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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면희 칼럼] 공화주의 참 뜻과 위반하는 공화국 행태

1. 고대 로마의 공화주의

공화주의(republicanism)는 고대 로마에서 공화정이 탄생한 데서 기인한다. 전설에 따르면 고대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이탈리아의 테베레 강 인근 언덕에 둥지를 튼 작은 규모의 도시국가로 출현한다. 지배계급의 지원 속에 왕들이 통치를 이어갔고, 연이은 이행 과정에서 거만한 타르퀴니우스가 왕위를 찬탈하여 공포정치를 자행하는데, 그 아들이 정숙한 귀족의 부인 루크레티아를 능욕함으로써 로마인들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일대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군사령관 위치의 루키우스 브루투스가 귀족들의 협력과 시민의 성원을 바탕으로 왕정을 종식시킴으로써 마침내 공화정이 기원전 509년에 탄생한다.

당대 역사가 리비우스(T. Livy)의 <로마사>에 따르면, 왕정 폐지 직후 외부의 적들이 연이어 로마로 침공해오고 이에 대처하고자 군 소집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평민들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가 주어져야만 비로소 우리의 손은 무기를 잡을 것”이라고 외치는 사태가 일어난다. 그들은 성스러운 산에 올라가 소집에 불응하는 일련의 시위를 벌이고, 마침내 원로원의 양보를 얻어낸다. 이로써 마침내 집정관과 원로원에 맞서 평민들을 보호하는 역할의 호민관 직제가 기원전 494년에 창설되고, 이어서 (평)민회가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공화정의 로마는 갈수록 강성해지고 지중해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피할 수 없는 전쟁에 직면한다. 아프리카 북부와 스페인 지역을 거점으로 확장일로에 놓인 카르타고와 120년 가까운 포에니전쟁을 치르는데, 결국 기원전 146년에 제3차 전쟁을 승리를 끝을 낸 로마는 지중해 패권을 장악한 제국으로 부상한다.

포에니전쟁 후반기에 당시 그리스의 현인으로 로마에 포로로 잡혀 와서 귀족인 스키피오 가문의 교사 역할을 한 인물이 있었으니 폴리비오스(Polybios)라 하는데, 그는 로마의 강대함이 정치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다. 자신의 조국 그리스의 아테네는 찬란한 사상과 문화의 뒷받침 속에 민주주의의 꽃을 잠시 피웠지만 혼란을 숱하게 겪으면서 빠르게 몰락을 고한 반면, 로마는 공화정 체제로 갈수록 비상하고 있었음에 경탄을 금치 못한 것이었다.

제도적 관점에서 로마 공화정은 군주제나 귀족제, 민주제의 단일 체제와 달랐다. 로마는 최고 통치자로 2인의 집정관을 두고 유사시 1인 독재관을 임명하는 형태였기에 군주제 요소를 지녔고, 원로원을 통해 국정 전반을 이끌고 있었기에 귀족제 요소를 반영하였으며, (평)민회와 호민관을 통해 평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민주제 요소를 품고 있었다.

로마는 폴리비오스와 같은 현인을 데려온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의 사상과 문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견해를 현실에 맞춰 해독하기도 했는데, 군주제는 부덕한 폭군으로 인한 민심 폭발로 다수의 귀족들이 부와 명예를 잃지 않고자 권력을 잡는 통치로 전환되고, 귀족제는 평민의 희생을 가중시켜 대중의 폭동에 따른 민주제로 바뀌며, 민주제는 백가쟁명의 혼란 속에 선동가(demagogue)에게 쉽게 현혹되어 독재로 회귀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 로마는 다행스럽게도 세 요소의 혼합을 통해 서로 다른 집단의 이해를 조종하고 서로 견제하며, 줄타기 조화를 이루어냄으로써 강고한 나라가 된 것이다.

따라서 실제 역사에 견주어볼 때, 로마 공화주의는 몇 가지 핵심 특징을 갖는 사조라고 할 것이다. 첫째는 비지배적 자유(freedom)를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평민들의 신분투쟁 속에 민회의 영향력을 확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사람의 자유는 소중하고, 그런 자유로운 개인은 공화정의 법 이외에 어느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는 “원로원 의원은 결함이 없어야 하며 다른 이들에게 귀감이 되어야 한다.”고 당대의 정치가 키케로(Cicero)가 언급하였듯이 인간의 덕성(virtues)을 중요시했다는 점이다. 셋째는 공화정 제도를 채택한 데서 드러나듯이 인간 집단 사이의 갈등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지만 이로써 파멸에 빠지지 않도록 사회 권력의 견제와 협력을 실용적으로 도모하는 혼합정체라는 것이다.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애석하게도 공화정에 반감을 품은 카이사르(Caesar)가 해외 출군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권력 공백의 틈을 타서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하여 오랜 동안의 공화정을 종식시키는데, 그때가 기원전 49년이었다.

2. 미국 건국의 공화주의

17세기 영국의 사상가 해링턴(J. Harrington)은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근대로 접어든 여명기에 과거를 회고하면서 지혜로웠던 고대적 분별의 시기가 야만적 폭정의 근대적 분별의 시기로 접어든 것은 인류 최악의 역전이었다고 탄식하면서, 새로운 희망의 부활을 공화주의에서 찾게 된다. 이때 해링턴을 깊은 잠에서 깨운 이가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N. Machiavelli)였다. 그는 16세기 초 집필한 <로마사 논고>에서 실제 역사에 비추어 시민에게 진정 이로운 나라의 정치제도를 탐구하면서 폴리비오스의 언급과 마찬가지로 로마 공화정이 강고한 형태의 것이면서 시민에게 자유를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게 하는 제도라고 주장하였다.

공화정이 커다란 장점에도 불구하고 군주제의 억압과 교황청의 기세 속에 오랜 세월 기지개를 켜지 못하고 있다가 르네상스 시기에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 몇(피렌체 및 나폴리 공화국 등)에서 비교적 잘 복원되기는 했지만, 짧은 운명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 공화주의가 제대로 피어나게 된 계기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자유를 찾아 구대륙을 떠나 신대륙 아메리카로 이주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의 공화주의는 건국 과정서 국부들이 새로운 나라를 좋은 사회로 만들고자 최선의 정치제도를 분별하려는 시도 속에 더욱 발전된 형태로 피어난다. 미국 헌법을 기초하고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하게 되는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은 <페더랄리스트 페이퍼>에서 어떤 사회든 시민의 자유를 적극 허용하는 한, 제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들의 파벌을 일소할 현실적 방도가 없기에 그 해악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는다. 그는 “순수한 민주주의, 즉 직접 정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소수 시민으로 구성된 사회는 파벌의 악영향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고 하면서 민주주의와 달리 공화제는 “시민이 선출한 소수의 대표에게 정부를 위임한다는 사실”과 “더 넓은 범위의 국가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그는 “선출된 집단의 현명함”을 기대하면서 “견식 있는 관점(enlightened views)과 덕(virtuous sentiments)을 소유함으로서 지역적 선입견과 부정의 계략에 대해 우월하다고 인정되는 대표들”로 구성되는 정치제도를 입법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No.10). 그는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과 뜻을 같이 함으로써 “모든 정치체제의 목표는 우선 그 사회의 공익(또는 공동선)이 무엇인가를 판단할 최고의 지혜와 그러한 공익을 추구하는 최고의 덕성을 지닌 사람들을 지도자로 확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No.57).

미국 건국 당시의 국부들이 법과 제도를 마련하여 나라를 세울 때 강력히 실현하고자 한 사조는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닌 공화주의였다.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공화정을 집중 탐구한 끝에 권력 분립에 따른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대통령 중심의 행정부와 법안을 만들 입법부, 법을 지킬 보루로서 사법부를 두었다. 심지어 입법부도 인민을 충실히 대변할 하원과 유덕한 사람들로서 지역적 이익에 매몰되지 않은 채 지혜롭게 연방정부를 이끌 상원의 둘로 나누었다. 로마 공화정에 견줄 때 집정관(때론 독재관)과 원로원, (평)민회에 각각 대응하는 것으로서 행정부의 대통령과 입법부의 상원 및 하원, 그리고 사법부를 둔 것이다. 파벌의 해를 최소화하면서 각 정파의 역할이 상호견제를 통해 균형적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분별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기회의 땅에서 타운회의를 통해 지역의 자치(self-government)가 이루어짐으로써 자유가 지속될 수 있도록 시민의 덕성이 커나가게 의도하는 가운데 공동선을 추구하게 된다. 그 결과 남북 간의 노예제 결등도 힘겹게 극복하여 폐지하는 결실 등을 맺는다.

다만 링컨 사후인 19세기 말부터 대규모 제조업에 따른 상업주의가 팽배하면서 공화주의가 약화되는 가운데 자유주의(liberalism)와 민주주의(democracy)가 부상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는데,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공화주의는 자유 가치의 원조라는 점에서 자유주의의 선조 격이지만, 그 출현의 근원으로 시민의 미덕과 자치를 꼽으면서 지향하는 바로는 공동선을 함께 내세운다는 점에서 다소 다르다. 현대 민주주의가 미국 건국서 보듯이 공화주의의 가치(삼권분립과 타운회의 등)를 계승한다는 점에서 동반자 관계로서 시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밝히고 있지만, 시민의 덕성 함양과 공동선 추구와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또한 다르다.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민주주의의 불만>이란 저서에서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와만 결합할 때 사회는 오늘날 극명히 드러나고 있듯이 심각한 불만족 상태에 빠짐을 고발하고 있다. 그가 소환하는 미국 건국의 공화주의는 고대 로마에 초점을 맞추는 신로마 공화주의와 유사하면서 다르다. 즉,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강한 유형의 공화주의적 이상은 시민의 덕과 정치 참여를 자유에 본질적인 것으로 본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정치적 존재라고 할 때, 우리는 공동선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고 자유 도시나 자유 공화국의 공적 생활에 참여하는 한에서만 자유롭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온건한 유형의 공화주의적 이상은 시민의 덕과 공적 봉사를 자유에 도구적인 것으로 본다.” (신)로마 공화주의가 온건한 데 비해, 미국 건국의 공화주의는 강한 유형인 셈이다.

3. 공화국의 반공화주의 정치 행태의 성찰

미국이 건국할 때 공화주의 사조에 따른 것처럼, 오늘날 지구촌의 수많은 나라가 헌법에 공화국임을 선언하거나 국호에 공화국임을 밝히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나라들이, 역사 속의 공화주의에 비추어볼 때, 이에 상반되는 정치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예컨대 미국의 공화당은 1854년 창당 당시에 이 기조를 보다 분명히 하였고, 곧바로 그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이 이를 전형적으로 드러내었지만, 20세기 들어서면서 보수주의와 시장자유주의로 편향되면서 공화주의의 기본 정신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 샌델의 지적이다.

어디 미국의 공화당뿐이겠는가? 완전히 상반된 경우도 적지 않으니 권위주의 국가로서 독재를 일삼는 나라가 대표적이다. 예컨대 러시아의 전신인 (구)소비에트인민민주의공화국이나 북한(즉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그렇다. 물론 나름의 이유를 대고 있다. 군주를 두지 않는 나라로서 공화국이라는 뜻이다. 군주제를 거부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 마키아벨리의 분류에서 보듯이 유력한 정치제도로 군주제와 귀족제, 민주제 셋이 있고, 공화제는 이 셋의 혼합 성격이다. 군주제 아님이 곧 공화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양자는 논리적으로 모순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화국을 천명했을 때는 그 핵심을 일정하게 반영해야 한다.

고대 로마든 미국 건국에서든 공화주의는 (보편화 가능한) 법 이외에 어떤 지배도 허용하지 않는 자유의 가치를 근간으로 한다. 로마의 경우 평민이 궐기하여 자유를 쟁취했고, 미국의 경우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하였다. 그런데 권위주의 국가는 버젓이 공산당의 지배를 법 위에 설정하고 있다. 국민 위에 법 아닌 공산당이 군림하고 있으니 공화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결국 권위주의 공화국 국가는 공화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치장으로 독재를 가리고 있는 격이다.

중국은 2022년 제20차 당대회를 열어 시진핑 주석의 집권 3기 연임을 확정하였다. 당헌(당장)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지도적 지위를 확립했다. 그런데 중국 역시 정식 국호가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중국은 덩샤오핑 통치 때부터 일부나마 공화제 요소를 도입한 것으로 해석할 소지가 있었다. 마오쩌뚱 주석 1인에 의한 독재가 문화혁명 등의 숱한 부작용 낳은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법 위에 군림하는 공산당의 통치라고 하더라도 1인 독재의 폐해를 최소화하고자 권력분립을 반영한 것이다. 공산주의청년단과 혁명가 자제 중심의 태자당, 그리고 신진 세력 상하이방 셋을 기본 축으로 삼아 돌아가게 하면서 주석과 군사위원장, 총리 등 상무위원의 요직을 나누어 차지하는 방식으로 집단지도체제로 통치하였다. 이로써 권력 독점을 견제하고 출중한 인재가 오를 수 있는 여지를 두는, 그것도 노회한 정치로의 미끄럼을 방지하고자 7상8하(67세까지의 지도부 임명 기준)의 원칙까지 불문율로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20차 당대회에서 일부 공화제적 요소를 다 폐기하고 1인 독재를 강화했으니 이제는 국호로 공화라는 개념을 차용하기에 민망한 지경이 되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오늘날의 헌법 제1조 제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나 공화국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나라로서 일제 치하인 1919년에 상해임시의정원이 비로소 독립국가로 민주공화국을 세우기로 천명하였다. 8.15해방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당의 이름으로 민주공화당을 선택했음은 다소 특징적이다. 박대통령이 적극적 산업화를 통해 비록 고난과 굶주림에 놓인 국민의 생활을 개선하는 공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영구 독재를 획책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공화의 이름을 가리개 명칭으로 사용하였으니 역시 반공화주의적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족이 산업화와 연동해서 민주화의 행보까지 취하면서 이를 짧은 시기에 성취한 것은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긍심을 가져도 될 만하다고 본다. 다만 21세기 오늘날의 우리 현실 정치에 대해 또 다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공화주의 관점에서 조망할 때, 파벌의 해악이 첨예하게 드러날 정도로 자행되는 보수와 진보 두 진영의 적대적 정치가 큰 문제다. 최근 들어 두드러진 팬덤 정치는 선동과 결부되어 강압적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정치적 일렬로 줄 세우기에 다름 아닌 것이어서 공화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개선되기는 했지만, 양 정치 진영에 지역적 편견과 부정한 계략을 일삼는 정치인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 역시 문제다. 청산과 극복이 이루어질 사안이다.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인 만큼 자유의 가치 속에 경제 성숙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함께 꽃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면희
현재 21세기공화주의클럽 상임대표이고 성균관대 초빙교수
전 창조한국당 대표(비대위원장), 한국환경철학회 회장
전 녹색대학 대표, (사)환경정의 연구소장,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위원장
저서로 초록문명론 , 동아시아 문명과 한국의 생태주의 , 제3정치 콘서트 등 다수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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