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 언론 공개회에서 대통력이 전시되어 있다. 2022.11.24
▲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 언론 공개회에서 대통력이 전시되어 있다. 2022.11.24

[폴리뉴스 한유성 기자]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쓴 것으로 보이는 달력이 국내로 돌아왔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에 오른 문신이자 '징비록'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인물로, 관련 유물이 많지 않은 데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어 주목된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류성룡이 생전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 문화재 명칭은 한글 맞춤법 기준에 따름)를 확인해 지난 9월 국내에 들여왔다고 24일 밝혔다.

'대통력'은 오늘날의 달력에 해당하는 책력(冊曆·월일과 절기 등을 적은 책)이다. 책자 형태로 돼 있어 날짜 옆에 일정이나 개인적인 생각 등을 적기도 했는데 일종의 다이어리와 비슷한 것으로,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어 농사를 짓는 데 유용하게 쓰였으며 일상에서도 많이 활용했다. 

이번에 돌아온 대통력은 표지를 포함해 총 16장 분량으로, 경자년(1600년) 한 해의 기록을 담고 있다. 고려 공민왕 때인 1370년 국내에 들어와 약 280년 동안 쓰인 대통력은 국내에 남아있는 유물이 많지 않은 가운데, 경자년 대통력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물의 크기는 가로 20㎝, 세로 38㎝로 흔히 쓰는 A4 종이보다 조금 긴 편으로, 책자에는 먹물로 쓴 글씨를 뜻하는 묵서(墨書), 붉은색의 주서(朱書) 등으로 그날의 날씨, 약속, 병의 증상과 처방 등이 적혀 있다. 글이 적힌 날짜를 세어 보면 총 203일로, 언급된 인물은 190여 명에 달한다.

문화재청은 "기재된 필적과 주로 언급되는 인물, 사건 정보 등을 토대로 류성룡의 연대기가 기록된 '서애선생연보'(西厓先生年譜) 등을 검토한 결과, 그의 수택본(手澤本)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수택본은 소장자가 가까이 두고 자주 이용해 손때가 묻은 책을 뜻한다.

이번 대통력은 임진왜란 당시 군사 전략가로도 활약한 류성룡이 남긴 기록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상으로도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종이를 사용해 임시로 책을 매어둔 표지에는 총 83자가 남아있다. 위아래가 일부 잘려져 있는 이 글에는 '여해'(汝諧)라는 이름과 함께 "전쟁하는 날에 직접 시석(矢石·화살과 돌)을 무릅쓰자, 부장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만류하며 '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됩니다'고 말했다"고 돼 있다. 

이어진 글은 '직접 출전해 전쟁을 독려하다가 이윽고 날아온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고 번역할 수 있는데, 여해는 이순신의 자(字), 즉 충무공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주변의 만류에도 전장에서 지휘하다 전사한 상황을 묘사한 기록이다.

정제규 문화재청 상근전문위원은 "서애 선생께서 직접 (임시) 표지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1600년 당시 표지가 없어져 이전에 메모했던 종이 1장을 임시로 활용한 사례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순신 관련 기록에 대해 "표지에 쓰인 종이는 '징비록'에 쓴 것과 유사한데 이 책은 이면지를 활용한 경우가 많았다"며 "충무공 사망 당시 소회를 밝힌 글을 쓰고 이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통력에는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강항(1567∼1618)이 포로 생활을 마치고 1600년 돌아온 일을 비롯해 당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도 여럿 있으며, 쌀을 빚는 것부터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등을 자세한 적은 '술 제조법'도 여러 건 확인됐다. 파악된 술의 종류만 해도 7∼8종이다.

이번 대통력은 새로운 자료를 찾아냈다는 점에서도 뜻깊다. 류성룡의 종손 가에서 소장해 온 문헌과 각종 자료인 '유성룡 종가 문적'(柳成龍 宗家 文籍)은 현재 보물로 지정돼 있다. 여기에는 대통력 6책이 포함돼 있지만, 경자년 기록은 새로운 것이다.

이처럼 귀중한 자료가 국내로 돌아오는 데는 '조력자'들의 도움도 컸다. 대통력은 일본인 소장자가 2년 전 경매를 통해 사들였는데, 김문경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가 올해 5월 관련 내용을 문화재청과 재단 측에 알리면서 그 존재가 드러났다. 해외로 유출된 경위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정보를 입수한 재단 등은 고전학자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에 자료 번역을 맡겼고, 두 달간 내용을 검토한 끝에 이순신 관련 기록 등이 확인됐다. 이후 재단은 3차례의 평가위원회를 거쳐 유물을 확보했으며, 유물 구입에는 복권기금을 활용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서애 선생의 기록뿐 아니라 경자년에 발생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며 "향후 기록문화 유산 연구 및 활용에도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통력은 향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한 뒤 연구·전시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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