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은 당초 예상과는 달리 야당의 패배로 끝났다. 워낙 야당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했던 선거였기에 야권 지지층이 받은 충격은 컸다. 야당의 패인에 대해서는 여러 원인들이 지적되고 있다.‘박근혜의 힘’이라는 여당 측의 승리 원인 이외에도 위기관리능력의 부재, 전략의 부재, 리더십의 취약 같은 문제들이 지적된다. 그리고 선거 종반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에 민주당이 신속하고 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도 마지막 승부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막말 파문이 불거질대로 불거진 뒤에야 뒤늦게 당의 입장을 내놓았다. “당은 김 후보에게 사퇴를 권고했으나, 김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심판을 받겠다는 입장”이라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인지 유권자들을 납득시키기 어려운 말이었다. 전국 선거를 치르는 제1야당이 후보 한 사람의 거취 문제를 어쩌지 못하고 그냥 지켜본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김 후보를 껴안고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버리고 가는 것도 아니었다. 어정쩡한 스탠스였다.

선거 결과는 민주당이 나꼼수 팬들을 의식한 나머지 자신의 허물에 대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중간층을 납득시키지 못했고 보수층을 자극하여 결집시켰다는 분석을 낳았다. 지난 총선에서 1천표 이내로 당락이 갈린 지역구가 모두 11곳이었음을 감안하면, 여야간 의석수 차이가 12개였던 선거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추론할 수 있다. 4.11 총선에서 야당이 패배한 책임을 김용민 후보에게 떠넘기는 것도 비겁한 일이지만, 반대로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것도 합리적인 태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4월 13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4.11 총선 최대 이슈는 김용민 막말 파문이 22.3%로 1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위 경제복지 정책공약(16.1%), 3위 민간인 불법사찰(14.9%), 4위 한미 FTA (10.7%), 그리고 야권연대 여론조사 조작(9.7%), 북한 로켓발사(5.1%), 제주해군기지(3.7%) 등의 쟁점을 앞선 수치이다. (<그림1>) 야권이 최대 이슈로 부상시키려 했던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조차 김용민 막말 파문에 덮어져버렸다는 얘기가 된다. 비수도권에서 선거를 치른 민주당 후보들이 선거가 끝난 뒤 막말 파문에 대한 당의 미온적 대처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것은 보기 흔한 일이었다.

나꼼수를 등에 업으려던 민주당의 잘못

나는 사실 당시 상황에서는 김용민 보다도 민주당의 문제가 더 컸다고 본다. 김용민은 8년 전에 했던 자신의 발언이 그렇게 선거전에서 문제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파문이 불거진 직후에 김용민이 스스로 신속히 사퇴하여 파문을 조기 진화했다면 전국 선거에 미친 영향이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용민은 사퇴를 거부했고 완주를 다짐했다. 여기까지는 김용민의 무리였다. 그러나 이를 바로잡을 책임은 최종적으로 민주당에게 있었다. 김용민이 코너에 몰려 전체를 바라보는 균형적 시야를 잃었다 해도, 전국 선거를 치르는 입장에서 사태를 조기에 종결시킬 방법을 찾는 것은 민주당의 몫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파문이 확산되는 동안 지켜만 보다가, 유권자들이 이해하기도 어려운 입장이라는 것 하나 달랑 내놓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선거를 치렀다. 그 결과 보수층은 결집했고 중간층은 이탈했다. 결과는 패배였다.

보다 앞선 원인을 찾자면, 애당초 민주당이 나꼼수의 인기를 등에 업고 4.11 총선의 승리를 노렸던 것 자체가 잘못된 전략이었다. 물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나꼼수의 영향력은 대단했었다. 나꼼수는 2040 세대가 투표장으로 향하는 분위기를 낳은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특히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관련된 내용이 나꼼수를 통해 전파되면서 나 후보를 곤경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발휘된 나꼼수의 영향력이 모든 선거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울에서만 치러졌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4.11 총선은 엄연히 환경이 다른 선거였다. 그런데 민주당은 10.26의 추억에만 젖어 전국적인 나꼼수 마케팅에 나섰다. ‘지역구 세습’이라는 논란까지 감수하면서 말이다. 수감 중인 정봉주는 노원갑에 김용민을 공천해줄 것을 강력히 원했고, 민주당은 고심 끝에 그 요청을 수용했다. 그 과정에서 ‘정봉주 공천’이니 ‘지역구 세습’이니 하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민주당이 일부의 그런 시선을 감수하면서도 김용민을 공천하며 나꼼수와 굳게 손잡는 모습을 보인 것은 역시 젊은 층의 지지를 얻어내겠다는 포석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의 공천이 무리한 것이었음이 이내 드러나고 말았다. 예상치 못했던 막말 파문 때문이었다. 4.11 총선에서 나꼼수에 대한 반응은 지역과 세대에 따라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세대간의 차이야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지역간의 차이는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점이었다. 막말 파문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서울에서는 젊은 층의 지지가 어느 정도 유지되었지만, 비수도권에서는 그에 대한 반응이 냉담하였음을 선거 결과는 보여주었다. 막말 파문 논란이 계속되던 선거 막판 서울광장에서 있었던 나꼼수의 ‘삼두노출’ 이벤트조차도 나꼼수 열렬 팬들은 결집시켰겠지만, 그 대신 그 이상의 다른 유권자들을 이탈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막말 파문에 대해 고개 숙이지 않고 정면돌파 하려는 나꼼수의 모습에 비수도권 유권자들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인 것이다. 나꼼수에 대한 반응은 지역에 따라 혹은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를 감안한 보다 섬세한 전략이 있었다면 4.11 총선에서 나꼼수의 역할이 보다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조정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4.11 총선을 거치면서 나꼼수는 도마 위에 올랐다. 언제나 나꼼수를 적대시했던 조중동이야 그렇다 쳐도, 이전까지 나꼼수를 성원했던 사람들의 우려까지 자아낸 것은 슬픈 일이었다. 그 인기 높던 나꼼수가 어떻게 동네북이 되는 처지가 되었을까. 나꼼수의 불행은 그들이 무대를 정치세계로 옮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김용민의 출마로 어제의 심판은 하루아침에 선수가 되었고, 막말과 욕설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공인 중의 공인’이 되어버렸다. 8년 전의 막말을 세탁하고 뛰어들 시간조차 없었다. 정치라는 것을 우습게 보고 과욕을 부린 것이었다. 이들의 과욕은 도처에서 드러났다. 김용민은 ‘큰 싸움’을 하러 출마했다 했고, 막말 파문 이후에도 ‘김용민 대 이명박’의 대결을 내걸었다. 막말 파문이 아니었더라도 아무런 지역연고도 없이 막판에 뛰어든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한 과장의 어법은 B급 정서의 자유가 보장되는 팟캐스트에서는 거침없다는 박수를 받을 장면이었겠지만, 오프라인의 선거공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김용민과 나꼼수 스스로가 선거공간으로의 갑작스러운 이동 앞에서 여러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었다.

나꼼수는 그냥 나꼼수일 때가 좋다

나꼼수는 그냥 나꼼수일 때가 가장 좋았다. 팟캐스트에서의 나꼼수는 정치적 치외법권지대에 있었다. ‘ㅅㅂ’를 내뱉어도, ‘조’를 외쳐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았다. 팬들은 함께 쫄지마를 외치며 그들의 욕설에 화답했다. B급 정서의 후련함이 공유되었기에 가능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B급 언어들을 그대로 갖고 A급 세계로 들어가겠다고 하면서 일은 어그러져버렸던 것이다. 애당초 나꼼수는 정치지도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가카’에 대한 분노를 안고 있던 대중들에게 B급 언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다시 힘을 내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물론 그 역할은 정치지도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그 중요한 역할을 계속할 수 있었던 나꼼수가 어쩌다가 선거를 앞에서 이끄는 정치지도부의 위치에 졸지에 서버리게 된 것이었을까. 나꼼수는 그냥 나꼼수였을 때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음을 4.11 총선 결과는 보여주었다.

그런데 막말 파문이 야당 패배에 미친 영향에 대한 논란이 아직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스스로를 ‘중죄인’이라 했던 김용민은 선거 이틀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낙선자의 근신은 끝났다”며 국민욕쟁이가 되겠다고 나섰다. 김어준은 한술 더 떠서 "나꼼수 때문에 선거에서 진 것이 아니라, 나꼼수 때문에 이만큼 저지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선거 패배의 큰 충격 앞에서 적어도 당분간은 함께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성찰은 언제나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나꼼수는 언제나 ‘쫄지마!’를 외쳐왔지만, 국민의 상식 앞에서만큼은 쫄 줄도 알아야 한다. 물론 나꼼수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팬들은 다시 열광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쩐지 전처럼 속시원하게 웃기만 하며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깝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ㅅ ㅂ.

유창선 (정치평론가/폴리칼럼니스트)

※ '열린칼럼'의 글은 본 사이트 논조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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