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 지속된 남북관계 망실은 북한을 변화시키지도 북한의 도발을 막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최악의 남북관계와 함께 군사적 긴장고조만을 결과한 채 한반도 정세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 김정일 사후 김정은 체제가 신속하게 안정을 찾아가고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가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목도하면서 보수와 진보 모두 김정은 체제의 상대적 안정성에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을 존재로 새로운 대북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김정은 체제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남북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새판짜기’의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이 남북의 대결과 갈등의 역사도 함께 안고 간 것으로 해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위원장은 사망과 함께 스스로 역사의 부채를 안고 간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시대라는 새로운 리더쉽하에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남북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고 그것은 바로 김위원장의 사망과 함께 지난 시기 대결과 갈등의 남북관계 상처를 역사 속으로 넘기는 지혜이다. 지금껏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없었던 것도 박왕자씨 사건과 천안함 사태 그리고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의 사과와 책임이라는 전제조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김정일 위원장 사망으로 이들 대결의 상처는 김위원장이 역사 속으로 책임을 안고 갔다. 이른바 ‘공소권 없음’이라는 처리를 통해 사건을 종료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만 김정은 체제와 남북관계는 새롭게 전향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논리적 여건이 만들어질 수 있다.

김위원장 사망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낮은 수준이나마 조의를 표하고 제한적인 조문을 허용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남북관계 모색에 기여할 수 있다. 포탄이 오가는 극단적인 긴장고조와 교착국면의 장기화를 겪고 있는 지금의 남북관계에서 김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상호 신뢰를 확인하고 대화의 끈을 만들어갈 수 있는 동의가능한 명분이 바로 조문외교이기 때문이다. 정적간에도 조문은 허용되었고 이미 국제사회는 조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외교의 장이 서는 조문외교를 일상적인 것으로 동의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지금은 경색국면이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두 번의 정상회담을 가졌고 이명박 대통령도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을 공식 요청한 상대인 만큼 남북관계 정상화의 호기로서 조문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매우 현명하고 현실적인 접근이다.

남북관계는 한 지도자의 죽음을 통해 오히려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특수관계이다. 2009년 김대중 전대통령의 서거는 당시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창조적 기회를 제공했다. 경색된 남북관계에도 불구하고 북은 특사조문단을 보냈고 이를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이 이뤄지고 이후 남북정상회담 논의로 발전할 수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역시 꽉 막힌 지금의 남북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 창의적 모색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역사의 부채를 안고 간 김위원장을 통해 대결의 과거 역사로부터 남북이 자유로워지면서 이제 새롭게 화해협력의 남북관계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김정은 체제의 북한을 있는 그대로 현실의 상대방으로 인정하고 상호 공존과 화해 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이뤄내고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대북포용정책의 재확인에서 비롯될 수 있다. 김정은 시대 남북관계의 새판짜기가 이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2012년 동북아 국가의 권력교체가 공교롭게도 북한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북한발 권력교체의 신호탄이 터진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거쳐 일본과 미국 그리고 최종적으로 한국의 권력교체가 정리되면서 이제 내년엔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가 새롭게 형성될 것이다. 적대와 대결의 구도가 아니라 평화와 협력의 구도로 ‘2013년 체제’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화해협력의 한반도가 평화협력의 동북아를 견인함으로써 가능하다. 김정은 시대의 권력교체와 더불어 우리의 정권교체가 선순환을 이루면서 화해와 평화의 한반도를 이루길 기원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폴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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