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지피지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폴리뉴스 홍경환 기자] 본 기사는 내년 대선 D-100일 기획으로 월간지 폴리피플 12월호에 실린 기사다. [편집자주]
흔히 선거를 전쟁에 비유하곤 한다. 선거가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되는지 안다면, 선거를 전쟁에 비유하는 것이 과한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장수의 스타일로 지장, 덕장, 용장 등 여러 스타일이 제시되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수의 특징을 하나로 정리하면 이렇다.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싸운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대표적이다. 누구는 이순신 장군을 덕장이라 표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에게서 나타나는 일관성 하나는 내가 원할 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싸웠다는 것이다.
무적의 조선 수군이 단 한번 패배한 적 있다. 일본군이 원할 때, 일본군이 원하는 장소에서, 일본군이 원하는 방식으로 싸웠을 때다. 바로 칠천량 해전이다. 이 한 번의 패배는 단순한 1패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가 멸망하느냐 마느냐를 가로지은 결정적인 패배였다.
대통령 선거 이야기를 하면서 왜 이렇게 서설이 길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위한 ‘컨설팅’을 아주 친절하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기자다. 기자에게 균형 감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재명 후보에게 친절하게 이야기했으므로 윤석열 후보에게도 친절해야 한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에게는 하지 않았던 전쟁 이야기를 왜 윤석열 후보에게는 하는 것일까? 이재명 후보는 프로고, 윤석열 후보는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후보는 본인이 아마추어라는 사실을 부인하겠지만, 윤석열 후보가 아마추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세계에서 최강의 군대는 미군이다. 미군이 최강인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최첨단 무기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미군은 실전경험으로 무장한 군대라는 사실이다.
70~80년대 한국군이 북한군에 비해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인 상황일 때, 한국군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근거로 제시된 것이 실전경험이었다.
실전경험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재명 후보는 수없는 실전으로 무장한 군대이다. 비록 장비에서는 열세일지 모르나, 수없이 많은 실전으로 다져진 역전의용사이다.
국민의힘 대선 승리 첫걸음은 윤석열 후보가 스스로 아마추어임을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김대중 새천년민주당 후보에게 불과 1.6%포인트 차이로 무릎을 꿇었다. 누군가는 패배의 원인을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에게 돌릴지도 모르겠다. 또는 상대방의 병풍 의혹 제기라는 ‘반칙’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근본원인은 이회창 후보에게 있었다. 상대방은 정치적인 계산으로 맞서는데, 이회창 후보는 법리적인 계산으로 맞대응했다.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를 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러 장면에서, 윤석열 후보에게서 이회창의 향기가 난다. ‘법대로’를 외치는 강직함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느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만약 윤석열 후보가 1997년 이회창 후보처럼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가 되었다면, 지금의 야당은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복기를 해보면 이회창 후보의 정무적 감각이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종필이란 인물이 걸어온 길을 봤을 때, 김종필과 진보정당의 친연도가 높았을까? 아니면 보수정당과의 친연도가 높았을까? 김종필이란 인물은 왜 보수정당과 정서적 연결고리가 더 깊음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이란 인물을 선택했을까?
이인제 후보가 독자출마한 것은 개인의 욕심으로 치부하자. 하지만 이인제 후보를 무력화 시키고 양자대결구도로 선거를 이끌지 못한 책임은 이회창 후보에게 있다.
이번 국민의당 대선 후보 경선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 비슷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이 많았다.
정권교체에 대한 열기가 높았고,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되면 사실상 차기 대통령으로 낙점받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국민의당 경선을 앞두고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됐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이 승리만 한 것이 아니라,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집권 여당은 패닉에 빠진 상황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2007년 경선과 같은 뜨거움과 치열함, 반전은 없었다. 윤석열 후보의 경선 캠프는 2007년 이명박 후보의 경선캠프보다는 97년, 2002년 이회창 후보의 대선 캠프와 비슷한 점이 더 많다.
압도적인 세과시를 통해 후보직을 거머쥐었다는 점에서 과거 이회창 후보와 많이 닮았다. 하지만 캠프의 전략적 대응 및 기민함의 측면에서 보면 2007년 이명박 후보의 캠프와는 많은 측면에서 비교가 된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경선 룰과 관련해 박근혜 후보와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런데 경선룰과 관련한 입장에서 이명박 캠프는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때,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서 싸웠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이 사실상 경선룰에서 판가름 났다는 점에서, 이명박 캠프의 대응은 2차 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독일군의 허리를 부러트린 게오르기 주코프에 비유할 만 하다.
2021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이 승패는 전술과 전략의 승리라기 보다는 압도적인 세과시에 의해서 판가름이 났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행정수도이전 공약으로 이슈를 주도해나갔다. 반면 이회창 후보 측은 디즈니랜드, 유니버셜스튜디오와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맞대응했다.
윤석열 후보는 캠프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한반도대운하로 이슈를 주도했다. 반면 박근혜 후보 측은 서해 열차 페리로 대응했다.
2015년 문재인 후보는 청와대 이전으로 이슈를 끌어나갔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 측은 청와대 이전의 허구성만 공격했다.
청와대의 광화문 이전은 ‘사실상 폐기’됨으로써 그 허구성은 입증됐다. 문제는 허구성의 입증이 아니다.
어떤 전략과 전술로 맞대응 하느냐의 문제이다. 2007년 한반도대운하의 허구성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박근혜 캠프에서 그 허구성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지적한 사항들은 지금도 검색을 통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방책’이었다. 이미 사랑에 빠졌는데, 이미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데, 그 사람에 대한 허물을 벗기는 것이 무슨 소용있겠는가?
이회창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쪽’이었다. 부러질지언정 굽히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 결과는 결국 부러짐이었다.
윤석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나는 ‘강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좌천을 자초하는 강단.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명일지라도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강단.
당내 경선은 세과시로 돌파할 수 있다. 그러나 본선은 다르다. 역사는 이회창의 2패를 통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한다면,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당신의 공명은 어디에 있는가? 조자룡 말고, 유비 장비 말고, 공명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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