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IT업계 연봉 인상 도미노가 이어지는 가운데, 김환민 IT노조 위원장이 17일 폴리뉴스와 인터뷰에서 '소수의 ‘우수 인재’들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업계 전반에 걸쳐 합당한 임금을 지급받는 공정 생태계가 자리잡도록 대기업이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NC>
▲ 게임·IT업계 연봉 인상 도미노가 이어지는 가운데, 김환민 IT노조 위원장이 17일 폴리뉴스와 인터뷰에서 "소수의 ‘우수 인재’들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업계 전반에 걸쳐 합당한 임금을 지급받는 공정 생태계가 자리잡도록 대기업이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NC>


[폴리뉴스 김유경 기자]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가뜩이나 주목 받고 있는 정보기술(IT) 개발자들의 몸값이 날로 뛰고 있다. 우수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IT업체들이 앞다퉈 임금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우려의 목소리 역시 나오고 있다. 김환민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이하 IT노조) 위원장 겸 게임개발자연대 대표는 17일 폴리뉴스와 인터뷰에서 “소수의 인재들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업계 전반에 걸쳐 합당한 임금을 지급받는 공정 생태계가 자리잡도록 대기업이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Q. 최근 게임·IT업계 '임금 인상' 행렬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진작 이뤄졌어야 할 것이 이제 그나마 정상화된 것이라 본다. 그간 대기업들이 굉장히 성장한 것에 비해 그 과실을 노동자들과 나누는 데 소홀했다. NC 같은 경우 2017년 리니지M 성공에 축하의 의미로 전 사원에게 최초로 300만원을 지급한 게 첫 성과금이었고, 그 전에 한창 돈 많이 벌던 시절에도 초봉이 3000만원대였다. 또 회사 내부에 프로그래밍하는 개발직군과 기획, 디자인, 일러스트, 효과음, 이펙트 등을 담당하는 ‘비개발직군’ 간 차등이 있다.

Q. ‘크런치모드(게임 출시를 앞두고 야근과 밤샘 작업이 일상화되는 관행)'란 말이 있을 정도로, 고강도 노동에 비해 처우가 낮았던 이유는?

노조가 없었던 시절이 길었다. 최근에서야 노조가 생겨 간신히 임금 단체협상을 하기도 하지만, 그 전까지 개별 연봉협상을 통해 자기 임금을 올려야 했다. 이런 각자도생 식이면 노동자의 권리 행사가 쪼그라든다. 그렇기에 한 회사에 오래 다니기보다 이직하면서 몸값을 ‘튀겨서’ 가는 그런 경향이 있었다. 내부 승진보다 헤드헌팅 당해 이직하는 식으로 연봉을 올리는 게 더 쉬웠다. 지금도 그런 업계 문화가 남아 있다. 얼마 전 넥슨이 임금 단체협상을 할 때 사측이 노조 측 의견을 수용하는 척하다 일방적으로 인상안 발표를 해버렸다. 노조에서 협상이 돼서 올라갔다기보다 사측에서 생색내기용으로 통보한 측면이 크다.

Q. 연봉이 인상되면 노동자들에게 좋은 것 아닌가.

물론 환영한다. ‘금융치료’라는 말이 있는데, 입금이 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회사가 용서된다. 자고 일어났는데 연봉 1000만원이 올랐다고 하면, ‘지금까지 올려줄 수 있었는데 또는 올려달라고 했었을 때 왜 안 올렸었나’ 이런 분노가 일지 않는다. 거기서 많은 것들이 가려진다고 본다.

Q. 가려진다는 게 무엇인가. 연봉 인상의 그림자가 있나.

임금 인상 러시가 이어지고 있는 건 개발자들의 몸값이 높아진 데 대한 결과인데, 왜 회사에서 경쟁하듯 우수 인력을 붙들어두거나 다른 데서 데려오기 위해 연봉을 올리는지 봐야 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기 때문인데, 근본원인으로 기업이 인재 키우는 노력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일단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에선 인력을 빼앗길까 불안해한다. 그곳 인력들도 경력을 쌓아 이직할 생각으로 자기스펙을 쌓는 데 치중한다. 대기업들은 신입공채를 줄이는 반면 ‘경력 신인’을 빨아들인다. 이들이 초임 높은 신입에 대거 몰리면, ‘진짜 신입’들은 갈 데가 없어진다. 기업 입장에선 늘 인력난을 호소한다. 사실 수많은 학교·학원에서 프로그래머들을 배출한다. 다만 회사에서 원하는 만큼의 개발 역량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이 같은 ‘미스 매칭’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이 2018년 한창 정부와 학교에 쓸 만한 인재를 키워달라고 했다. 

하지만 IT 첨단산업을 달리고 실무 트렌드를 가장 잘 파악하는 곳이 기업, 특히 대기업이다. 교육에 투자하고 인력을 양성시키는 건 기업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기업은 인적투자를 하지 않고 허들을 높이 만들어놓고는 ‘알아서 이만큼까지 스펙 맞춰 와’하며 ‘인력 쇼핑’만을 하겠다는 식이다. 무책임한 처사다.

Q. 임금 지급 여력이 충분치 않은 업체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이직 유인이 더 늘어날까.

외부적으로 봤을 때, 하청업체나 납품업체들에 합당한 돈을 줬느냐. 그렇지 않다. SI 특성상 제시되는 금액을 받고 거기서 임금이 분배되는 구조다. 통상 원청에서 하청에 들어가는 돈을 쥐어짜기 마련이고, 하청업체에서 직원들에게 적정 임금을 지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선순환구조가 이뤄지지 않으면 중소업체에서는 키워놓은 개발자를 저 뺏길 수밖에 없고, 업계 전체로 보면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

Q. 어떤 식의 양극화를 말한 건가.

IT업계만의 얘기는 아니겠지만, 대기업이 스타트업 같은 데서 만든 시스템이나 솔루션 회사 자체를 싼 값에 사려 하거나 아이디어, 서비스 등을 베낀다. 예를 들어 1000억원 주고 회사를 사는 게 아니라 핵심 인력, 한 명당 2억원 정도로 20명 팀을 세팅해 그대로 가져오는 식이다. 알고리즘, 기획, 핵심 시스템 등 다 가져올 수 있다. 공정한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

Q. 기업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스타트업 같은 데가 인재사관학교는 아니다. 뭔가를 만들어서 계속 임금을 지급하고 사업을 확장해야 하는 기업이다. 대기업에 지적하고 싶은 것은 외부에서 뭔가를 쌓지 않으면 아예 대기업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자체가 노동환경에서 큰 문제다. 채용시장에 이제 막 뛰어든 학생들은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을 겪어야 취업이 가능한 구조인데 이는 학생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도 딴 데 갈 생각으로 잠깐 머무르는 식이면 유능한 인재로 성장하기 어렵다. 

2012년에 ‘NHN넥스트’라고 게임쪽 어플리케이션 만드는 사관학교를 만들었다 2년 정도만에 중단됐다. 절대 문 안 닫겠다면서 시작했는데도. 기업이 인재를 키우면서 들어가는 시행착오에 대해서 단순하게 비용 손실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금 당장 비용을 낮추기 위해 불공정한 행위들을 하면 어딘가에선 파열이 나타나게 된다. 작은 회사가 연구개발 투자비를 충분히 지출하고 적정 임금을 지급할 수 있게 하려면, 전체적인 배분에 있어 공정한 생태계가 형성돼야 한다. 원청이 하도급 비용을 정당하게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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