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여정 ‘주한미군 철수’ 요구 담화, 미국의 아프간 패퇴를 직접 겨냥하며 압박
‘아프간 철군’으로 美 강경보수세력 입지약화, 美의 한국군 전작권 유지 명분도 약화
‘남·북한 공존’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 제고, 한반도프로세스 추진에 장기적으로 긍정적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궁 점령한 탈레반 무장세력[사진=연합뉴스, AP]
▲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궁 점령한 탈레반 무장세력[사진=연합뉴스, AP]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 탈레반의 카불 입성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미국의 허무한 패퇴를 바라보는 서방진영에게는 충격이었다.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한 불안감이 심화되는 상황을 두 눈으로 지켜봤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군사력으로 타국을 점령할 수 있지만 통치할 능력은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2001년 아프간 전쟁 후 20년 동안 미국은 군비만 1,100조원, 다른 비용까지 더하면 약 3,000조원 이상의 돈을 쏟아 부었음에도 민심(民心)을 얻지 못했다. 아프간 민심 관점서 냉정하게 보면 그들로서는 외적(外敵)과 괴뢰정부를 몰아낸 항쟁의 승리다.

탈레반이든 무자헤딘이든 북부동맹이든 아프간 실질 정치세력들은 서로 갈등하면서도 ‘침략자’ 미국에 맞서 20년을 싸웠다. 미국이 그동안 아프간에 민주적 정치체제를 이식하는데 실패해 자생력 없는 아프간 정부를 통제하는 점령군으로서 ‘군정(軍政)’을 실시한 결과다.

그래서 이번 ‘아프간 사태’는 미국에 맞서 버티는 북한, 이란, 쿠바, 베네수엘라 등에게는 낭보다. 군사적으로 자신을 공격하고 점령할 수도 있지만 통치할 수 없는 미국의 한계가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민심’만 장악하면 딱히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달리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큰 도전에 봉착했음을 의미한다. 러시아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와 소련 붕괴 후 미국 편에 선 동유럽 국가들은 미국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이고 중국 견제에 공동이해가 걸린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도 마찬가지 시선을 미국에 보낼 것이다. 특히 중국으로부터 직접적 위협을 받는 대만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지난 17일 사설에서 ‘어제는 사이공, 오늘은 아프간, 내일은 대만?’이란 문구를 사용해 “미국이 카불 정권을 버린 것은 아시아 일부 지역, 특히 대만에 큰 충격을 줬다”며 “대만의 운명에 대한 모종의 전조”라고 했다. 양안 갈등에 중국이 공격적으로 태세를 전환할 수 있다는 신호다.

마찬가지로 아프간 사태는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진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가 진행되고 탈레반의 승리가 사실상 확정된 시점인 지난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으로 낸 담화에서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미국의 아프간 패퇴를 직접적으로 겨냥하며 미국에 ‘대북적대시 정책’ 철회를 압박한 것이다. 

그리고 남북 통신선이 복구된 지 한 달에 안 된 시점에 다시 단절했다. 이러한 흐름을 보면 북한은 아프간 사태가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쳐 자신에게 유리한 흐름이 만들어질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울러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8일 ‘우리 당을 인민의 심부름군당으로 건설하기 위한 기본요구’ 제목의 기사에서 “당이 민심을 얻는 것은 천하를 얻는 것이나 같고 민심을 잃는 것은 당 자체를 잃는 것이나 같다”며 인민 중심의 사업 추진을 강조했다. 

북한의 ‘인민 중심주의’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프간 사태의 본질이 미국의 아프간 민심 획득 실패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르다. 북미협상에서 ‘체제안전과 보장’이 최우선인 북한은 자신의 ‘최후의 보루’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가다듬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한국과 미국이 군사적 행동으로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려 할 경우 아프간 사태처럼 될 것이란 생각을 대내외에 알린 것이다. 이에 북한은 묵혔던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 미국을 압박하고 한국사회 내부에도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를 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프간 철군’으로 美 강경보수 입지약화, 미국의 한국군 전작권 유지 명분 약화

미국은 아프간 철수로 자신의 국제적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철군에 대해 “미국을 위한 올바른 결정”이라면서 “아프간 정치 지도자들은 (싸움을) 포기하고 나라를 떠났다. 군부도 싸우지 않았다”며 미국 국익을 위한 철군 결정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 네오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이자 워싱턴포스트(WP) 기고가 마크 티센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만약 한국이 이처럼 지속적인 공격을 받는다면 미국의 도움 없이는 금세 붕괴했을 것이다. 우리 없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동맹국은 사실상 없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지난 2001년 아프간 침공을 이끌었고 북한 핵 위기 때마다 북한 선제타격론을 주장한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 이들 네오콘의 속내가 묻어있다. 조지 부시 정권 때 네오콘이 주도한 아프간 침략 정책실패를 가리기 위해 ‘미군 개입의 모범적 사례’로 통하는 한국을 끌어들인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도 WP 기고에서 한국 사례를 들며 바이든 행정부의 철군 결정을 비판했다. 이 또한 과거 부시정권의 아프간에 대한 군사적 개입 전략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 군부와 군산복합체의 이해와 결부돼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진 않을 전망이다. 한미 갈등 현안 중 하나인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도 걸려 있다. 미국 군부와 보수진영은 6대 군사강국으로 평가받는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 한국군 지휘권 소유는 동북아 군사안보에서 미군의 우월적 힘을 뒷받침하는 것이자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주도권 장악의 구성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매년 1조 원 이상 지불하는데다 미국 무기 수출시장이다. 아프간에서 매년 100조 원 가량 미국이 퍼부어야 했지만 한국은 반대다. 일본과 대만도 미국 무기를 수입하는 큰 고객이며 이로 얻는 이득이 크다. 그러나 아프간 철군은 한국의 ‘자주국방’ 욕구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고 미군의 전작권 유지 명분도 약화시켰다.

‘남·북한 공존’에 국제적 공감대 제고, 한반도프로세스 추진에 장기적 측면에선 긍정적 

한반도평화프로세스 또한 마찬가지다. 비핵화와 연계한 정전협정 종료와 평화협정으로의 이행, 북미관계 정상화, 남·북한의 장기간 공존이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요체다. 이를 추진하는데 걸림돌은 북한정권 붕괴를 욕망하는 미국 내 강경보수세력, 한반도평화를 방해하려는 일본 보수정권이며 한국의 일부 보수층도 이들과 연계돼 있다.

아프간 사태는 다름 아닌 이들을 타격했다. 그래서 네오콘이 변명에 나섰지만 그 정치적 파장은 점차 가시화될 것이다. 북한정권 붕괴를 원하며 군사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미국 내 강경 보수세력의 주장은 점차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남·북한 공존’을 전제로 한 북미 비핵화협상에 무게를 두고 가야 하는 여건에 있다.

아프간 사태는 단기적으로 미국에게 충격을 주고 북한을 고무시켰지만 또 각자는 자신의 이해에 따른 ‘주판알 굴리기’에 분주하다. 이에 따라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단기적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남·북·미 뿐 아니라 중국·일본 등 주변국들의 ‘아프간 계산’을 끝낸 시점이라야 한반도평화프로세스도 재가동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는 문재인 정부보다는 차기 정권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분명한 것은 ‘남·북한 공존’에 대한 수용도와 공감대가 높아진 환경에서 다시 협상 판이 열릴 것이란 점이다. 이는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추진에 있어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금까지 ‘남·북 공존과 한반도평화’는 외교적 표방 측면이 상당부분 차지했다. 남북, 북미가 정상 간 합의를 이뤘음에도 상호 불신과 적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협상이 항상 살얼음판을 걷듯 하다 깨진 것도 이 때문이다. ‘아프간 사태’는 ‘남북 공존’ 방식으로 한반도문제를 풀어야한다는 인식의 틀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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