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기업, 반도체∙배터리 등에 약 44조원 규모 투자
한미정상 공동성명에 담긴 對中 메시지 ‘톤다운’에 역할 했다는 분석
야권에선 “내준 것에 비해 받은 건 기대 이하” 지적 잇따라

국내 4대 기업이 미국의 반도체, 배터리 및 전기차 시장에 44조원가량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 국내 4대 기업이 미국의 반도체, 배터리 및 전기차 시장에 44조원가량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폴리뉴스 홍석희 기자] 국내 4대 기업이 미국의 반도체, 배터리 및 전기차 시장에 44조원가량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첨단 산업에서 미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한국 기업의 의도와 자국 중심 공급망을 확충하려는 미국의 요구가 부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규모 투자로 남중국해 문제 등에 있어서 중국에 대한 강경메시지의 수위를 낮출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야권에선 “우리가 내준 것에 비해 돌려받은 것이 적다”며 정부 역할에 대한 혹평이 잇따르고 있다.

4대 기업, 美 반도체∙배터리 등에 44조원 대규모 투자

삼성∙LG∙현대차∙SK 등 4대 기업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약 44조원(394억달러)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기대를 모았던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분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170억달러(약 19조1000억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을 구축할 전망이다. 신규 공장이 들어설 지역은 추후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 분야 경쟁사인 TSMC가 미 애리조나에 13조5000억원(120억달러)를 투자해 5나노 공장을 짓기로 한 상황에서 삼성전자도 본격적으로 미국에서의 반도체 패권 경쟁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미국에 170억 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공장을 구축할 계획”이라며 “양국 경제에 기여하고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통해 미국 기업과 동반으로 성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도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총 약 15조7000억원(140억달러)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테네시주에 2조7000억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제2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했고, 별도로 2025년까지 미국에 5조원을 추가로 투자해 독자적인 배터리 공장을 지을 방침이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 20일 포드와 총 6조원 규모의 합작사 ‘블루오벌에스케이(BlueOvalSK)’ 설립 계획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 시각) 미 조지아주에 있는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 찾기도 했다.

현대자동차도 2025년까지 미국에 전기차 생산설비와 도심항공교통(UAM), 로보틱스, 자율주행, 수소 사업 등에 약 8조1000억원(74억달러)을 투입해 본격적으로 미국 전기차 시장 공략에 나설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4대 그룹의 이번 투자로 첨단 분야에서 미국과 협력을 확대하고 북미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진출이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규모 투자, 미국의 對中 메시지 ‘톤다운’하는 데에도 역할

국내 기업들의 투자가 美-中 사이의 ‘실리 외교’ 측면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44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선물보따리가 강경한 對中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미국의 입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만과의 남중국해 분쟁은 주요 외교 의제 중 하나였다. 중국은 다른 나라가 대만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를 내정간섭으로 여기고 있다. 지난달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중국’이라는 표현이 네 차례나 등장하며 중국이 격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번 회담에서도 공동성명에 “대만해협(Taiwan Strait)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한미 양국이 공동성명을 통해 대만 문제를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의 환구시보의 인터넷판 환구망은 “대만과 남중국해가 (회담에서) 거론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미일 정상회담과는 달리 공동성명에 ‘중국’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한국을 두둔하는 뉘앙스를 보이기도 했다. 중국 인민망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호응할 수 있는 가장 강경한 수위다”라고 밝혔다. 오히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흔들어댄 결과”라며 미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놨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일본 언론은 한국을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당기려는 미국의 입장, 중국과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한국의 입장이 전부 반영된 회담이었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제시한 44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이 양측의 조정 과정에서 ‘윤활유’ 역할을 했다고 본 것이다.

野 ‘44조원 내주고 받아온 것 기대 이하’ 혹평

한편 야권에서는 기업들이 44조원이라는 매력적인 협상 카드를 내밀었음에도 우리 정부가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얻어내지 못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4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4대 기업의 피 같은 돈 44조원 투자를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와 맞바꾼 기대 이하의 성적표”라고 회담 결과를 평가절하했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의 요구였던 백신 스와프가 성사되지 못했고 미국의 군사적 차원의 필요였던 국군장병 55만명 분의 백신을 얻는 데 그친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라며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군사 동맹 국가에 대한 미국 측의 배려이자 군사적 필요성 차원에서 나온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역시 이날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백신은 언제 이행될 지도 모르는 약속 어음을 받아온 것이다. 현금을 지급하고 물건 대신 어음을 받아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 권한대행은 "우리 기업들이 44조원 규모 대미 직접투자 계획을 발표했음에도, 결국 손에 잡히는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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