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부정론을 연상시키는 친박세력의 움직임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인물들이 종종 등장하곤 했다. 이들은 2차 대전 중 600만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한 사실이 절대로 없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절멸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독가스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등의 가짜 주장들을 하곤 했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은 이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가운데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드레스덴 폭격』이라는 책에서는 연합군의 독일 폭격으로 사망한 독일 민간인 숫자를 부풀려 나치 범죄를 상대화했고, 『히틀러의 전쟁』에서는 히틀러가 유대인 학살을 지시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강제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유대인의 수는 과장되었고 그곳에서 죽은 유대인 대부분이 독가스가 아닌 발진티푸스 같은 질병으로 죽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나치가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으며, 홀로코스트는 막대한 보상금을 노린 유대인 생존자들이 지어낸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수많은 증언들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통해 명백히 확인된 역사적 사실조차 부정했던 이들의 해괴한 주장은 광신적이라는 말을 듣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자기의 신념과 배치되는 사실들은 무조건 부정하며 모든 일들을 자기가 믿는대로 해석하는 확증 편향의 절정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광경이 2019년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태극기부대 등의 극우 단체들은 주말마다 박근혜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친박 의원들 입에서는 “잘못된 탄핵에 대한 반성이 우선”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박근혜 석방 촉구 결의안도 거론된다. 그런가 하면 자유한국당 의원들 토론회에서는 “어떻게 박 전 대통령은 10원도 직접 안 받았는데 33년형이 되느냐”는 항의가 나온다. 한마디로 그렇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감옥에 갇혀있으니 이제 풀려나야 한다는 얘기다. 이들에게 지난 2년은 망각의 시간이었다.

심상치 않은 것은 박근혜 정권의 2인자였던 황교안 전 총리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여 정치를 한다는 소식이다. 국정농단으로 나라의 기틀을 무너뜨려 대부분의 국민이 사퇴를 요구하는 가운데 탄핵당해 내쫒긴 정권의 2인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정치를 이끌겠다고 나서는 모습이다. 다시는 그런 역사가 되풀이 되는 일 없도록 하자는 다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이들의 부활 움직임을 보노라면, 역사에 대한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이 다시 벌어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이 실수나 판단 착오에 따른 것이 아니라 반(反)유대주의와 인종차별주의적 세계관의 산물이었듯이, 다시 박근혜로 돌아가려는 세력의 움직임 또한 역사와 사회에 대한 세계관의 근본적 차이라는 점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난 뒤, 만에 하나 그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게되면 역사는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앞에서 거명한 데이비드 어빙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주장을 계속하자, 에모리 대학의 데보라 립스탯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그를 히틀러 광신도이며 역사 날조자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어빙은 립스탯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3년 4개월에 걸친 재판이 진행된다. 그 재판의 과정이 영화 <나는 부정한다>를 통해 소개되었다.

영화에서 립스탯 교수는 재판에 이기기 위해 전략적으로 냉정한 태도를 유지한다. 변호인은 감정이 개입되지 않도록 어빙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도움을 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법정에 세우지도 않으려 한다.

립스탯 교수는 훗날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뜨겁기보단 차가워야 합니다. 사실 자체가 이미 너무 뜨거우니까요. 사실을 앞세우되 냉정하고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사실은 그 자체로도 힘이 있고 거기에 우리의 감정을 덧칠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그에게 진실은 결국 승리하는 것이냐를 묻자 다시 이렇게 대답한다.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우리가 눈앞의 왜곡되고 있는 여러 진실을 찾고 지켜내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결국 진실이 진다는 것을요.“

영화의 마지막에 판사는 립스탯 교수의 승리를 선언하는 판결을 내린다. 진실은 그렇게 지켜졌다. 이 영화의 원제목은 ‘부정’(denial)이다. 두 가지의 부정을 의미한다. 홀로코스트 부정(Holocaust denial)과 자기절제(an act of self-denial)다. 립스탯 교수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이기기 위해 먼저 자기를 부정하는 절제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감정적으로 흥분하지 않으며 이성적으로 냉정한 거리두기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그는 승리했다. 과거 세력의 부활 기도를 지켜보는 우리의 태도와도 이어지는 얘기다. 욕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만으로는 역사의 역류를 막는데 불충분하다. 우리도 스스로 절제하며 자기 자신에게 객관적 거리를 두고 성찰하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역사의 퇴행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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