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리 골목의 '첫 출발' OB베어...지난해부터 강제철거 위기
"사적문제 넘어선 공익문제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지난 40년간 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지켜온 '을지OB베어'. 최근 건물주와의 재계약에 실패해 존폐 위기에 쳐해 있다. <사진=김현우 기자>
▲ 지난 40년간 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지켜온 '을지OB베어'. 최근 건물주와의 재계약에 실패해 존폐 위기에 쳐해 있다. <사진=김현우 기자>

 

[폴리뉴스 김현우 기자, 김미현 기자] 1000원짜리 노가리 한 포와 생맥주 한잔. 6평도 안 되는 한 호프집의 대표 메뉴다. 서울 중구 을지로 노포 골목에 위치한 ‘을지OB베어’다.

이 작은 호프집은 지난 1980년 12월 6일 처음 문을 열었다. 4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 자리에서만 노가리 골목을 지키며 ‘명소’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건물주로부터 명도소송을 받고 재계약 없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최수영 을지OB베어 대표는 “저희 가게의 문을 처음 연 강호근 사장님은 올해 95세다. 저의 장인 어르신인데, 그분에게 이곳은 삶이자 터전”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최 대표는 강 사장의 사위로, 2대째 장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1980년, 노가리 골목에 처음 문을 연 '을지OB베어'. <사진=김현우 기자>
▲ 지난 1980년, 노가리 골목에 처음 문을 연 '을지OB베어'. <사진=김현우 기자>

 

‘정’보다 우선인 ‘자본주의’

을지OB베어는 1980년 개업 당시 단돈 100원에 노가리를 술안주로 팔기 시작했다. 이후 비슷한 가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본격적인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 탄생했다. 이 골목의 첫 출발이 을지OB베어인 셈이다.

최 대표는 “반평생을 이 자리에서 동네 손님들과 가족같이 동고동락했다”며 “40년 전 처음 문을 연 이래 옛 전통을 지키기 위해 가게를 키우지도 않았다. 인테리어조차 바꾸지 않고, 모든 것이 40년 전 그대로다”고 말했다.

옛 전통과 함께 40년간 한 자리를 지킨 역할을 인정받으면서, 이곳은 2018년 호프집 최초로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의 ‘백년가게’로 등록됐다. 백년가게는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 오래도록 고객의 사랑을 받아온 곳’을 중기부가 발굴해 선정한다. 서울시도 노가리 골목 전체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을지OB베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가 찾아왔다. 지난 2018년 9월, 가게를 비워달라는 통보가 날아온 것이다. 건물주가 을지OB베어와의 재계약을 진행하지 않은 것인데, 대신 새롭게 계약한 곳은 을지OB베어의 맞은 편에 있는 ‘A 호프’였다.

을지OB베어처럼 작은 생맥주 가게로 시작한 A 호프는 지난 2013년 9월부터 공격적으로 노가리 골목 일대에 분점을 늘리기 시작했다. 2017년 말에는 을지OB베어 건물 1층의 점포 3개가 모두 A 호프 분점이 됐다. 현재 노가리 골목의 대부분은 A 호프가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이 골목을 40년 동안 지켜오면서 ‘우리 집만은 건드리지 않겠지‘ 생각했는데 여기마저 계약을 해버렸다”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2018년 10월까지가 계약 기간 만료였는데, 8월에 건물주가 다른 곳과의 계약을 이미 체결했다고 통보했다. 이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현재 임대료의 2배를 주겠다는 말도 했는데 (안 됐다)”라며 “물론 재계약에 대한 선택권은 임대인에게 있지만, (우리는) 장인이 살아계실 때까지만이라도 이곳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세입자 을지OB베어와 건물주는 임대계약 연장을 놓고 명도소송을 벌였지만 을지OB베어가 1심과 2심에서 패소했다. 이어 지난해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0일, 을지OB베어의 강제철거를 위해 용역업체 직원 100여명이 현장을 찾았다. 사진은 시민 1명이 쓰러져 있는 모습. <사진=남원호 중구소상공인지원센터 회장>
▲ 지난 10일, 을지OB베어의 강제철거를 위해 용역업체 직원 100여명이 현장을 찾았다. 사진은 시민 1명이 쓰러져 있는 모습. <사진=남원호 중구소상공인지원센터 회장>

 

단순한 임대인과 임차인의 문제 아닌 ‘공존과 상생의 문제’

을지OB베어의 문제는 단순한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분쟁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많다.

노가리 골목 상권의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담당하는 중구소상공인지원센터의 남원호 회장은 “물론 다른 시각에서 볼 땐 단순한 개인간의 문제일 수도 있다”며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작은 호프집이 ‘추억‘일 수도 있다. 또 이 호프집을 운영하는 분들에겐 삶의 전부이고 터전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을지OB베어의 강제철거를 위해 용역업체 직원 100여명 찾아왔다. 당시 3시간 동안 상인 측과 용역업체의 대립이 있었고, 그중 몇 명은 작은 부상을 입었다.

이에 대해 남원호 회장은 “지나가는 일반 시민분들도 우리를 도왔다”며 “이곳은 우리에게 있어 단순한 호프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남 회장는 “서울시와 중구청에도 이 문제를 놓고 소통하려 했다”며 “이는 개인 간의 사적문제를 넘어선 공존을 위한 공익문제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문제”라고 말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노가리 골목의 경우를 보면, 기존에 낙후된 상권에 중소규모의 상인들이 자리를 잡게 되는데, 이후 상인들의 노력에 따라서 다시 활성화가 되면서 동시에 임대료도 높아지는 등의 현상을 얘기한다.

이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장 큰 단점은 기존에 오랫동안 장사를 해오던 상인은 높아지는 임대료로 인해 되려 경제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일각에선 노가리 포차 골목에 들어선 상권들이 도리어 원조를 내쫒고 있는 상황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을지OB베어를 중심으로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들은 ‘을지OB베어와 노가리 골목의 상생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결성하고 서울시에 상생을 촉구하고 있다.

공대위는 “중구는 서울시와 협력해 노가리골목 상권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방지와 상인들의 내몰림 현상을 방지하라”며 “특정 점포의 독과점이 아닌, 다양한 점포와의 상생으로 상권이 활성화되도록 대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중구청은 이번 갈등에 대해 "우리는 문제가 된 을지OB베어 측과 건물주 간의 대화 자리를 마련하고, 개별적으로 설득도 하는 등 분쟁조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이미 사법부의 판결이 내려졌다. 이를 지자체가 번복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노가리 골목 상권의보호 및 활성화가 될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구청은 지난해 1월부터 을지로 골목상권의 활성화를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 첫 번째 사업으로 ‘을지로 셔터갤러리’ 프로젝트를 추진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는 상가들의 셔터에 각 점포별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디자인을 입혀 이색적인 갤러리로 만드는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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