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국민의힘 선대위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합류없이 개문 발차하게 되었다. 24일 저녁에 있은 윤석열 후보와의 회동에서도 김 전 위원장이 확답을 주지 않아, 일단 윤 후보는 김종인 없는선대위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김 전 위원장의 합류를 기다린다는 얘기이지만, 김종인의 마음을 바꿀 특별한 대안없이 그것이 가능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81세 원로급 인사에게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상황에 고개를 가로젓기도 한다. 어째서 자기 힘으로 대선을 치를 생각을 하지 않고 노인에게 의존하려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윤석열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윤건영 의원은 윤석열을 향해 “지난 3주 동안 오로지 김종인 바라기였다"고 야유했지만, 그가 보필했던 문재인 또한 그러했음은 세상이 다 기억하는 일이다. 2016년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맡아달라고 매일 밤 김종인의 자택을 찾아가 간청했던 것도,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니까 지방에서 급거 상경해서 한밤중에 구기동을 찾아가 읍소했던 것이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어느 한쪽 진영에서만 벌어지는 광경은 아닌 것이다.
물론 나이 여든이 넘은 노정객(老政客)이 여야 진영을 넘나들며 킹 메이커의 역할을 반복해서 하는 상황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박근혜와 문재인, 그리고 윤석열의 정체성으로부터 어떤 공통점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가 누구든, 자신에게 매달리면 킹 메이커 역할을 하려는 정치적 욕심 아니냐는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광경의 책임은 김종인이라는 개인 보다는 우리 정치의 구조적 문제에서 찾는 것이 우선이다. 김종인이 늘 말하듯이, 그가 먼저 나선 것이 아니라, ‘킹’이 되려는 사람들이 그에게 간청을 해왔던 것이 이제까지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선에서 김종인의 역할이 우리 정치권에서는 대체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김종인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킹 메이커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선거의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 선거 승리를 위한 핵심을 짚어가는 전략적 사고, 중도층의 마음을 헤아릴줄 아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사고, 조직을 이끄는 장악력에 이르기까지 선거사령탑으로서는 탁월한 역량을 그는 보여왔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승리가 무망해 보이던 오세훈의 당선이 가능했던 것도 김종인의 남다른 역할에 기인한 바 컸다.
큰 선거 때마다 우리 정치권이 김종인을 찾는 근본적 이유는, 자신들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김종인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중원의 지대를 평정할 중도적 사고이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과는 달리, 선거 승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도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사고의 촉이 발달해 있는 것이 김종인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민주당과 이재명,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힘과 윤석열이 갖고 있지 못한 내용의 것이다. 당장 국민의힘과 윤석열에게는 김종인 같은 사고를 대신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
사실 김종인이 평소에 하는 말들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미래 의제, 약자와의 동행, 빈곤과의 전쟁, 양극화 해소 같은 내용들은 나라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정당들이라면 당연히 선거의 우선적 의제로 제시했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민주당이고 국민의힘이고, 선거만 있으면 자기 진영의 지지층만 바라보며 네거티브에 올인하거나 낡은 레파토리만 반복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선거 때면 반복되는 김종인 모시기 광경은 진영으로 극단화 되어 있는 우리 정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결국 성사될지 아니면 무산될지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성사가 된다면 윤석열에게는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같은 일이겠지만, 김종인에게도 넘어설 수 없는 한계는 있다. 자신이 ‘킹’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힘은 선거가 끝나는 것과 함께 소멸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미 박근혜, 그리고 문재인과의 관계에서 그 자신이 톡톡히 경험했던 일이니 이제는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 수는 있어도, 대통령이 된 윤석열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은 김종인 뿐만 아니라 모든 킹 메이커들의 한계일지 모른다. 그렇게 김종인의 책임은 유한한 것이니, 결국은 우리 국민들의 몫임을 생각해야 할 일이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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