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정상선언 4주년이다. 남북이 만나 합의를 도출한 사업만 45가지였다. 그러나 단 하나도 실천되지 못했다. 만약 10.4 선언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남북관계는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의 남북관계는 대화가 실종된 채 포탄이 날아드는 참담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에 남북경협과 관련해 이른바 4원칙을 제시했다. 북핵진전, 경제성, 재정능력, 국민합의라는 그 원칙에 따르더라도 출범 초기 이명박 대통령은 10.4 선언을 이행할 수 있었다. 2008년까지 북핵문제는 핵신고서 제출과 냉각탑 폭파 등으로 진전되고 있었다. 경제성과 재정능력은 10.4 합의 중 수익성이 높고 비용이 적게 드는 사업을 먼저 추진하면 될 일이었다. 개성 평양간 고속도로 개보수가 막대한 돈이 든다면 백두산 관광은 사실 경제성과 재정능력 뿐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국민합의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4원칙은 허울뿐이었고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은 10.4 선언을 애초부터 거부했다. 결국 10.4 선언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잊혀진 합의가 되었다.

10.4 선언 거부는 실제로 남북관계 악화와 북한 강경대응의 빌미가 되고 말았다. 상호 신뢰는 약속을 지킬 때 비로소 가능하다. 후임자가 전임자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다면 당연히 신뢰는 형성되지 않는다. 북이 정권 초기 줄기차게 10.4 선언 이행을 요구했을 때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고 결국 남북관계는 파행과 갈등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10.4 선언을 부인하고 거부했던 이명박 정부도 결국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고 지금도 그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은 갑자기 만나 막후에서 합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10.4 선언이 있기까지 노무현 정부는 끈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남북관계 진전에 공을 들였다. 핵문제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식량과 비료를 지원한 것은 남북간 신뢰의 끈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진전되었다. 6자회담에서의 적극적 역할을 통해 북미협상을 견인해내고 결국 2.13 합의가 도출됨으로써 핵문제가 진전되고 나서야 정상회담 추진이 가능했다. 그야말로 10.4 정상선언은 핵문제 해결에 공을 들이고 남북관계에 신뢰를 축적해감으로써 어렵사리 도출될 수 있었던 인고의 산물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필요조건은 전혀 마련하지 않는 채, 무작정 비밀 특사가 만나면 북이 덥석 받는 것으로 착각했다.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정상회담은 11월 개성 회담에서 손바닥 뒤집듯이 번복되었다. 올해 5월의 베이징 비밀 접촉에서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과를 얻어내기 위한 유인 카드로 정상회담이 거론되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상호 신뢰는 고사하고 이를 논의하기 위한 지속적인 관계의 끈마저 없는 상태에서 수시로 정상회담 카드를 들먹거리는 것은 사실 정상회담을 할 생각이 없거나 정상회담을 추진할 초보적인 상식조차 없음을 의미한다.

10.4 선언을 근본부터 부정하고 대북 압박과 강경으로 남북관계를 일관했던 이명박 정부는 정상회담을 추진할 자격도 거론할 염치도 없다. 약속한 개성공단 기숙사를 집단소요 위험 때문에 짓지 않는 이명박 정부, 주기로 한 옥수수 5만톤도 북이 달라고 해야만 주겠다는 이명박 정부, 사료용으로 쓸지언정 남아 도는 쌀을 결코 북에 줄 수 없다는 이명박 정부,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마저 제한하는 이명박 정부는 가당찮은 남북정상회담을 생각할 게 아니라 10.4 선언 이행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반도에는 많은 합의들이 생기고 사라지곤 했다. 7.4 공동성명과 기본합의서도 오래전 일이 되고 말았다. 6.15 공동선언도 말을 꺼내기 무색한 실정이다. 또 다시 10.4 선언이 잊혀진 합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더 늦기 전에.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폴리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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