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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칼럼] 윤석열-김건희 영국 조문 논란, 21세기판 예송 논쟁

17세기 조선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예송(禮訟) 논쟁이 벌어졌다. 1659년 효종이 승하했을 때, 그리고 1674년 효종비(妃) 인선왕후가 승하했을 때 계모인 자의대비가 상복을 입는 기간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서인과 남인 사이의 논쟁이다. 예송은 복상기간을 둘러싼 논쟁이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서인과 남인 사이의 치열한 권력투쟁이었다. 서로를 제압하고 거세하기 위해 백성들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복상기간을 놓고 그토록 처절하게 싸웠던 것이다.

2022년 한국에서도 느닷없고 생뚱맞은 예송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국내 인물도 아니요, 다른 나라인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의 조문을 둘러싸고 그러하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지난 18일 영국 런던에 도착한 직후 현지 교통 사정 등을 이유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된 여왕의 관 앞에서 참배하지 못했다. 이를 놓고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조문 외교에 조문이 빠지는 참사가 벌어졌다”며 대대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2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선 민주당 의원들도 일제히 ‘외교실패’ ‘외교참사’라는 공세를 펴고 나섰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박지원 전 국정원장, 그리고 장외의 네임들이 가세하여 민주당 계열 야권이 총궐기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마치 나라에 대단한 일이라도 난듯이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는 의문이다. 물론 조금 더 여유있게 일찍 도착해서 참배를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국가의 정상들이 모두 다 일찍 도착할 것을 염려한 영국 왕실이 ‘수많은 국가들의 시간을 다 분배한 것’이라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정말 그 방법 밖에 없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 부부는 참배는 못했지만 리셉션에 참석하여 상주인 찰스 3세를 만나 조의를 표했다. 장례식에 참석했고 조정된 시간에 맞추어 조문록도 작성했다. 무엇보다 장례식 참석이라는 공식적인 조문 행위를 했는데 마치 조문을 하지 못한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의 공세로 비쳐진다.

외교적 결례 여부는 상대국 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떠들썩하게 키워진 윤 대통령 부부의 조문 일정에 대해 영국 측에서 어떤 불만을 내비쳤다는 얘기는 당연히 없다. 대부분의 과정이 영국 왕실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상주인 찰스 3세는 윤 대통령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했는데, 국내의 야당은 저렇게 화를 내고 있는 광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가 장례식에 지각한 일을 놓고 미국 정치에서 논쟁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2019년 3월에 문재인 대통령의 말레이시아 국빈 방문 때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와의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말레이시아어가 아닌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를 해 ‘외교결례’라는 논란이 있었다. 그러자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은 “상대국가에서는 어떤 말도 없는데 ‘외교 결례’를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상대국에 대한 결례”라고 반박했다. “우리가 상대국에게 결례를 범했다면 아주 공식적으로 분명하게 상대국으로부터 ‘항의를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랬던 탁현민 전 비서관이 이제는 “육개장 먹고 발인 보고 온 것”이라고 야유하니 세상은 요지경이다.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에는 정쟁은 자제해달라’는 말은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 쪽으로부터 귀가 아프게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정치 훌리건들이 김건희 여사의 ‘검은 베일’을 겨냥한 일제 공격에 나선 광경이다. 온라인과 SNS에서 누군가가 검은 베일은 '왕실 사람들만 쓰는 것’ 혹은 '미망인이 쓰는 것'이라는 괴소문을 올린다. 근거 불명의 이런 마타도어가 순식간에 진실로 둔갑되어 대대적으로 유포된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수 있다"던 괴벨스의 말은 한국 땅에서 그렇게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보면 이번 엘리자베스 2세 장례식 때 김건희 여사 말고도 많은 여성들이 검은 베일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음을 보도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퍼스트 레이디 가운데서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인 브리지트 여사,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의 부인 미셸리 여사,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부인 소피 그레고어 여사 , 스페인 레티시아 왕비 등도 검은 베일이 달린 모자를 썼다고 언론들은 전한다.  트뤼도 총리의 모친인 마가렛 트뤼도 여사도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추도식에 베일이 달린 모자를 쓰고 참석했다고 한다. 

영국 장례식에 검은 베일이 달린 모자를 쓰는 것이 논란이 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최소한의 팩트 체크도 하지 않은 채 그런 모자를 착용한 것이 마치 대단한 결례라도 되는 듯이 공격을 해댄다. 영국 왕실의 장례 예법에 대한 사이비 전문가들이 대체 어디서 한꺼번에 나타난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의 정치 훌리건들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만들어버리는데 엄청난 재주가 있다.

무엇보다 21세기 한복판에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느닷없는 예송 논쟁을 영국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부끄럽다. 무슨 외교적 무례를 범해서 영국 왕실의 항의를 받은 것도 아니거늘, 대체 우리가 왜 대통령 부부의 동선과 시간표, 심지어 '검은 베일'까지 따지며 이런 소모적인 논란을 벌여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짐작하건대 그 사람들은 정작 고인에 대한 애도 같은 것에는 애당초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애도의 장례식 앞에서도 선동의 정치는 이렇게 기승을 부린다. 

유창선(사회학 박사,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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