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최고통치자 김정일 위원장이 숨을 거두었다. 어떤 이는 드디어 한반도에 희망이 왔다고 기대를 표시하고 어떤 이는 북한의 불안정성 증대가 오히려 한반도에 위기를 가져온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의 북한이 어디로 갈 것인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김정은 후계체제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그래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김위원장 급서 국면에 대한 진단과 전망이 중요하긴 하지만 인간적이진 못하다. 오히려 그의 죽음을 맞아 지나온 생애를 돌이켜보고 감상적 소회에 빠져보는 것도 지금 우리에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인물의 죽음이 몰고 올 한반도 정세의 파장 분석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 속에서 그의 꿈과 좌절을 돌이켜 보는 것이야말로 부고 소식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가 아닌가 싶다.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꿈은 있었다. 특히 후계자로 공식 선포된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 그에겐 나름의 플랜과 꿈이 있었다. 첫 번째 꿈은 1984년의 합영법 제정과 외자유치였다. 북한 경제가 정체되던 그 시기 후계자 김정일은 해외 자본을 끌어들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야심찬 꿈을 꾸었다. 그러나 당시 레이건 미국 행정부가 주도한 신냉전 국면이 지속되면서 서방의 대북 투자는 불가능했고 겨우 총련계 재일교포의 투자에 족해야만 했다. 그의 첫 번째 꿈은 이렇게 좌절되었다.

그래도 후계자 김정일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탈냉전과 사회주의권 붕괴의 엄중한 시기에 그는 남북관계 개선과 대외개방으로 위기를 돌파하고자 시도했다. 1991년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을 합의 채택하고 아울러 나진선봉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선포하며 본격적인 개방을 결심한다. 당시의 결단은 후계자 김정일이 주도한 이른바 ‘개혁연합’의 정치적 성공이었다는 분석마저 제기되었다. 그러나 야심찬 두 번째 대외개방의 꿈 역시 이듬해 미국이 주도한 북핵문제가 본격 제기되고 북미간 대결이 지속되면서 일장춘몽에 그치고 말았다. 남북기본합의서는 휴지조각이 되었고 나진선봉 특구는 실패하고 말았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과 이후 3년상을 거치는 동안 북한은 가장 혹독한 ‘고난의 행군’을 거쳐야 했다. 대량 아사자가 발생하고 북을 떠나는 탈북자가 생겨났다. 심지어 노동당 비서마저 남쪽으로 망명하기까지 했다. 수령 사망 이후 최대의 체제위기를 그럭저럭 진정시킨 김정일 위원장은 1998년 권력승계 이후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해 개혁개방의 조건을 만들어보겠다는 또 한 번의 꿈에 도전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성사되고 그 여세를 몰아 조명록 차수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북미간 상호방문이 이뤄지면서 김정일 위원장의 꿈은 드디어 실현되는 것 같았다. 이제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면 오랜 숙원이었던 북미관계 정상화가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러나 평양을 방문하기로 약속한 클린턴 대통령은 오지 못했고 그 뒤를 이은 부시 행정부는 삽시간에 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강경과 압박으로 선회하고 말았다. 그래도 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이 지속되면서 화해협력의 남북관계가 온존되었기 때문에 김정일 위원장은 마지막 승부수로 꿈을 실현해보려고 했다.

2002년 고이즈미와 북일정상회담이 실현되었고 납치사실을 시인하는 고백외교까지 하면서 북일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곧이어 단행된 시장허용의 7.1 경제관리개선조치는 건국 이래 최대의 개혁정책으로 평가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해 9월엔 신의주 행정특구를 전격 선포하면서 행정장관과 경찰청장까지 외국인이 맡을 수 있는 전면적 개방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꿈 역시 2002년 10월 북을 찾아온 미국 특사에 의해 이른바 고농축우라늄 의혹이 불거지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제네바 합의는 무력화되었고 2차 북핵위기는 아직까지 진행형이다. 당연히 북미관계 정상화는 멀어졌고 시장은 통제되었으며 급기야 남북관계까지 찬바람이 불수밖에 없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공과를 논하는 것은 너무도 논쟁적이다. 그러나 그도 개혁개방의 꿈이 있었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을 원했음은 분명하다. 물론 그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고 여전히 북한은 위기이고 그는 죽고 말았다. 조의를 표한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 폴리칼럼니스트)

※ '열린칼럼'의 글은 본 사이트 논조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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