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는 멜로물이 아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출처=네이버영화>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출처=네이버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좋아하는 남자 친구 없어요?" 한석규.

"아저씨, 왜 나만 보면 웃어요?" 심은하.

변두리 사진관 노총각 정원(한석규)은 시한부 인생이다.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던 어느 날, 담담한 일상을 깨고 날아든 돌멩이...다림(심은하) ... 

1998년 개봉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마니아가 아니더라도 '멜로'라는 걸 안다. 과연 그럴까?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습니다."

이 영화의 또다른 면이다. 신축년도 지고 있다. 이때면 사람들은 세월이 쏜살같다느니, 어느새..., 아쉬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이미 채워진 것들을 지속하고자 하는 집착... 하지만 시간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살면서 누렸던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다는, 죽음 또는 인생의 유한함을 느끼는 시기이기도 하다. 

삶은 허무하다. 고통스럽다. 우리는 늘 요동친다. 허무와 고통 사이에서, 또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혹 이 고통을 완화하는 장치가 '추억'이 아닐까? 이 '기억'을 영원히 붙들어놓을 수 있는 게 '사진'이 아닐까?

하여 사람들은 다시 생각을 고쳐먹는다. "시간은 사라지지 않아..." "역사라는 것도 있고 추억도 있고 기억이란 것도 있잖아" "그렇지 여기 사진도 있는 걸..." 무한한 안식과 평온한 일상을 찾아든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주 촬영 장소였던 군산시 신창동 '초원 사진관'이 2012년 복원됐다. 영화 속 정원의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하지만…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라는 대사도 부활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8월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라이언家 사형제 중 막내 라이언 일병 구출작전이 펼쳐지는 전쟁영화다. 네 명의 아들 가운데 세 명을 잃은 라이언 부인을 위해 미 행정부는 막내 제임스 라이언을 구하기 위해 존 밀러 대위를 포함한 6명의 특공대를 조직해 목숨을 건 작전을 수행하는데.....

밀리터리는 항상 인간을 죽음 앞으로 몰아간다. 삶의 극단에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죽지 않으려고 죽이는' 묘한 역설을......  

"그거 알아? 부하가 죽어나갈 때마다 나 스스로에게 말하곤 해. 그의 죽음으로 다른 둘, 셋, 아니 다른 10명의 목숨을 구한 거라고. 어쩌면 100명일 수도 있고··· 그렇게 간단하더라고. 그런 식으로 임무를 합리화하는 거지."

"그런데 이번엔 한명을 구하는 거요···"

"라이언이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야지. 고향에서 사람들 병을 고쳐주거나 수명이 긴 전구를 만든다거나 말이야."

라이언을 구하러 가는 임무 수행 중 아끼는 부하를 잃고 나서 밀러(톰 행크스)와 호버스(톰 시즈모어)가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다.

그렇다! 죽음 앞에 '합리화'가 필요한 것처럼 삶에는 '변명'이 필요하다. 니체가 '망각'이야말로 삶의 능력이라 했던 것처럼, '머리 속 지우개'가 지우지 못하는 '사진' 또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삶이다. 

하여 전쟁통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라이언 일병을 구한 것은, 사진 때문이다. 밀러 대위의 품에 품었던 '사진' 말이다. 사진이 주인을 만났을 때, 전쟁의 포화를 뚫고 삶의 자리로 귀환했다. 여하튼 밀러에게 사진이 없었다면 라이언 일병을 구하지 못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 열사를 같은 학교(연세대) 학생이 부축하는 모습. 해당 사진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6월 항쟁을 상징하는 대표적 모습이다. <사진=YTN>
▲ 1987년 6월 항쟁 당시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 열사를 같은 학교(연세대) 학생이 부축하는 모습. 해당 사진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6월 항쟁을 상징하는 대표적 모습이다. <사진=YTN>

 

이한열 열사 웃기기

이젠 설명이 필요없게 됐다. 사진 한 컷이 다 말한다.

공간이 고밀도로 압축될 때,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흐른다. 뭔 말인고 하니, 시간이 증발하면 고농축 공간만 남게 된다. 공간이 저성장을 계속하면 사람은 성취와 만족감조차 지루하게 느낀다. 여기에 갇히면 인생은 말할 수 없이 허무해진다. 이어 곧바로 권태에 빠져 버린다. 심심해진다. 심심하지 않으려면 '유머'가 필요하다. 

2021년 7월27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부산민주공원을 참배했다. 민주공원 한 켠에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이 있는데, 이 조형물 왼쪽엔 연세대 앞 시위 중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 열사를 같은 학교 학생이 부축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윤 전 총장 옆에서 안내를 하던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이 추모조형물을 보며 말했다. 

"이한열 열사"

그러자 뜬금없이 윤 전 총장이 오른손으로 조형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부마(부산·마산)항쟁인가?"

이에 장제원 의원이 즉답했다. 

"네"

윤 전 총장도 맞받았다. 

"대학 1학년(79학번) 때니까"

함께 동행하시던 여러분들 중 어느 한 분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태블릿PC

이젠 사진이 아니라 '소리'다. 태블릿PC라는 '떨림'에 JTBC라거나, 손석희라는 '소리의 출렁임'이 더해지면 가차없이 빛의 영역으로 '인화'된다. 빛은 불이 되고, 열이 되고, 더 나아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쓰나미로 번져갔다. 

길게 얘기할 것도 없이 태블릿PC는 그렇게 기억된다. '판'을 엎어버린 '판도라'...

여하튼 바로 어제의 기억은 분명하고도 생생하다. 하지만 오래된 어제는 먼 미래처럼 희미하고 애매하다. 하여 남는 것은 오늘, 지금여기의 기억이다. 

사진=더팩트
▲ 사진=더팩트


참담한 사진...

우리 일상은 하염없이 흘러간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연말이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연초와 비교하면 이미 나는 다른 존재다.  코로나는 변모와 변태, 변종과 변이를 거듭해 하루 8천의 감염자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자극적인 너무나 자극적인... 상처가 아닌 충격은 지워지지 않고 각인된다. 사진이 아닌 도장이다. 

"매일매일 카메라의 눈에, 기자의 눈에 둘러싸여 살게 된 지 50일이 되어간다. 내 사진은 특종 중의 특종이라고 한다. 8월말 학교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덫에 걸린 쥐새끼 같았다."

동아시아 어느 작고 작은 남쪽나라 포청천의 오른손에 들린 케이크와 함께 고개 숙인 집앞 뒷모습에서 우리는 '장엄한 소멸'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덫에 걸린 쥐새끼는 또 나타났다. 사람들에게 그의 뒷덜미를 움켜쥔 거친 손아귀가 생중계됐다.

얼마나 생생하던지... 처음엔 흠칫, 나중에 흉칙, 갈수록 섬칫하더니, 생각할수록 민망하고 부끄러운 장면이었다. 창피하다 못해 경악, 놀라 자빠질 뻔한 사진이 세계만방에 펄럭인 것이다. 

이 사진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중의 뇌리에 오래오래 섬칫거릴 것이다. 이 장면은 '세월호'처럼 오래토록 몸서리칠 것이다. '태블릿PC'처럼 몸부림칠 것이다. 

하여 이 사진은 '판'을 엎어버리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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