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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이야기] 문순득의 『표해시말』을 통해 본 섬의 가치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기 때문에 해상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는 사고가 빈번했다. 표류인의 경험담은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기록 중 하나는 홍어장수 문순득(文淳得, 1777~1847)의 『표해시말(漂海始末)』이다. 섬사람 문순득의 경험을 듣고, 섬 유배인 정약전이 남긴 기록이다. 문순득의 표류 경험에 얽힌 역사는 섬이 지닌 공간적 가치를 깨우쳐 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문순득(文淳得, 1777~1847)은 현 전라남도 신안군 우이도에 살던 상인이었다. 그는 남도 음식의 별미로 알려진 흑산도 홍어를 가지고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중개무역을 했다. 해산물을 육지에 내다 팔고, 반대로 육지에서 섬 주민에게 필요한 쌀 등을 구입하여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문순득은 1801년 12월에 홍어를 구하러 출항했다가 이듬해인 1802년 1월 18일 흑산도 인근 해역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였다. 문순득 표류의 특징은 하나의 지역이 아니라,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는 점이다. 표류 후 망망대해에서 바람과 싸우다 11일 만에 도착한 곳은 머나먼 이국땅 유구(琉球, 현 일본 오키나와 군도 일대)였다. 이곳에 머물다 유구 정부의 도움을 받아 중국으로 송환되는 과정에서 또다시 풍랑을 만나 이번에는 필리핀(여송, 현 일로코스 비간 일대)으로 흘러갔다. 다시 필리핀에서 마카오로 이동한 후 중국 대륙을 횡단하여 북경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왔다. 유구 9개월, 필리핀 9개월, 마카오 3개월, 청(중국대륙)에서 1년을 체류했다. 1805년 1월 8일 우이도로 돌아오기까지 약 3년 2개월이 소요되었다. 조선인 가운데 가장 긴 시간, 장거리를 표류한 인물이다.

우이도는 한반도 서남해 바닷길의 요충지이다. 조선 후기에는 소흑산도로 불리며, 대흑산도와 같은 권역의 섬으로 인식되어 많은 유배인이 보내졌다. 죽은 줄 만 알았던 문순득이 살아오자, 우이도 사람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 가운데는 우이도에 유배와 있던 실학자 정약전도 포함되어 있었다. 문순득은 표류 기간의 체험담을 정약전에게 들려주었다. 호기심 많던 정약전은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표해시말』을 남겼다. 『표해시말』에는 표류의 과정을 비롯하여 머물렀던 외국의 생활 풍속, 건축, 옷, 선박, 언어 등에 대한 다양한 기록이 담겨 있다. 『표해시말』은 해양 문화에 대한 토착 지식을 지닌 섬 주민과 실학 정신이 강한 유배인의 만남을 통해 탄생한 소중한 기록이다.

문순득의 경험담을 들은 정약전은 그에게 ‘천초(天初)’라는 호를 지어주었다. 조선인 중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는 의미이다. ‘천초’라는 파격적인 호를 지어준 것은 문순득의 표류 경험이 매우 남다른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 표류 경험이 19세기 초 근대화의 초입에 해당하는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서구의 문물이 조선에 본격적으로 상륙하기 전인 상황에서 문순득은 외국의 여러 국제무역항과 천주교 문화가 발달한 도시들을 체험했다.

당시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마카오는 포르투갈인들이 거주하는 개항장이었다. 서양 문화가 진출해 있는 특수지역에 머물면서 조선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문화를 목격하고 경험하였다. 가장 이색적인 부분은 서양의 천주교 문화를 접한 것과 대형 선박에 탑승해 항해 체험을 한 것이다. 정약전 자신은 천주교를 접했다는 이유로 겨우 죽음을 면한 대신 머나먼 섬으로 유배된 처지였는데, 문순득은 표류를 통해 외국의 성당과 천주교 문화를 체험하였다. 표류 기간 중 대형 선박 체험은 두 차례 있었다. 유구에서 청나라로 보내질 때 유구의 조공선에 탑승했고, 필리핀에서 마카오로 이동할 때는 유럽형 대형상선을 타고 11일간 항해했다.

문순득의 표류 경험이 담긴 『표해시말』의 남다른 가치는 그가 평소 거친 바다를 무대로 살아온 상인이었고, 그 기록을 남긴 정약전이 실용적인 학문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표해시말』은 다른 학자들이 남긴 표해록과는 달리 생활상에 대한 내용이 많고, 어민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선박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수록된 점이 특징이다. 상인으로서 외국의 국제무역상황에 대한 부러움의 시선도 담겨 있다.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와 달라 중국·베트남·필리핀 사람들이 서로 같이 살며, 짝을 지어 장사하는 것이 한 나라나 다름이 없다. 하물며 베트남과 마카오는 서로 그리 멀지 않고, 함께 배를 타고 함께 장사하니 이상한 일이 아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문순득의 표류 경험은 바다 건너 강진에 있던 정약용과 이강회 등 실학자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정약전을 매개체로 문순득의 존재를 알게 된 이들은 그의 표류경험담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정약용의 경제론이 담긴 위대한 저작 『경세유표(經世遺表)』에는 문순득이 마카오에서 경험한 사례가 직접 인용되어 있다. 정약용은 문순득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나라도 화폐제도를 개선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정약용의 제자였던 이강회는 문순득을 직접 만나서 그가 필리핀에서 마카오로 이동할 때 탑승했던 유럽형 범선의 항해 체험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배와 비교 분석한 『운곡선설(雲谷船説)』을 작성했다. 이는 조선에서 유럽형 범선의 구조와 항해 방식 등을 분석한 최초의 기록이다.

문순득의 『표해시말』과 그 경험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다. 섬사람들의 강한 생명력과 열린 문화공간으로서 섬이 지니는 가치를 재인식하게 만든다. 조선시대에 국내 상황은 쇄국정책으로 인해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고, 특히 해양에 대한 인식은 매우 소극적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섬은 유일한 숨통과도 같았다. 비록 우연한 해난사고로 인해 발생한 상황이지만, 표류 경험과 유배인과의 소통 등에는 섬이 지닌 고유한 인문환경이 반영되어 있다. 문순득의 사례에서는 국내에도 근대적 해양 인식이 싹트고 있었음이 발견된다. 동시에 그러한 흐름과 인식이 국가정책으로 반영되지 못했던 한계점도 나타난다. 이는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한국의 섬이 지닌 가치를 문화적인 면에서 올바르게 재인식해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섬’은 고립되고 단절된 곳이라는 일방적인 편견에서 벗어나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이고, 역동적인 문화 다양성을 창출하는 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최성환 교수는 목포항과 다도해를 중심으로 한국지방사를 전공하는 역사학자이다. 현재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에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추진하는 ‘섬 인문학 연구단’에 참여하고 있다. 연구 과제는 “섬 인문학, 인문지형의 변동과 지속가능성”이다. 역사 속 섬사람들의 인문환경 변화와 그에 대한 대응에 주목하고 있다. 목포대학교 사학과에 재직 중이며, 국립해양유물전시관·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전남농업박물관 등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목포(대한민국 도슨트)』, 『문순득 표류 연구』, 『유배인의 섬 생활』, 『역사 논문 쓰기 입문』 등이 있다. 섬 관련 논문으로는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생활과 저술 활동」, 「비금도 천일염전 개발과정과 사회적 확산」, 「섬사람들의 탈경계적 공간인식과 지적전통」, 「러일전쟁기 일본해군의 옥도 팔구포방비대의 설치와 활용」 등이 있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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