룡’만 만든 꼴이 되어버렸다.

박근혜, 정권재창출?… 아니라 ‘정권교체’

문제는 박근혜가 결코 ‘포스트 MB’가 아니라는 점이다. ‘MB계승’이 아니라 ‘MB차별화’다.
‘야당스러운 여당 주자’ 박근혜에 대해 국민들은 ‘야당 주자’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때문에 민주당은 물론 진보진영, 20~40대 젊은 층에서조차 박근혜 지지도가 높다.
이래서 박근혜의 집권은 ‘정권재창출’이 아니라 ‘정권교체’가 될 수 있다. 여당이면서 여당이 아닌 박근혜에게 국민들은 ‘안정과 변화’를 동시에 느끼는 듯하다. 여당과 야당을 동시에 느끼면서 ‘박근혜의 정권교체’에 각 정파들은 한발 담그기 경쟁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욕망의 정치’와 ‘가치의 정치’ 중 욕망을 택했다. CEO 대통령다운 발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욕망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여야 합의를 지키는 ‘가치’를 버리고, 기업도시, 녹색도시, 교육과학비즈니스벨트 등 이름도 휘황찬란한 욕망의 카드를 제시했지만 아직은 ‘빈 카드’다. 욕망의 크기만 잔뜩 키워놓고 주는 것은 빈껍질뿐이니 충청의 불만은 갈수록 쌓인다. 그러니 우선 ‘남의 것’이라도 빼돌려 ‘막아보자’는 식이니 또 다른 불만은 불만의 꼬리를 이어간다.
폭발하는 국민저항을 조직화시키고, ‘여당形 정권교체’를 꿈꾸는 박근혜를 손 댈 수 없이 크게 만들어버린 세종시 정국… 이 대통령은 무엇 때문에 정권의 운명을 걸면서까지 이런 괜한 부스럼을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