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칼럼]통일의 ‘봄길’을 보내는 길에 - 두 가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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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봄 문익환 목사의 미망인이자 그 스스로 늦봄 못지않은 열렬 통일전도사였던 봄길 박용길 장로가 지난 9월 25일 오전 1시 30분에 서거하였다.

    보통사람들이 때로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민주화운동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보인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의 활동은 봄길 박용길 장로의 헌신적 노력으로 일구어진 것이었다. 또 늦봄이 “통일은 됐어”라고 외치며 칠천만 겨레의 통일맞이 운동을 호소하다가 돌아가신 후, 이 운동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앞장서 실천에 나선 것도 역시 봄길이었다. 1995년 김일성 주석 1주기 때는 “남편을 통일의 제단에 바친 사람으로서 지도자를 잃은 북쪽 동포들과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방북을 결행하여 영어의 몸이 되기도 하였다.

    “늦봄하고/ 봄길하고 나서는 길/ 아무리 꼭 막아서도/ 거기 반드시 문 열리는 꽃/ 활짝 피어났지요”(고은 선생의 조시).

    이해할 수 없는 정부의 태도

    봄길의 서거를 전후하여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하였다. 하나는 그의 조문과 관련한 북측의 개성접촉 요구를 둘러싼 논란이고, 또 하나는 뉴라이트 인사의 ‘북한에 의한 문익환 목사 안기부프락치 조작설’이었다. 이 두 사건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 우리 사회의 보편적 상식들이 어떻게 좌절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봄길이 서거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북한에서, 정확히는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에서 곧바로 남쪽 장례위원회로 서신이 왔다. 북한 아태위원회 위원장(김양건 통전부장)이 개성으로 나갈테니 유족이 개성으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사와 조화 등을 전달할 예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장례위원회측에서는 상을 치르는 중에 유족이 움직이기는 어려우니 북측에서 서울로 내려올 수 있는지를 타진했고, 북에서는 조문단 파견은 어렵다고 답하면서 유족이 안된다면 장례위원회에서라도 개성으로 와줄 것을 다시 제안하였다. 이에 장례위원회에서는 장례위원 몇 사람이 개성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하고 이를 정부에 요청하였다.

    문제는 이 요청에 대한 정부의 태도였다. 정부의 답변은 “북 조문단이 내려오는 것은 허용하지만, 장례위원들의 개성 방문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것이었다. 북측 조문단이 서울로 내려오는 것은 되고, 몇 사람의 장례위원이 개성을 방문해서 북측의 조사 등을 받아오는 것은 안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비상식적 태도는 두 가지 사실에 의해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하나는 북측이 보낸 서신의 내용이고, 또 하나는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개성방문 소식이다. 북측의 최종 서신에는 “우리의 조문대표단은 나갈 수 없으므로 …이것은 우리의 결정사항입니다”라고 되어 있다.

    결국 정부는 북한이 조문단을 보내지 않겠다는 방침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고, 조문과 관련된 인도주의적 사안조차 남북의 접촉을 차단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북 조문단의 서울 방문은 허용하지만 장례위원들의 개성 방문은 불허한다’는 꼼수를 짜낸 것이었다. 물론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개성방문이 조문과 관련된 개성 접촉으로 빛이 바랠까 하는 염려도 한몫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불안정한 남북관계 상황에서 책임지지도 못할 북측 조문단의 서울 방문을 허용할 듯이 말하면서 개성에서의 접촉은 불허한다는 이 말도 안되는 논리는 이 정부의 치졸함과 간교함은 물론이고, 이 정부가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공작적인지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자기 성찰 없는 새로운 흑백논리

    또 하나의 단상은 봄길의 서거 이틀 전 <경향신문>에 보도된 한 뉴라이트 인사의 저서 내용에서 시작된다. 이 인사의 주장은 기사의 제목 그대로 “문익환, 북한이 프락치로 몰아 화병으로 죽었다”라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에서 ‘문 목사의 노선을 거부하라’는 지령이 떨어졌고 곧이어 “문 목사는 안기부의 프락치다”라는 내용의 북측 팩스가 왔으며, 아마 이 팩스를 쓴 당사자가 김일성일 것이라고 문 목사가 판단했기 때문에 화병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 문 목사를 열렬히 따르던 활동가들이 갑자기 돌변해 문 목사를 욕하는 장면은 (내게도)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다”며 “문 목사의 죽음은 내가 주사파와 갈라진 계기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기사의 사실 관계와 별개로 그의 주장에는 몇 가지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우선 그는 북한에 대한 객관적 인식도 없이 그 스스로 맹종하였다는 점이고, 나아가 지금은 ‘자신은 깨어났고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북에 대해 잘못 판단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문 목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미 ‘북의 논리와 사상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전통적 통일운동의 일부 흐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통일운동에서 새로운 성찰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문 목사의 서거 이후 이러한 성찰적 흐름은 통일운동의 새로운 변화로 나타났고, 이는 오늘날 ‘한반도식 통일운동’의 바탕이 되고 있다.

    이러한 성찰적 흐름에 함께 하지 않고 또 다른 길(뉴라이트의 길)을 걸어간 것은 그 자신의 선택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미 그에 앞서 먼저 성찰을 시작한 사람들의 선택이 자신이 선택한 길과 다르다고 비난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박명림 교수의 주장대로 “북한의 독재를 찬양하기 위해 남한의 독재를 비판하다가 북한의 독재를 부정하기 위해 남한의 민주세력을 비판하는 것은 흑백논리의 전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새로운 흑백논리가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격화되고 있는 사회적 대립의 밑바탕에 깊이 내재해 있다.

    이 인사는 먼저 성찰을 시작한 사람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빠져들었던 교조적 맹신에 대해 스스로 더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뉴라이트 운동에 나타나고 있는 근본적 편향은 과거 반공주의자들의 흑백과 양자택일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것은 결국 자신들의 성찰 부족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또 그의 논리대로라면 북한이 문 목사 10주기에 조문단을 서울로 파견하고 지난 몇 년간 남북 공동으로 추모행사를 진행해온 것이나, 박용길 장로의 장례식에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쓴 조사를 보내온 것은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프락치에게 극진한 조문의 예를 다하고 있는 셈이니까.

    만약 북한이 문 목사에 대해 편향을 가졌다면, 이를 시정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의 책임이다. 그런 점에서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위해 바친 애국의 넋은 북과 남, 해외 온 겨레의 마음속에 길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정중한 조사는 지난 시기의 ‘불편한 사실’을 뛰어넘는 또 다른 변화와 진전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2011. 9. 29

    이승환(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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