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민주화세력과 보수세력의 뿌리 동시 위기"
"'자유주의 부재'로 586세대 피기도 전에 몰락...정치 주도세력 되자마자 몰락"
“김대중과 노무현의 실용주의 관점이 사라진 민주당, 이제부터 진짜 위기"
"이재명, '가치기반 정치'로 변하지 않으면 다음 대선도 패배"
“20대의 '정치적 깨어남' 중요...민주화 기둥 40대의 낮은 투표율 주목해야"

안병진 교수는 2016년 촛불을 “기존 자유주의 헌법적 질서 내에서의 헌정주의 운동인 동시에, 새로운 30년 패러다임 즉 뉴 노멀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에서는 혁명적 성격이 있다”고 정의하고, “문재인 정부는 그러한 촛불의 과제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한계가 많았던 정부”라고 비판했다
▲ 안병진 교수는 2016년 촛불을 “기존 자유주의 헌법적 질서 내에서의 헌정주의 운동인 동시에, 새로운 30년 패러다임 즉 뉴 노멀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에서는 혁명적 성격이 있다”고 정의하고, “문재인 정부는 그러한 촛불의 과제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한계가 많았던 정부”라고 비판했다

[폴리뉴스 대담 김능구 대표, 정리 한유성 기자] 폴리뉴스 3월 두 번째 스페셜 인터뷰는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를 모셨다.

대전환 시대, 기후 위기와 팬데믹은 사람들의 일상을 새로운 모습으로 이끌고 있고, 4차 산업혁명이란 변화는 가능성의 영역으로만 존재하던 것들을 인류 문명의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압축 성장과 민주화를 통해 이제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자부하는 대한민국, 20대 대선을 통해서 새로운 리더십의 출범을 앞두고 있지만, 대전환의 큰 흐름 속에 능동적인 변화의 동력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미중 간 대결이 초래한 새로운 국제질서의 흐름은 정치외교와 경제, 사회·문화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영역에 영향이 불가피하다. 이에 미래학자이자 미국 정치체제 연구의 권위자인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를 통해 대선결과를 포함한 우리 현실에 대한 진단과 대응 방안을 들어보고자 한다.

"20대대선, 낡은 건 사라지는데 새로운 것 태어나지 않아...낡은 민주화세력과 보수세력 동시 위기"
"586세대, 대단히 부족한 '자유주의성 부재'로 피지도 못한채 몰락"

'20대 대선을 총평해달라'는 질문에 안병진 교수는 “낡은 건 사라지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법적으로는 윤 당선인이 이겼지만 국민들이 사실상 정치적 무승부를 기록하게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이재명 후보의 실용적인 행보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운동 세력이 주도했던 정부에 대한 심판을 벗어나기 어려웠다”면서 “낡은 것, 사실상 586이 주도했던 한 시대가 이제 막을 내려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586세대들의 몰락의 원인은 부족한 인문학적 소양에 의한 자유주의성 부재, 자유주의의 결핍때문이었다'고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저희보다 조금 더 윗세대들은 비록 이념이나 이런 건 체계화돼 있지 않았지만, 인문학적인 소양 속에서 인간에 대한 복잡함, 균형감 이런 게 좀 있었다"며 "김대중과 노무현은 너무 시대를 앞서간 자유주의자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김대중, 노무현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586이 실무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주도세력은 아니어서 586의 한계가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며, 그러나 "이번 문재인 행정부와 집권 정당에서는 두말할 나위없이 강력한 주도 세력이었다"면서 "그게 아이러니하게도 주도 세력으로 부상하자마자 몰락하는 원인이 됐다. 586이 본격적인 정치를 펼치자마자 대단히 부족한 '자유주의성'이 전면에 드러나 결국 피지도 못한 채 정치권에서 몰락하게 됬다"고 586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했다. 

그는 "사실상 민주화운동 세력이 10년이라는 사이클을 기록하지도 못하고 5년 만에 패배한 것"이라며 "민주화운동 세력의 치명적인 한계 중 하나가 관념성이다. 자신의 이념과 자의적 생각에 따라서 현실을 재단하는, 실사구시적이지 않은 DNA가 과거 학생운동이 주도했던 운동이 가질 수밖에 없는 특징"이라면서 "그 부분이 이번에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전통 보수와 이질적인 윤석열의 당선이라는 점에서, 국민의힘이 집권은 했지만 한국의 보수도 위기에 봉착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하고 “낡은 민주화 운동 세력, 더 퇴행적이었던 보수의 뿌리가 동시에 위기를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병진 교수는 2016년 촛불을 “기존 자유주의 헌법적 질서 내에서의 헌정주의 운동인 동시에, 새로운 30년 패러다임 즉 뉴노멀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에서는 혁명적 성격이 있다”고 정의하고 “문재인 정부는 그러한 촛불의 과제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한계가 많았던 정부”라고 비판했다.

"김대중, 노무현의 실용주의 관점 사라져...진짜 민주당 위기는 이제 시작"

20대 대선을 총평해달라는 질문에 안병진 교수는 “낡은 건 사라지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법적으로는 윤 당선인이 이겼지만 국민들이 사실상 정치적 무승부를 기록하게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 20대 대선을 총평해달라는 질문에 안병진 교수는 “낡은 건 사라지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법적으로는 윤 당선인이 이겼지만 국민들이 사실상 정치적 무승부를 기록하게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민주당에 보존되어 왔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실용주의 관점이 사라진다”면서 “진짜 민주당의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고 진단했다.

김대중, 노무현의 실용주의는 민주화의 시대적 가치와 '자유주의적 철학' 기반하에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내세운 잘못된 '속물적 프래그머티즘'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안 교수는 "이재명 후보의 장점이 기존의 관념적 민주화 세력들과 달리 구체적 현장, 현실에 기반해서 자신을 끊임없이 적응하고 변화시켜내는 능력,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이라면서 “이것이 대패할 수도 있었던 선거를 근접한 수준까지 가게 된 동력”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안 교수는 "한국의 실용주의와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은 다르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한국의 실용주의는 이명박 스타일의 실용주의다. '일단 돈 되는건 한다'는 것"이라며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은 존 듀이 등 굉장히 깊은 철학적 토대 속에서 나온 '가치가 전제'돼 있다. 더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 끊임없이 향상시켜나가는 실험주의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대중과 노무현은 미국 프래그머티즘에 가장 가까웠다"며 "김대중 대통령님의 지금까지도 인용되는 그 전설적 명언 ‘상인의 감각과 서생의 문제 의식’, 이게 프래그머티즘을 기가 막히게 표현하는 단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은(미국 프래그머티즘) 이재명 후보처럼 상황을 보다가 ‘이렇게 하면 먹히겠다’고 하는 좀 '속물적 실용주의'와는 전혀 다르다"고 냉혹한 평가를 내렸다. 

특히 "이재명 후보가 과연 직전의 자신과 근본적으로 단절할 수 있는가, 가치 기반 정치가로 변화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다음 대선에서도 근접점까지 가서 필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거듭 "이재명 후보가 다음번에는 우리가 이기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가 다시 예고해 드리겠는데 만약 이재명 후보가 ‘가치 기반 정치가’로서 혁명적인 변화가 없으면 다음 대선에 100% 진다"고 경고했다. 

"20대대선, 20대의 정치적 깨어남...40대 낮은 투표율 주목해야"

안 교수는 20대 대선의 특징적 현상 중 하나로 ‘20대의 정치적 깨어남’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준석 현상은 소위 루저라고 부당하게 평가받아온 20대 남자들 중에서 일각의 전위적인 보수적 남자들을 정치적으로 깨어나게 했고, 그들에게 효능감을 맛보게 했다”고 평가하고, 다만 “트럼피즘의 상륙처럼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로 이어지는 위험스러운 경향”을 우려했다.

20대 여성들의 이재명 지지에 대해 “이대로 가면 여성들에 대해 폭력적인 사회가 올 거라는 공포와 불안 속에서, 막판에 선거 전술적 차원에서 비판적 지지를 했던 것”이라면서, 선거 후 입당 러시 등 현상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강조했다.

안 교수는 보수 유튜브에서 제기되는 부정선거 이야기에 대해 “미국의 선거부정론도 극우 단체들이 퍼트리는데, SNS를 중심으로 한 ‘탈 진실의 시대’ 현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특히 부동표가 많았던 것을 일종의 비호감 선거로 볼 수 있다는 해석에 대해 “무효표도 그렇지만 40대의 낮은 투표율이 주목할 포인트”라면서 “40대는 민주화의 기둥이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에게 강렬한 지지를 보내기에는 다소 부족했던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안병진 교수는 1967년 대구 출생으로, 서강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미국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미국 뉴욕시립대 강사로 활동했고, 2004년 창원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조교수, 2007년 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과 교수와 사이버대 부총장을 역임했다. 2017년부터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국은 그 미국이 아니다(2021)’,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을 겸한 첫 회동을 했다. 지난 10일 당선이 확정된 지 정확히 19일만으로 역대 대통령-당선인 회동 중 가장 늦은 만남이다. (사진/공동사진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을 겸한 첫 회동을 했다. 지난 10일 당선이 확정된 지 정확히 19일만으로 역대 대통령-당선인 회동 중 가장 늦은 만남이다. (사진/공동사진취재단) 

 

[다음은 안병진 교수와 인터뷰 전문이다]

김능구 : 먼저 대선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안 교수님도 활발하게 방송에 나오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는데, 극단적인 진영 대결 속에서 0.73% 박빙의 대선 결과, 여러 해석을 할 수 있지만 어쨌든 진영 대결의 끝판이 아니었나 싶다. 20대 대선에 대한 총평 부탁드린다.

안병진 : 예. 저는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낡은 건 사라지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은’ 과거 그람시가 말했던 그런 상황에서, 법적으로는 윤 당선인이 이겼지만 국민들이 사실상 '정치적 무승부'를 기록하게 한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상당히 아쉬움이 많은 선거였다고 생각한다.

제가 이번 선거에서 굉장히 특징적으로 주목했던 것이, 대선 초반에 그런 얘기를 했는데 아마추어 아웃사이더들의 대선이라는 거다. 사실 김 대표님과의 선거 얘기는 공자 앞에 문자 쓰는 거지만, 제 소견에 역대 대선에서 양당의 후보 둘 다 이렇게 아마추어이고 아웃사이더인 대결은 없었다. 그게 이번 대선의 성격을 말해주는 특징이라고 본다.

그리고 20대와 30대, 특히 20대의 '정치적 깨어남'이 굉장히 주목할 포인트라고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무효표가 전례 없이 많았다. 그것은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선거 보이콧 같은 느낌이다. 무효표가 다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비호감 그리고 뭔가 새로운 전망이 보이지 않는 진영 대결 속에서 표를 던질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그것도 하나의 저항의 표현 아닌가 하는 거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정도의 징후만 보더라도 이번 대선은 낡은 것은 사라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행기 선거’라는 이야기다.

김능구 : 낡은 것이 사라진다고 하셨는데 교수님이 보실 때 뭐가 사라진 건가?

안병진 : 사실상 민주화 운동 세력이 10년이라는 사이클을 기록하지도 못하고 5년 만에 패배한 거다. 민주화 운동 세력이 빛나는 성취도 했지만 치명적인 한계 중의 하나가 관념성이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이념과 자의적 생각에 따라서 현실을 재단하는, 실사구시적이지 않은 DNA가 과거 학생운동이 주도했던 운동이 가질 수밖에 없는 특징이다. 그 부분이 이번에 심판을 받은 거다.

그에 비해서 이재명 후보는 민주화 운동의 주류는 아니다. 그래서 민주화 운동의 단점을 갖고 있지 않고 굉장히 실용적인 선거를 했다. 그 결과로 어떻게 보면 많이 따라잡은 거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가 불운했던 것은, 실용적인 행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구도, 즉 민주화 운동이 주도했던 정부에 대한 심판이라는 걸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 점에서 낡은 것이 사실상 사라져간다고 볼 수 있는 거다. 소위 586이 주도했던 한 시대가 이제 막을 내려가는 거다.

그리고 기존 검찰 내부의 DNA에서도 도저히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았던 별종, 더구나 한국의 전통적 보수 입장에서 더 이질적인 윤석열이란 존재의 당선이라는 점에서, 비록 국민의힘이 집권당은 됐지만 어떻게 보면 위기에 집권을 하면서 동시에 한국의 보수도 위기에 봉착한, 양 측면이 다 있다. 그래서 저는 낡은 기존의 민주화 운동 세력, 더 퇴행적이었던 과거 보수의 뿌리가 둘 다 사실상 무승부를 기록했고 또 위기에 동시에 봉착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왼쪽부터),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4일 오전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2022.3.4 [국회사진기자단]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왼쪽부터),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4일 오전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2022.3.4 [국회사진기자단] 

김능구 : 우리도 범 586 세대다. 586에 대한 여러 가지 논쟁이 나올 때, 저는 ‘586이 주도한 적이 있나?’라는 생각을 한다. 대체로 3김 시대부터 시작해서 그 이후로도 주도하기보다는 보좌하고 실무자로서 만들어가는 역할을 했다. 물론 영화라든지 의료계라든지 다른 방면에서는 실제로 586 세대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정치에서는 이 사람들이 중앙의 위치, 정점에서 활동한 건 가장 최근 몇 년에 국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김정치가 지나갈 때처럼 586 정치라고 명명하면서 낡은 정치가 가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수긍하기 조금 어렵다. 그건 어떻게 보시나?

안병진 : 대표님 말씀처럼 과거 김대중, 노무현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586이 실무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주도 세력이라고 보긴 어려웠는데, 이번 문재인 행정부와 집권 정당에서는 두 말할 나위 없이 강력한 주도 세력이었고, 그게 아이러니하게도 주도 세력으로 부상하자마자 몰락하는 원인이 됐다고 저는 보는 거다.

이것은 제가 학술적으로 진단하는 포인트, 한국 사회에서 10년 전부터 계속 자유주의를 얘기했던 것과도 연관이 되는데, 김대중, 노무현 행정부는 비록 그 당시 시대적 한계는 있었지만 자유주의적인, 그러니까 미국의 리버럴 정부 및 리버럴 민주당과 상당히 유사한 가치와 태도의 맹아가 있었다. 그래서 그때는 저와 같은 586 세력들의 한계가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너무 시대를 앞서간 자유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586이 드디어 본인의 가치와 세력으로 본격적인 정치를 펼치자마자 대단히 부족한 자유주의성이 전면에 드러나게 되는 거고, 그게 결국은 피지도 못한 채 정치권에서 몰락하게 하는, 어떻게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김능구 : 586의 몰락은 자유주의에 체화되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인데, 예를 들면 어떤 것인가?

안병진 :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저희보다 조금 더 윗세대들은 비록 이념이나 이런 건 체계화돼 있지 않았지만, 인문학적인 소양 속에서 인간에 대한 복잡함, 균형감 이런 게 좀 있었다. 그런데 소위 80년대 민주화의 봄 이후로 서구의 이념들이 수입되고 특히 한반도의 상황이 영향을 주다보니까, 저희는 철저하게 체계적인 이념의 세례를 받은 세력이 되었고, 그것은 학생운동 주도 세력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사실 그 당시 대학을 다녔던 586세대의 전반까지도 그 자장 안에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 시대가 가지는 한계가 드러나는 건데, 그 당시 저희는 '자유주의'라고 하는 것에 대한 극도의 냉소, 의구심 그리고 비난, 인간에 대한 선악의 이분법, 그리고 인간의 계몽을 통해 보다 이상주의로 가는 가능성에 대한 절대적 낙관, 확신, 이런 것들이 강했던 거다.

김능구 : 여기에서 교수님이 말하는 자유주의에 대해서 한번 규정이 필요한 것 같다.

안병진 :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 때로는 이기심 그리고 때로는 이상적인, 그러니까 자유주의라는 건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아니라 끊임없는 인간에 대한 회의에 기초한다. 그래서 미국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자유주의적 제도를 설계한 이유가 인간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 거다.

이런 자유주의적인 인간관이 없었다는 것이고, 그 다음에 저희는 법에 의한 지배의 관념도 부족했다. 전태일 열사의 투쟁이라는 게 사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준법투쟁이었다. 그러니까 군사독재 시절의 불법 속에서 법이라고 하는 것이 가지는 중요성을 아무래도 절실하게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거다. 그래서 법적 지배 특히 헌법적 정신에 근거한 정치적 판단에 대해 훈련이 안 돼 있는 거다. 한국의 헌법은 상당 부분 장식품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는 다수 민중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각 개개인의 존엄과 권리, 이것이 자유주의적 정신의 핵심이다. 그런데 저희는 각 개인이 가지는, 그것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장애인이든 아니든, 구체적 인간이 가지는 존엄성, 권리에 대한 문제의식이 너무나도 약했다.

오늘날 피해호소인 이슈라든가, 무조건 다수로 밀어붙이는 거라든가, 법적 쟁점에 대한 것 보다는 진영 관점이 앞선다든지. 내로남불처럼 한 사회의 '시민적 윤리'에 대한 관심의 미비라든가, 이런 게 모두 다 ‘당시 시대로부터 오는 한계가 전면화됐다’고 저는 보는 거다. 이제는 더 이상 전면적인 모순을 숨길 수 없는, 그리고 완전히 질적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거다. 그래서 낡은 것이 사라져 간다고 보는 거다.

김능구 : 그리고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는데, 어떤 새로운 것들이 나타났어야 되는가.

안병진 : 2016년 촛불을 정치학자들이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는 두 가지 관점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기존 자유주의 질서, 헌법적 질서 내에서의 헌정주의 운동인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30년 패러다임을 만들어간다는, 뉴 노멀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에서는 혁명적 성격이 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바라봐야 된다는 게 제 주장이었는데, 과연 문재인 행정부는 이 헌정주의적인 운동의 성격을 이해했는가라는 점에서 보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적폐라고 하는 것은 선과 악의 이분법이고,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썼던 단어다. 그러니까 박근혜를 탄핵했는데 박근혜의 언어를 쓰는 이 기묘함, 황당함이 있는 거다. 헌정주의적인 운동의 핵심, 촛불의 명령은 ‘한국사회가 아직 법치라든지 자유주의가 부족하다, 그래서 이거를 더 성숙시켜라’ 하는 명령인데, 그 관점에서 해야 될 일들이 많았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완화되고 의회가 주도하고 하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개혁들이 있고, 차별금지법이라든지 자유주의 사회가 가져야 될 다원성, 그리고 진보든 보수든 똑같은 룰이 적용돼야 되는 법칙 등이다. 그런데 조국 사태, 감사원 사태, 그 다음에 수많은 공기업의 자기 사람 뽑기 등에서 자유주의를 성숙시키기는커녕 완전히는 아니지만 일부 퇴행된 모습이 보여지는 거다.

그래서 뉴 노멀의 핵심은 자유주의를 성숙시키는 거고, 동시에 향후 30년 질서를 위한 새로운 전환적 기획을 해나가야 되는 거다. 그런데 새로운 전환적 기획의 핵심 중에 핵심, 모든 이슈를 다 덮는 기후 위기 이슈에 대해서 애초부터 문재인 행정부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문재인 행정부만을 비난할 게 아니라 당시 저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수준도 약했지만, 어쨌든 기후 위기라든지, 미중 간의 소위 신냉전에서 비롯되는 국제관계의 질적 변화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이 약했다. 그리고 불필요한 규제라든지 김대중 대통령이 했던 벤처를 이어가는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 특히 혁신의 핵심인 연방제적 분권, 과거 노무현 대통령과 성경용 위원장의 화두였던 이슈에 대해 문재인 행정부 기간 동안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거기다 마지막으로 ‘예상하지 못하게 터졌다’라고 생각하지만, 팬데믹은 미국이나 서구 국가들 시민사회에서 이미 제기됐던 이슈들이다. 보건은 21세기 안보의 이슈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국 사회는 거의 문제의식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기존 과제, 자유주의를 성숙시키는 과제에 있어서도 한계가 있었고 새로운 30년의 과제에 대한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 점에서 촛불의 과제를 이어간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한계가 많았던 행정부다. 그리고 집권당이라는 점에서도 저는 상당히 박한 평가를 내리고 싶다.

김능구 : 그러니까 이번 대선을 통해서 정권교체 세력이 그런 부분들을 가지고 나타났어야 된다는 말씀이다.

안병진 : 그런 점에서 이재명 후보의 한계와 장점이 나올 수 있다. 이재명 후보의 장점은 기존의 관념적 민주화 세력들과 달리 구체적 현장, 현실에 기반해서 자신을 끊임없이 적응하고 변화시켜내는 능력, 이게 미국의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이다.

김능구 : 본인도 실용적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안병진 : 그게 이재명이 가지는 강점이고, 대패할 수도 있는 선거를 근접한 수준까지 가게 한 동력이다. 제가 대선 초기에 계속 ‘윤석열 당이 이긴다’라고 감히 예고를 했었다. 다만 3%로 이긴다는 게 제 일관된 태제였는데 1%는 전혀 예상을 못했다. 제가 심각하게 보는 건 이재명 후보의 강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리버럴한 성격이 강했던 민주당의 전통적 가치가 거의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미국 프래그머티즘에 대해서, 한국에서 이걸 실용주의라고 번역해버리면 굉장한 오해가 있다. 옛날에 철학자인 탁석산 선생님이 잘 지적한 건데, 한국의 실용주의와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은 다르다. 한국의 실용주의는 이명박 스타일의 실용주의다. ‘일단 돈 되는 건 한다, 일단 먹히는 건 한다’는 거다. 그런데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은 존 듀이(John Dewey) 등 굉장히 깊이 있는 철학적 토대 속에서 나온 가치가 전제 돼 있다. 더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 끊임없이 향상시켜 나가는 실험주의 같은 거다. 이것은 이재명 후보처럼 상황보다가 ‘이렇게 하면 먹히겠다’고 하는 좀 속물적 실용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김대중과 노무현은 미국 프래그머티즘에 가장 가까웠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지금까지도 인용되는 그 전설적 명언 ‘상인의 감각과 서생의 문제 의식’, 이게 프래그머티즘을 기가 막히게 표현하는 단어다. 그런 점이 이재명 후보 그리고 현재 민주당에 그간 어느 정도 보존해왔던 씨앗이고 가치인데, 이것이 사라지는 거고 그래서 어쩌면 진짜 민주당의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민주당 사람들이 선거 끝나고 나서, 그래도 이재명 후보가 근접한 승부까지 갔으니까 다음번에는 우리가 이기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가 다시 예고해 드리겠는데 만약 이재명 후보가 ‘가치 기반 정치가’로서 혁명적인 변화가 없으면 다음 대선에 100% 진다. 그래서 지금 일찍 등판하는 것보다 과거 김대중이나 이런 사례를 보시면서 ‘과연 직전의 자신과 근본적으로 단절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셔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근접점까지 가서 필패한다는 말씀을 드린다.

김능구 : 20대를 말씀하셨다. 선거 결과를 보면, 20대 여성들이 반사적으로 지지해서 이재명 후보가 좀 앞서는 결과가 나왔는데, 그러다 보니까 이 부분이 조금 희석된 측면이 있다. 실제로 그동안 우리 한국 정치에서 20대라는 것은 괄호 밖에 있는 세대들이었다. 그런데 이 세대들이 등장한 것은 대단한 것이고, 저는 거기에 이준석 당 대표의 역할은 인정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갔느냐는 문제겠지만, 어쨌든 ‘20대의 정치적 깨어남’ 이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안병진 : 저도 공감하는데, 처음에 이준석이 부상했을 때 제가 이준석 현상을 높이 평가하는 걸 보고 일부 진보 학자들은 굉장히 불쾌해 하고 오해를 하시더라. 제가 항상 진보 진영에 하고 싶은 얘기가, 본인의 규범적 판단 이전에 객관적 현실의 추세에 대해서, 김대중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상인의 감각을 가지고 냉정하게 볼 수 있어야 된다는 거다. 이준석 현상은 20대 남자들, 소위 루저라고 부당하게 평가받아온 20대 남자들, 그 중에서 특히 일각의 전위적인 보수적 남자들을 정치적으로 깨어나게 했고, 그들에게 효능감을 맛보게 했다. 그 점에서 여가부 폐지라는 슬로건은 정치적 동원 수법으로만 보면 대단히 야비하지만 탁월했다.

저는 이 깨어남은 어떻게 보면 미라를 깨어나게 한 것처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트럼피즘(Trumpism)이 상륙했다’는 태제를 얘기했는데, 이번 대선 때 이준석이 20대 일부 보수적 남자들을 깨어나게 했고, 그때 동원했던 레토릭(Rhetoric)이 여성 혐오, 반이민이었고, 대선 끝나니까 장애인 혐오인데, 이게 전형적인 트럼피즘(Trumpism)의 행태다. 트럼프가 다른 사람 인물평을 하는 걸로 유명한데, 워렌을 한 단어 ‘포카혼터스’로 딱 규정해 버리는 식이다, 그 사람이 가진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아주 야비하게 규정하는데, 이준석은 너무나도 닮았다. 어쨌든 20대의 일부 보수적인 남자들의 효능감은 앞으로 굉장히 위험하게 갈 건데, 이건 트럼피즘이 시작된 거다. 다만 20대 남자들은 단일한 층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다 보수적이라고 규정하는 건 위험하다. 하지만 일부 선도적인 친구들이 가지는 위험스러운 경향은 분명히 지적돼야 된다.

반면에 20대 여성들도 물론 다양하기는 한데 사실 이번 선거에서 애초부터 위축된 상황이었다. 그 이전에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가 하도 셌기 때문인데, 또한 자신을 대변해 줄 후보가 잘 보이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이재명 후보는, 제가 아까 속물 실용주의라고 얘기한 게,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이쪽 남자도 끌어들이고 싶고 저쪽 여자도 끌어들이고 싶고 하다 보니까, 초반에 갈팡질팡했다. 전형적인 기회주의적 행보였다. 그런데 선거 중반서부터는 방향을 잘 잡았고, 그것도 물론 실용적인 판단이었지만, 일관되게 20대 여성들에게 소구했다. 20대 여성들 입장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비교적 여성주의 후보지만 너무 힘이 약하고. 이재명 후보는 단지 표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이대로 가면 심각하게 여성들에 대해 폭력적인 사회가 올 거라는 공포, 불안 속에서 이재명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막판에 하나의 선거 전술적 차원에서 비판적 지지를 했던 거다. 과거 87년도에 비판적 지지는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 여성들 입장에서 그런 고통 속에서 불가피하게 비판적 지지를 했던 건데, 민주당 일각에서 그 처절한 지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입당 러시나 이런 걸 보고 자신들이 살아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김능구 : 다음으로 무효표가 전례없이 많았다. 24만 7천여표인 두 후보간 격차보다 많았다. 그런데 제가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수 유튜브에서는 부정선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전에 부정 선거를 캐냈는데 이게 초반에 발각되서 그나마 선거를 이길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부정선거로 뒤집어졌을 것이란 이야기다. 들어보셨나?

안병진 : 그런 유튜브를 확인은 안 했지만 뉴스에서는 그런 기사들이 많이 있더라. 미국의 선거 부정론은 스티브 배넌이나 아주 극우적인 단체들이 퍼트리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선거 부정론이 많이 퍼져 있다는 건 알지만 저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게 어떻게 보면 SNS를 중심으로 ‘탈 진실의 시대’의 현상이 아닐까 싶다.

김능구 :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안병진 : 예. '자기 진영의 극단적 선동가들의 말을 믿고 싶은 심리', 이런 것이 가진 효과다. 선거 부정이라고 하는 게 무엇과 일맥 상통하냐면, 일부 극우 보수 유튜버뿐 아니라 어떤 분들은 문재인 행정부를 전체주의 정부라고까지 규정을 하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히틀러나 스탈린, 무솔리니처럼 체계적인 선전, 선동과 억압의 기재를 기획하는, 이런 성격의 정부가 아니다.

저처럼 구체적으로 그 정부를 들여다보고 혹은 또 거기 참여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문재인 정부는 아까 말씀드린 '자유주의의 결핍', 그러다보니 일부 권위주의적 형태가 나타날 수 있는 것, 그 다음에 현장 밀착된 훈련을 받아보지 못한 데서 오는 무능과 실수, 이런 게 결합된 거다. 어떻게 보면 과거 칼막스가 루이 보나파르트 18일에서 적었듯이 구체적인 역사라는 게 때로는 우연과 희비극이 결합된 거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실수와 오판, 무능같은 것이 결합된 역사를, 일관되고 체계적인 선거 부정으로 몰아가는 건 대단히 위험하고 시대착오적이다.

김능구 : 우리나라 문맹률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다. 무효표라는 게 옛날에는 몰라서 그런 경우도 많았다고 하지만. 지금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교수님이 무효표가 높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일종의 선거 보이콧, 비호감 선거에 대한 반응으로 본다는 이야기겠다.

안병진 : 그렇다. 이재명 후보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보여줬던 구태의연한 모습들이 선거 기간에 꾸준히 있었다. 실제로 586 정치, 정무직 진출 등에 대해서 송영길 대표가 선도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그 이후로 일련의 어떤 움직임도 없었고, 정치개혁에 대한 아젠다도 후반부에 나왔다. 그런 점에서 저만 하더라도 나름대로는 민주화 운동 출신으로 진보 진영 속에서 항상 살아왔고 투표해 왔던 사람이지만 막바지까지 투표장에 가기가 싫더라. 심지어는 한 때 칼럼의 주제로 ‘선거를 보이콧 하자’를 비유적 표현으로 한번 써볼까도 생각했는데, 그런 심리가 어디 저뿐이겠나.

이번에 무효표도 그렇지만 40대 투표도 흥미로웠다. 민주당을 찍었던 40대 투표가 역대 선거보다 낮았는데, 40대는 한국 민주화의 기둥 세대다. 왜 그들이 낮았을까. 그들도 저처럼 일부는 이재명 후보에게 강렬한 지지를 보내기에는 다소 부족했던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40대의 투표율이 저렇게 낮았다는 건 굉장히 흥미로운 것이고, 앞으로 정치학자들이 심층 조사를 해봐야 될 포인트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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