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중대재해 근절‧최저임금 인상‧비정규직 철폐 등 요구
경찰, 213개 부대 동원해 도심 59곳 3중 검문소 운영
집회 해산 과정에서 경찰관 폭행 혐의로 1명 체포

민주노총은 3일 2시 종로3가 일대에서 ‘노동자대회’를 열어 중대재해 근절,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철폐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주최 측은 이날 8000여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사진=김유경 기자>
▲ 민주노총은 3일 2시 종로3가 일대에서 ‘노동자대회’를 열어 중대재해 근절,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철폐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주최 측은 이날 8000여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사진=김유경 기자>

 

[폴리뉴스 김유경 기자] 민주노총 조합원 8천여명이 비바람 속에서도 중대재해 근절, 최저임금 인상 등을 정부에 촉구하며 서울시내에서 집회를 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한 서울시와 경찰의 집결 차단 방침에도 민주노총은 장소를 여의도에서 종로3가로 바꿔가면서까지 집회를 강행했다. 

앞서 민주노총은 서울시에 3일날 97건의 집회와 행진을 진행하겠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해당 집회 신고에 대해 금지통보를 내렸고, 경찰도 집회 인원을 제한하는 서울시 고시를 근거로 금지를 통고했다.

큰 충돌은 없었지만 한 남성이 집회 해산 과정에서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은 52명 규모의 특별수사본부를 편성해 집회 주최자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집시법 위반과 일반교통방해,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엄정 수사하겠다는 방침이다.

경찰 집결 차단 방침에…민노총 장소 바꿔 ‘기습시위’

민주노총은 3일 오후 2시 여의도와 광화문 일대에서 집회를 열기로 했으나 경찰이 집회를 차단하기 위해 213개 부대를 동원해 한강 다리와 여의도 주변, 도심 59곳에 3중 검문소를 운영하며 집회 참가 인원의 차량 진입을 막았다. 주최 측은 오후 1시께 조합원들에 종로3가로 장소 변경을 공지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오후 1시 50분쯤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을 정차하지 않고 건너뛰도록 했다.

민주노총은 2시 종로3가 일대에서 ‘노동자대회’를 열어 중대재해 근절,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철폐, 노동법 전면 개정, 노동기본권 보장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주최 측은 이날 8000여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폴리뉴스>와 오전 11시 반에 통화할 때만 해도 2시 여의대로로 시간과 장소가 정해져있다고 했으나, 1시경 갑작스럽게 변경하게 된 이유로 “경찰이 서울시하고 집회 자체를 불허하면서 차벽을 다 쳐놔서 노동자들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급히 판단내렸다”고 말했다. 방역 문제가 지적됨에도 강행하게 된 이유를 묻자 “더 절박해서”라며 “저희도 감염이 다 무섭지만 지금 현장에 가서 일하다가 죽고 다치고 해고당하고 구조조정 당하고 노조법, 복수노조 때문에 교섭 한 번 못하고 내년도 최저임금 문제까지 걸려 있어서 그런 절박함이 감염의 두려움보다 더 크다”고 했다.

이어 한 대변인은 “정부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이 안전하게 집회를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게 방안을 얘기했고, 그렇게 했던 경험과 역량이 있는데, 문화공연을 허용하거나 식당에서 사적모임 인원을 상향도 하면서 오로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집회만 과도하게 막고 있어 그런 부분들에 화가 난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9일 “서울시와 경찰이 코로나19를 이유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약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한 대변인은 또 “이제라도 정부가 절박한 목소리를 듣고 진정성 있게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면 언제든지 만나서 대화하고 우리 의견을 주고 정부 의견도 청취할 그런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했다.

전종덕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우리는 코로나보다 해고가 더 무섭다. 살기 위해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기본 권리를, 생계를 보장받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김유경 기자>
▲ 전종덕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우리는 코로나보다 해고가 더 무섭다. 살기 위해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기본 권리를, 생계를 보장받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김유경 기자>

 

좁은 간격 두고 도로에 앉아 “코로나보다 해고가 더 무섭다”

민주노총 측은 참가조합원들이 미리 발열체크를 하고 방역수칙에 있어 정부 지침보다 높은 수준으로 관리한다며, 조합원들에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고 거리 간격을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집회 현장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은 찾기 어려웠으나 거리두기 간격은 약 1m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집회 측 스피커로 투쟁가가 울려퍼지는 동시에 한쪽에서는 불법집회시위를 해산하라는 경찰측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여러분들은 금지 통보된 불법 시위를 하며 도로를 무단점거하고 일반 시민의 안전 감염병 확산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여러분들의 집회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조합원들은 아스팔트에 앉아 ‘노동법 전면 개정하라!’는 미니 현수막을 들고 ‘투쟁!’을 외쳤다. 집회를 시작할 때만 해도 먹구름이 끼어 있고 빗방울이 살짝 떨어지는 정도였지만 30분쯤 지나 점차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조합원들은 준비해온 우비를 착용하며 시위를 진행했다. 관련 단체들과 민주노총 소속 지부가 적힌 깃발이 이들을 둘러싼 채 나부끼고 있었다.

마이크를 먼저 잡은 전종덕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우리는 코로나보다 해고가 더 무섭다. 살기 위해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기본 권리를, 생계를 보장받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며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 대통령이 말하는 노동존중 세상은 어디로 갔나. 거침없는 110만 총파업으로 불평등 세상을 끝장낼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정부가 약속했던 것만이라도 지켰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 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약속,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약속,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약속, 도대체 이 정부는 이런 약속을 하나라도 지켰단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양 위원장은 “우리는 투쟁으로 더 이상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통령과 정부는 성난 노동자들의 절규를 똑똑히 듣고 노동자들의 분노를 똑똑히 인식하길 바란다”며 중대재해 근본대책 마련 등의 요구사항들을 힘주어 말했다. 양 위원장은 하반기 총파업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민주노총이 3일 2시 종로3가에서 집회를 시작할 때만 해도 먹구름이 끼어있고 물방울이 조금 떨어지는 정도였지만, 약 30분이 지난 후 빗줄기가 점차 거세지면서 참가자들은 준비해온 우비를 착용하며 시위를 이어나갔다. <사진=김유경 기자>
▲ 민주노총이 3일 2시 종로3가에서 집회를 시작할 때만 해도 먹구름이 끼어있고 물방울이 조금 떨어지는 정도였지만, 약 30분이 지난 후 빗줄기가 점차 거세지면서 참가자들은 준비해온 우비를 착용하며 시위를 이어나갔다. <사진=김유경 기자>

 

“이렇게라도 목소리 내야 바뀐다” “감염 위험한데 정부는 왜 선 안 긋나”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감염병예방법 등 관련 법에 따라 3차례 집회 해산 명령을 내렸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고양파주지대에 소속돼있는 조합원 장모씨(36세)는 집회에 나서게 된 이유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기업이 빠졌다. 사장들은 빠지는 거고 현장에 있는 책임자 내치면서 사람 목숨을 똥값으로 만들고 있다”며 비판했다. 이어 “특히 건설노동자들은 사람 취급을 못 받고 있는데 하루 일당에 주휴수당 절대 없고 포괄로 묶는다”며 “그나마 노조한테만 조금 해주고 일반 노동자들은 더 갈취당한다”고 했다. 장 씨는 “안전수칙을 다 지키고 하려 했지만 허가를 안 내줬고 기습적으로 했지만 그렇게라도 목소리를 내야 했다”고 덧붙였다.

탑골공원을 지나던 중 집회가 열리는 것을 보고 멈춰선 이모 씨(양천구‧60세)는 “잘됐다. 어디든 땅만 있으면 해야 한다. 있는 사람들은 아래 사람들을 소모품으로 안다. 저러다 끊기겠지 싶다가도 더 심하게 달라붙으면 그때야 이거는 좀 어떻게 해봐야겠다 이런 식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남부인력을 통해 건설업 일용직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 씨는 “안전모 같은 장비 한 번 타본 적 없다. 각각 다 주게 돼있는데 주지도 않고 (받았다고) 사인하라고 한다. 안전비용 자체가 너무 싸다. 원청은 항상 뭘 해도 남는데 하청은 거의 적자다”라고 했다. 이어 “노가다 오래 한 사람들 어떤 생각 갖고 있는지 아냐”면서 “대한민국 확 전쟁이나 터져라. 기업들 수출 잘돼봤자 우리한테 아무것도 안 들어온다. 자기들 배부르기 위해 우리가 배고프다. 너하고 나하고 동등하다고 취급을 안 한다”고 토로했다.

집회 현장 부근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장모 씨(양천구‧52세)는 “감염 때문에 위험하다고 하는데, 델타 변이도 그렇고, 굳이 이렇게까지 강행을 해야 하나 불만이 있다. 정부가 사전에 이렇게 안 되게끔 선을 그었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게 또 안 되는 건지 답답한 것도 있고. 안 그래도 시내 나오면서 다 막혀서 밀리더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중에도 집회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3시 15분께 집회를 마무리하고 종로5가 방향으로 행진했다. 경찰들 역시 방패를 들고 이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중 한 경찰에게 의견을 묻자 “해야 하니까 하는 건데 좀 힘들긴 하죠”라며 말을 아꼈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6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폐지를 담은 리어카를 끌며 대로변을 지나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우산을 쓸 손이 없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청년은 귀금속 거리에서 수레로 택배박스를 운반하며 상점 한곳한곳에 물품을 전해주고 있었다. 멀찍이 지켜보고 있다 뭔가 물으려 다가갔지만 “지금 상황 안 보이냐”며 할 일을 계속 이어갈 뿐이었다. 살짝 무안해져 고개를 돌렸을 때 집회로 꽉 들어찼던 도로는 텅 비어있었고 시위대의 외침과 경찰의 명령, 그리고 투쟁가의 시끌벅적한 뒤섞임은 빗소리가 대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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