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K, 위대한 탄생의 정신과 방법은 어디로 갔나?

4.27 김해을 보궐선거 관련,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후보단일화 방식을 놓고 엄청난 홍역을 치르고 있다.

4월 초까지는 여론조사와 국민참여경선의 반영 비율 문제와 시민단체의 중재안 수락 여부를 놓고 극심한 홍역을 치렀다.

4월 6일 곽진업 민주당 후보가 국민참여당이 주장한 ‘여론조사 100% 반영’을 수락한 이후, 이틀간은 여론조사 방식(양자 대결이냐 민노당 포함 3자대결이냐, 단일후보 적합도냐 對김태호 경쟁력이냐 등)과 대표 경력(노무현 정부가 들어가느냐 않느냐)을 둘러싸고 극심한 홍역을 치렀다. 이는 4월12일 단일후보가 발표된다 하더라도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다. 두 정당들과 지지층의 가슴에 깊게 파인 감정의 골이 쉽게 메워지지 않을테니까.

단일화 과정에서 국민참여당 측이 외친 볼 맨 목소리의 핵심은 민주당과 시민단체가 제시하는 경선 룰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며, 중재자로 나선 시민단체가 너무 편파적이라는 것이었다. 단적으로 4월초 시민단체의 최종 중재안을 거부한 국민참여당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유시민 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저희의 큰 잘못은 강자의 횡포에 굴종하지 않은 것”이며, “민주당이 요구하는 현장투표는 ‘묻지 마 동원선거’, 돈으로 동원선거를 하는 것”이며, “부당하고 불합리한 경선에 맞선 것을 정략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이 세상에 정의가 어디 있느냐”고 항변 하였다. 유대표는 시민단체에 대해서도 “공정성 잃었다” “시민단체가 옳고 그름의 잣대를 잃고 무조건 단일화만 성사시키면 된다는 생각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물론 민주당 측의 볼멘 목소리는 ‘협상은 상대가 있는 것인데, 국민참여당은 일방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룰만 고집(떼쓰기) 한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국민참여당이나 민주당이나 공히 경선 룰이 불공정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4월6일 곽진업 후보의 전격적 양보 이후에도, 4월 8일 여론 조사 방식과 문항에 대한 최종 합의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정의는 제3자가 가릴 문제

유럽 전역에 세워져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 동상의 상징물은 세 개다. 공평무사의 상징으로서 눈가리개(이것이 없는 동상도 적지 않다), 단호한 결단이나 처벌의 상징으로서 칼, 균형의 상징으로서 천칭 저울이다. 이 중 핵심은 천칭 저울이다. 이 저울의 좌측과 우측에는 각각 원고와 피고, 죄와 벌, 성과와 보상, 기여/부담/의무와 권리/이익/혜택 등이 올라갈 것이다. 존재(정치사회적 약자나 강자)와 적정한 권리(경쟁 기회)도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천칭 저울의 한쪽에 올라가는 당사자들은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절대로 균형점을 알 수 없다. 이 균형점을 알 수 있는 자는 정의의 신이다. 그런데 이 신이 없는 상황에서 누가 판관 대리를 할 수 있을까? 현실적 최선은 국민 다수나 깨어있는 시민들의 균형감각이나 여론(상식) 일수밖에 없다. 현실적 차선은 쌍방이 합의하는 현명한 판관이나 중재자 일 수밖에 없다. 요컨대 본질적으로 저울질의 문제인 정의(공정, 공평)는 치열하게 다투는 당사자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 다수 국민이나 중립적인 제3자가 판단할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투명 없이 정의를 얘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투명하면 다수가 지켜보기에 제멋대로 계량을 할 수도, 당사자들이 억지를 부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이명박 정부의 공정 사회가 허구인 것은 바로 공정의 핵심인 투명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솔로몬 왕의 재판

그런데 쟁송에서 중립적 판관이나 중재자가 없다면, 아니 어느 일방이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당사자간 사생결단의 힘겨루기나 “치킨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그 유명한 솔로몬 왕의 재판과 비슷한 양상으로 되기 십상이다. 진짜 엄마가 아이를 포기하고, 곧이어 가짜 엄마에 대한 솔로몬 왕(국민, 지지자, 혹은 친노의 정신적 구심)의 단죄가 뒤따른다는 얘기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사이에 있는 많은 지지자들과 유시민에 호감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번 김해을 단일화 협상을 보면서 크게 실망하거나 안타까워하는 것은 한마디로 유시민과 국민참여당의 전략적, 전술적 오류 때문이다. 전략적 오류는 정의, 공정의 핵심인 제3자인 다수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런대로 중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중재자들을 불공정하다고 거칠게 내치면서 결과적으로 당사자간 치킨게임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전술적 오류는 막판에 진짜 엄마 자리를 내 줘 버린 것이다. 물론 내 눈에는 둘 다 진짜 엄마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곽후보는 막판에 진짜 엄마처럼 행동했다.

정말로 심각한 전략적 오류

그런데 내가 정말로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국민참여당의 전략적 오류는 이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분오열된 범야권(지지자들)의 정치적 에너지를 모아내고, 더 나아가 진보 정치의 수준과 범진보 지지자들의 정치의식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공직후보 선출 규칙(룰)’의 단초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이는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에 공통된 전략적 오류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국민참여당이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한 이상 그 오류가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 방식에 의한 경선은 시간 등의 이유로 피치 못할 경우에는 채택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진보적이지도 개혁적이지도 않다. 한마디로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서 가능하면 청산해야 할 방식이다. 여론 조사 방식은 그 이름 석 자만 대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아는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그 폐해가 좀 덜하지만, 나머지 경선에서는 정말로 폐해가 크다. 인지도나 지명도가 높은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서 관직 하나라도 받은 사람에게 엄청나게 유리하다. 묻는 방식에 따라, 대표 경력에 따라 지지율이 출렁거린다. 확신컨대 故노무현대통령도 노무현 이름이 들어가는 직함을 쓰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격렬하게 다투는 꼴을 보고, 또 이 경력을 무기로 여론조사 방식을 고집하면서 정의를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까 한다. 여론조사 방식의 핵심 문제는 유권자나 지지자들의 알 권리, 말할 권리, 참여를 통한 선택・심판 권리에 너무나 소극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슈퍼스타 K’의 정신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나는 가수다’ ‘스타킹(야식 배달부 김승일의 발굴)’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신과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은 음악 소비자들이 전문가들의 보좌를 받아 직접 심판관으로 나서는 것이다. 또한 연예 기획사와 PD들의 전유물이었던 무명의 신인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실력 있는 스타 발굴 권능을 대중에게 과감히 개방한 것이다. 이것이 음악의 생산과 소비를 혁신하는 수단이자, 예능 프로그램의 흥행을 담보하는 수단이자, “스타가 되는 새로운 사다리(Second Chance Society)”를 만들어 사회의 활력을 제고하는 수단인 것이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이 방식은 채택할 수도 있고, 채택안할 수도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치판에서는 다르다.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의 정신과 방법은 민주주의 그 자체이다. 특히 양대 정당(실력자), 지역위원장, 허명이 높은 명망가들의 독과점 혹은 기득권에 짓눌린 참신한 정치신인들을 데뷔시키는 유력한 수단이다.

4.27 선거는 몇 개월 전부터 예정되어 있는 선거였다. 따라서 국민들과 지지자들에게 재미도 주도, 배움도 주고, 감동도 주는 업그레이드 된 경선 룰을 설계하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민노당, 진보신당, 민주당이 김해을 이외의 지역에서 여론조사로 단일화를 이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공정한 룰이 되는 것도, 진보적인 룰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세 당 모두 여론조사 방식이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국민의 알권리를 거부하고, 단일화 편의주의로 내달렸다고 할 수 있다.

가치 전도된 한국 사회의 자화상

4.27 선거관련 연대・연합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것이 거론되지 않고, 온통 양보(맏형론), 단일화, 공정이 화두가 된 것은, 한국 선거법과 선거 문화의 심각한 가치전도 현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물론 공정 경쟁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상위 가치는 후보와 정당과 정책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와 지지자들이 자신의 정견을 자유롭게 말할 권리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는 공정 선거의 이름 아래, 다시 말해 과열, 혼탁, 금권 선거 방지의 이름 아래 불과 2~3주가량의 공식 선거운동기간 외에는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금하고 있다. 공정 경쟁의 이름으로 민주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이 심각하게 억압되는 황당한 민주주의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가치를 희생시키고 구현하는 공정 경쟁도 실은 공정 경쟁이 아니다. 정당들은 정당 행사나 당내 경선을 통하여 얼마든지 사전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당이 아닌 존재는 ‘백만민란’의 대표 구호인 “2012년 바꿉시다”조차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선관위로부터 제재를 당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을 통한 부재자 투표에 대한 홍보(안내)마저 사전 선거운동 혐의가 있다며 선관위가 내릴 것을 명령했다. 이 나라에서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가까워지면 인터넷에는 비상계엄령이 내려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론 조사에 의한 졸속 단일화가 당연시 되고, 김해을 선거에서 판관 역할을 할 제3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정이 화두가 되고,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의 정신과 방법이 선거 판에 거의 상륙하지 못한 것은 이 황당한 가치 전도 현상이 정당들과 국민들 깊숙이 내면화되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정의로운 공천제도와 단일화 방식이 문제의 핵심

유시민과 국민참여당이 정치와 선거에서 감히 정의를 말하려면, 인식과 윤리에서 불완전하기 짝이 없지만, 보다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에게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판단 근거를 제공하고, 동시에 돈은 틀어막는 경선 방식을 구현하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기득권이나 프리미엄을 과감히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노무현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국민참여당이 구제 불능의 구태에 절었다고 비판하는 민주당(개혁특위)은 공천제도와 관련하여 각 후보들로 하여금 정책 매니페스토를 제출하도록 하고, 전문가(배심원), 당원 혹은 지지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몇 차례 토론회를 개최하고, 유권자나 지지자들이 보다 실질적인 선택・심판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될지 안 될지는 가 봐야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공직/당직 후보자 선출 규칙이 국민의 알권리와 참여요구를 반영하고, 합리적이어야 국민들의 정치사회 의식이 지속적으로 제고될 것이며, 기존 정치인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몸부림을 칠 것이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관직이라는 엄청난 기득권은 없지만, 시대정신을 체현하는 실력 있는 정치신인들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야권 후보 단일화도, 야권 단일 정당도, 소수파가 시대정신을 앞서서 체현하고, 불철주야 노력하면 다수파가 될 수 있는 합리적인 경쟁 규칙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공직/당직 후보 선출 규칙의 합리화를 비껴가면서 연대, 연합, 통합, 융합, 노무현 계승을 외친다면 이는 사기가 아닐까?

구더기가 덜 괴는 맛있는 장을 담글 능력

공직/당직 후보자 선출 규칙의 합리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상식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또한 단번에 합리화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원과 국민(지지자)들에게 많은 정보와 권능을 준다 하더라도, 민주당, 현직 의원, 명망가, 노무현 정부의 관료/정무직들에게 여전히 유리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니 부분적으로만 실현되더라도 인지도 높은 사람만 뽑는 여론 조사 방식이나 박재승 공천 방식이나 계파들의 나눠먹기 방식이나, 단 한 번의 국민참여 경선 보다야 훨씬 낫지 않을까?

사실 역사적으로 중우정치 등 민주주의에 얼마나 문제가 많았던가! 아마 중동의 많은 독재자들과 북한은 바로 이 같은 민주주의의 허점을 들먹이며 족벌 정치를 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구더기는 구더기고 장은 장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않을 손가? 나는 세계 최고의 정보화 환경과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비기득권자인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백만민란 등이 합심하면, 구더기가 덜 괴는 방식으로 맛있는 장을 담글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유능하고 강력하며, 국민에 대한 반응성도 좋고 실력있는 정치신인과 소수파에게 정치적 기회를 풍성하게 제공하는 야권단일 정당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끝-

(사족)
그런데 유시민과 국민참여당이 놓친 가장 큰 것은 두 정당 지지층의 가슴에 깊게 파인 감정의 골이 아닐까 한다. 6.2 경기지사 선거 때처럼 진보 동네 대선 후보를 먹고, 나아가 국민참여당을 20석 짜리 정당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깊게 파인 감정의 골이 별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범진보 연합정부를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방위에 걸쳐 구축된 강고한 기득권 권력을 효과적으로 해체, 합리화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무너진 범진보(지지층)의 연대와 신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기회가 되면 여기에 대해서 글 하나를 쓰고 싶다.


김대호 (폴리뉴스 칼럼니스트/사회디자인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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