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박원순 변호사가 야권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통합경선에서 민주당의 경선룰을 조건없이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24일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면담을 가진 뒤 그같은 입장을 발표했다. "정당도 조직도 없는 입장에서 불리할 수 있지만 수용한다"며 "파국보다 합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며 어떤 조건도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이로써 민주당의 서울 시장 후보 선출 이후 예정되어 있던 야권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통합경선은 탄력을 받게 되었다.

박 변호사가 수용한 경선룰은 ‘여론조사 30%, TV토론 뒤 배심원평가 30%, 국민참여경선 40%’의 비율로 야권단일후보를 결정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박 변호사에게는 크게 불리한 내용이다.

사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박 변호사에게는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후보 선출이 가장 손쉬운 방식이다. 그렇게 한다면 아마도 박 변호사가 단일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압도적일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후보 선출에 반대하며 국민참여 경선의 실시를 강력히 요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국민참여경선은 조직적 기반이 없는 박 변호사에게는 크게 불리한 성격을 갖고 있다. 민주당이야 당조직을 통해 참여경선에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거나 동원할 수 있지만, 박 변호사의 경우는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국민참여경선의 비율이 여론조사 30%보다 큰 40%로 되어있다. 국민참여경선을 통한 역전이 가능한 이유이다. 그리고 TV토론 뒤 배심원평가가 30%로 되어있는데, 이는 배심원을 어떻게 선정하느냐에 따라 후보간 유.불리가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배심원평가가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일단은 비율을 40%나 차지하게 된 국민참여경선의 도입에 따라 경선 결과의 불가측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의 후보가 박 변호사에게 승리할 길이 열렸다는 의미가 된다.

이같은 경선룰에 합의할 경우 자신이 커다란 리스크를 지게되는 상황을 알면서도 박 변호사는 아무런 조건없이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무협상단으로부터 협상이 결렬될지 모른다는 보고를 받고 그같은 결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 민주당과 박 변호사 사이에서 경선룰을 갖고 줄다리기를 하거나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보일 경우 양측 모두에게 상처를 입힐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다. 그동안 여러 재보궐선거에서 후보단일화 협상이 지리하게 진행되었을 때 효과가 반감되었음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바이다. 더구나 협상이 결렬이라도 되는 상황을 맞는다면 이는 양측 모두가 죽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박 변호사는 결국 자신의 불리함을 알면서도 파국을 막기 위해 통큰 결단을 내린 것이다. 여론조사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자신이 패배할 수도 있는 경선룰에 합의를 해준 것이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쿨한 결정이었다. 근래에 있었던 재보선에서 후보단일화 방식을 놓고 야당들 사이에 있었던 갈등의 모습과 대비되는 신선한 장면인 것이다.

박 변호사의 결단으로 통합경선은 국민들의 관심 속에 진행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결과가 뻔히 예측되는 경선에 국민의 관심이 향할 리는 없다. 그런데 이제는 박 변호사가 민주당 후보에게 패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당연히 경선결과에 대한 긴장도가 높아지고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 박원순의 결단은 통합경선의 흥행을 높여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박 변호사의 결단은 자신에게도 결국은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당장 통합경선에서는 어렵게 승부를 겨뤄야할 상황이 되었지만, 작은 이익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은 결국 자신의 자산이 될 것이다. 국민들은 대의를 위해 자신의 것을 버리는 정치인에게는 언제나 높은 평가를 해왔기 때문이다. 만약 박 변호사가 통합경선의 어려운 관문을 뚫고 본선에 올라가게 된다면 이번의 통큰 결단은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박원순의 결단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에게는 윈-윈의 효과를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지난 9월25일 폴리뉴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유창선(정치학 박사/폴리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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