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강경파에 휘둘리는 ‘검찰개혁 시즌2’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대통령비서실 신현수 민정수석)<사진=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대통령비서실 신현수 민정수석)<사진=연합뉴스>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퇴 파동은 일단 봉합되었지만, 검찰개혁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이견과 난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기도 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검찰 고위급 인사 때 신 수석을 패싱하여 촉발된 파동의 여진이 살아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설치 입법’을 둘러싸고 여권 내부의 이견이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 황운하 의원이 발의하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중수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의 내용은, 검찰은 기소, 공소유지, 그리고 영장청구만 담당하고 6대 범죄 수사권을 완전히 분리해 중수청에 이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검찰은 아예 직접 수사를 할 수 없게 된다. 민주당 검찰개혁특위는 이 법안을 포함한 당내 논의를 거쳐 오는 6월까지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강경한 방침이다. 검찰의 수사권을 모두 박탈하는 내용의 이같은 법안은 민주당내 황운하.박주민 등 강경파 의원들이 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범여권 의원 16명이 함께 하는 공청회도 열어 입법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속도조절론이 나오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문 대통령은 수사권 개혁이 안착되고, 범죄수사 대응 능력, 반부패 수사역량이 후퇴돼선 안 된다는 말씀을 했다”고 전했다. 충분한 준비없이 너무 서두를 경우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였다. 검찰과의 안정적 협력관계 위에서 검찰개혁을 추진하려는 신현수 수석이 문 대통령의 그러한 의견을 뒷받침하고 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실제로 김종민 최고위원은 방송에서 “신현수 민정수석도 수사·기소 분리 원칙과 방향에는 공감하는데, 시기 문제에 대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검찰의 수사기능을 없애는 중수청 설치 법안에 대해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은 속도전, 청와대는 속도조절론을 강조하는 엇갈린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여권 내부에서 문 대통령의 그 같은 속도조절론을 반박하는 발언들이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는 점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수사청 설립을 통한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제 와서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면 67년의 허송세월이 부족하다는 것이 돼버린다"고 비판했다. "아직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 또한 어느 나라도 우리와 같은 검찰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무엇을 더 논의해야 한다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도 반박했다. 그런가 하면 '친문 적자'라 할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대통령께서 한 말씀 하시면 일사분란하게 당까지 다 정리돼야 한다는 건 과거 권위적인 정치 과정에 있었던 일"이라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적이 거의 없으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의견에 당이 꼭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 문 대통령에 대한 우회적 반박이었던 셈이다.

민주당 내의 강경파 의원들도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청와대의 의견을 반박하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당 검찰개혁특위 소속 김남국 의원은  "만약 여기서 멈추면 대통령선거 등 정치 일정상 언제 다시 추진할 수 있을지 모른다"며 "속도조절론은 사실상 개혁 포기 선언"이라고 주장했다. 역시 특위 소속 박주민 의원도 속도조절론에 대해 "그런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고 일축했다. 김용민 의원은 국회운영위에서 유영민 비서실장에게 "수사-기소 분리에 대해 속도조절론이 계속 나온다. 수사-기소 분리는 대선 당시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며 "중심을 잡아줄 것을 당부드린다"고  압박했다. 검찰 인사를 놓고 박범계 장관이 신현수 수석 뿐 아니라 문 대통령도 패싱했던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진 바 있지만, 이번에는 여권 강경파들이 신 수석 뿐 아니라 문 대통령까지 패싱하여 밀어붙이려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켜보는 국민들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해 내내 추미애-윤석열 갈등이 계속되었던데 대해 문 대통령이 사과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청와대는 검찰과의 지나친 갈등을 빚는 검찰개혁 방식을 피함으로써 민생에 주력하는 국정운영의 모습을 보이겠다는 신호를 보냈고 이는 만시지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검찰 출신인 신현수 민정수석이 기용된 것도 검찰과의 안정적 협력관계를 통해 검찰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제와서 다시 검찰로 하여금 자신의 존폐를 다투는 반발을 초래할 것이 확실하고, 국민들에게는 검찰에 대한 보복으로 비쳐질 법안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대통령의 말과, 여당의 행동이 다른 집권세력의 이중성으로 비쳐질 위험이 크다.

도대체 어느 것이 진의인지 궁금하다. 문 대통령이 국민 들으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것이 아니라면, 이제 여당의 강경파 의원들은 야당은 물론이고 문 대통령의 의견조차 패싱하며 법안을 밀어붙이려는 것인지 묻게 된다. 민주당의 강경파 의원들은 아예 검찰의 영장청구권까지 박탈하여 수사청에 넘기고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개칭하는 것까지 논의했지만 청와대 등의 우려에 따라 그 부분은 일단 접어둔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이 추진하는 ‘검찰개혁 시즌2’의 내용을 보면 지난해 윤석열 검찰과의 갈등 속에서 급격한 민심악화를 초래했던데 대한 성찰 같은 것은 읽을 수 없다. 그래도 청와대는 검찰개혁을 둘러싼 갈등 상황의 재연을 우려하며 신중론을 내는 모습이지만, 강경파 의원들은 자신들의 주장 이외에는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는 독선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박탈하는 일은 그저 ‘윤석열 검찰’이 괘씸하다는 속내 위에서 서둘러 추진될 일은 아니다. 국가의 수사역량이 후퇴하는 일이 없도록 여러가지 점검과 대책을 논의하면서 판단해야 할 일이다. 지금 강경파 의원들이 하겠다는 속전속결의 수사청 설립은 검찰에 대한 응징 의지만 읽혀지지, 국가의 미래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국가적 갈등이 간신히 봉합되는가 했더니 다시 갈등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다. 수사청을 만들어 검찰의 수사권을 넘겨주면 대체 무엇이 달라지는 것인지, 그렇게 서둘러 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언제나 정치적 감정이 앞선 강경파 의원들에 휘둘리는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변하지 않는 모습이 참으로 유감이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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