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연말 갑작스런 국상을 치루고 아직도 슬픔이 남아 있겠지만 바리가 자리인지라 쉴 틈도 없이 활동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수령의 자리를 대신하는 후계자의 유일영도체계는 북에서 너무도 엄중하고 중요한 자리이니까요.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더하여 장례 직후 최고사령관에 추대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수령의 나머지 직책 승계도 신속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이더군요. 김정일 위원장의 유고 소식에도 북한이 동요 없이 안정된 모습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은 우선 다행스런 일입니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과 한국마저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입장이어서 김정은 부위원장이 이끄는 북한은 아마 별 탈 없이 안착될 것으로 보입니다.

20대의 나이에 한 나라를 책임지게 된 것은 명예와 영광만은 아닐 것입니다. 어찌 보면 큰 부담이고 책임일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과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도 젊은 시절부터 북한 사회주의를 이끌어 왔음을 잘 압니다만 당시와는 또 다른 환경이 김 부위원장 앞엔 놓여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북한 사회주의를 이끌고 건설했던 때는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았고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도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이어 받았지만 20년 넘게 후계자의 리더십을 확보한 다음이었습니다. 이에 비한다면 김 부위원장이 떠안은 지금의 북한은 어려움이 지속되고 가중되는 상황인 데다가 아직은 수령의 확고한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라 있다고 봐야 하겠죠. 상황이 마무리된 게 아니라 김 부위원장이 하기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고 그만큼 김 부위원장의 역할과 노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정일 위원장도 정말 어려운 시기에 가업을 이어받았습니다.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대규모 큰물피해가 잇따른 데다 미국의 압박과 남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남풍도 만만치 않을 때였습니다. 삼년상을 치루고 수령의 직책을 승계한 김 위원장은 핵문제를 통해 미국과 줄다리기를 계속했고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의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경제난은 해소되지 않았고 북핵문제는 아직도 진행형이고 미국과의 관계개선도 여전히 교착상태고 남북관계마저 우여곡절을 겪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김 위원장이 이끈 북한은 그럭저럭 수성에는 성공했지만 재기의 발판을 다지는 흥업에는 실패한 채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가업을 다시 이어받은 김 부위원장에게는 수성에 그친 북한을 결국 일으켜 세워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이번에도 흥업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이제는 아예 가업을 청산하고 폐업신고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절대 절명의 기로에 서 있는 겁니다. 김 부위원장이 기필코 경제를 일으키고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북미관계 정상화와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를 이루어 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사망을 대비해 후계체제의 안정을 위한 치밀한 준비를 다 해놓은 것 같습니다. 건강 이상 직후 일관되게 후계체제 구축 작업에 나섰고 헌법 개정과 당정군의 개편을 완료해놓았습니다. 심지어 유고시 곧바로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하라는 지시마저 미리 내려놓았다는 사실은 빈틈없는 준비를 실감케 합니다.

그러나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후계체제를 준비한 김정일 위원장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후계자의 노선과 정책을 마련해주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정치적 제도적 차원의 후계체제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김정은 부위원장이 내세워야 할 새로운 정책노선과 새로운 미래에 대한 청사진은 과외를 못한 것이지요. 신년사설의 전반적 내용이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통치를 내세우고 기존 노선의 계승에만 강조점을 둔 것도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위기 극복과 흥업을 위해서는 아버지의 유훈을 따르되 결국은 아버지의 노선을 넘어서야 합니다.

새로운 미래와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젊은 리더십, 새로운 리더십으로서 기존과는 다른 김정은 식의 북한이 나갈 방향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선군이 아닌 선경의 이데올로기여야 합니다. 아버지의 유훈을 따라 첫 공식활동을 탱크부대로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젠 공장과 기업소 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물론 김 부위원장이 자신 있게 선경노선을 채택하고 추진하려면 북미관계 정상화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우호적인 대외환경이 만들어져야 하겠지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이번 기회에 새판짜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공소권 없음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과 함께 과거 대결과 적대의 상처와 책임을 모두 안고 간 것으로 간주하자는 것이지요.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의 책임을 김 위원장 사망과 함께 종결처리하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열어갈 새로운 시작을 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김 부위원장도 동의해야 합니다. 대남 비난과 악감정을 지워버리고 이명박 정부와 새롭게 시작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상종불가의 거친 욕설 대신 선경 노선과 화해협력의 남북관계를 김 부위원장의 상표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위기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폴리칼럼니스트)

※ '열린칼럼'의 글은 본 사이트 논조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