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선거제가 누더기 선거제가 됐다는 것은 다들 인정한다. 다만 개정을 주도해왔던 쪽에서는 연동형으로 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반대해왔던 쪽에서는 근원적으로 범여권을 위한 꼼수로 개악이라고 비판했다. 남은 선거일정과 선거 결과를 두고 봐야겠지만, 새로운 선거제 체제에서 우리 정당정치는 최악의 상황이다. 책임 소재만 달리 할 뿐, 최악의 정당정치라는 비판에 여야 정당도 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선거제 개편은 소수 정당들이 주도하고 여당인 민주당이 합류하면서 이뤄졌다. 준연동형 선거제라 이름 지었다. 독일의 혼합형 선거제를 빌려 온 것인데, 지지율에 연동된다는 의미를 강조하면서 연동형으로 바꿔 불렀다. 독일처럼 100% 연동이 아니라 50%만 적용한다고 준연동형이라고 했다. 독일식의 선거제는 오래 전부터 우리의 소선거구제를 보완하는 대안의 하나로 검토돼 왔다. 소선거구제에서 나타나는 사표 문제와 거대정당의 과대대표를 해결하기 위한 개편 대안이었다.
소선거구제의 문제를 보완하는 대안은 비례대표제를 확대하거나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활용하는 석패율제도 함께 거론됐다. 모든 제도는 장단점이 있다. 정치학계에서는 대체로 우리의 정치환경에서 중대선거구제가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클 거라는 지적이 많았다. 물론 지금까지도 통합당 쪽이나 일부 전문가 그룹에서 중대선거구제의 유용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동안 봐왔듯이 비례대표 운용에 더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통합당)에서는 사표 해결 문제와는 별도로 아예 비례대표제의 전면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관련전문가들의 지지를 받는 가운데, 2015년 중앙선관위에서는 독일식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선거제 개편방향으로 국회에 제안했다.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건드리지 않는 수준에서 소선거구 200명, 권역별 비례대표 100명으로 구성했다. 의원 정수를 늘려 조정하지 않는다면, 253개였던 지역구를 50개 이상 축소해야 가능했다. 지역구 의원들의 기득권을 희생해야 하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중앙선관위의 제안은 국회에서 방치된 채로 흘러갔다. 그러다가 2018년 말 소수당들이 단식 농성까지 해가면서 선거제 개편을 밀어붙였다. 소극적이었던 민주당도 또 다른 속내로 선거제 개편에 합류했다.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면 해결된다는 생각으로 추진했지만, 막연한 기대였다.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에서 정수 확대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애초에 선거제 개편에 소극적이었던 민주당은 이런 여론까지 뚫고 의원 정수 확대를 추진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현행 300명 정수에 지역구-비례 배분도 그대로인 채로 비례 배분 방식만 바꿨다. 연동형이라는 독일식 제도가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50%만을 연동시키면서 준연동형으로 응용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비례대표 47명 중 정당투표에 연동시키는 배분대상을 30명에 한정시키는 ‘캡’도 씌웠다. 이렇게 애매한 연동형에 제1야당의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한 채 개정된 선거제였다.
개정 선거제의 취지에 동의하지 않았던 한국당(통합당)은 비례전문 정당을 만들어 대응하겠다고 했고, 민주당 등은 합법적으로 개정된 것이니 그 취지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공방일 뿐, 제도 내의 합법적인 범위에서 각 당의 대응전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른바 비례 위성정당이 태동했다. 비례위성 정당을 가짜정당 등으로 비난해왔던 민주당도 이내 비례 위성정당 설립에 가담했다. 민주당은 위성 정당을 먼저 만든 통합당에 책임을 돌렸지만, 자가당착과 지록위마의 주장으로 포장된 민주당의 비례정당 추진은 옹색한 모습이었다.
초유의 비례 위성 정당 체제이다. 통합당에서는 알바니아 등에서 등장한 바 있었다고 하지만, 조금 다르다. 알바니아의 비례정당은 새롭게 만든 위성 정당이 아니라, 기존 제도에서 연합을 해왔던 정당들이다. 기성 소수 정당들과 정치연합을 통한 역할 분담이었다. 우리의 정의당 등도 민주당과 이런 식의 연대와 역할 분담을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제1, 2당 모두 사실상의 지주정당이 돼 새롭게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또 민주당에 우호적인 별도의 비례 전문 열린민주당이 있는데, 민주당의 별동대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후보 등록 며칠을 앞둔 상황에서 상호관계가 미묘하게 엮이고 있다. 열린민주당은 스스로 민주당의 형제정당이라 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지지세력의 분산과 여론 악화를 우려하며 열린민주당의 부적절한 공천 활동을 중단하라 요구하고 있다. (이어짐)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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