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극장가에서 한국 영화 한편이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방학과 휴가의 여유로움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한국전쟁 영화, ‘고지전’이 흥행몰이에 성공하면서 3백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휴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남과 북은 한치의 땅이라도 더 얻기 위해 매일 매일 목숨을 건 전투를 치러야 했고 하룻 사이에도 몇 번씩 고지의 주인은 바뀌었다. 전쟁을 멈추기 위한 협상 기간 동안 오히려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역설적 현실을 이 영화는 적나라하게 그러나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영화 내내 우리는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인가를 실감한다. 휴전 협상을 위해 전투를 멈추지 않는, 협상 타결 소식을 학수고대하면서 매일 죽어나가야 하는 구조적 모순 앞에서 어떤 말로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고 따라서 전쟁은 정치권력이 강요하는 사상 최대의 구조적 폭력이다. 전쟁의 모순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조인되지만 모든 규정이 12시간 뒤에 발효된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휴전이 타결된 이후에도 12시간 동안 남과 북은 가장 처절한 전투를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결정한 전쟁 앞에서 그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합리적인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모순 자체였던 것이다.

영화는 끝나지만 한국전쟁의 휴전상태는 우리의 엄연한 현실로 지속되고 있다. 정전체제는 전쟁을 잠시 멈추었을 뿐 전쟁이 완전히 종료된 게 아니다. 언제라도 전쟁이 재개될 수 있는 불안정한 정전체제는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남북의 군사적 충돌과 교전에서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지난 해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이후 남북이 전쟁 일보 직전까지 위기를 고조시킨 것도 바로 정전체제의 위험성 때문이었다. 한국 전쟁의 폭력성과 비인간성을 되풀이하지 않고 불안한 정전체제의 한반도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래서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온전한 의미의 평화체제 구축이 답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평화체제 대신 전쟁 불사의 호전주의가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 연평도 사태 이후 한반도 긴장 고조에 대해 대북 억지력 강화와 단호한 응징을 주문하면서 군사적 차원으로만 해결하려는 편향적 군사주의를 우리는 목도한 바 있다. 전쟁을 마치 위대한 결단인 양 칭송하는 호전주의는 전쟁이 나도 3일만 참으면 된다고 으름장을 놓거나 F-15K가 울고 있다면서 대북 전면전을 부채질한 바 있다. 대결 만능주의와 과도한 군사주의는 결국 서해상의 민간 비행기에게 대공포를 발사하는 아찔한 일까지 발생하게 했고 북이 발파작업이라며 주장했지만 우리 군은 무차별의 대응사격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구조적인 한반도 긴장상태는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구조적 해법으로 접근해야 하고 그 토대는 화해협력의 남북관계 진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전분자들은 대북 압박과 봉쇄의 강경정책으로 북을 제압하고 군사적 응징을 통해 북을 굴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21세기 대명천지에 검찰총장이 취임사에서 ‘종북세력 척결’이라는 군사정권 시절 구호를 당당히 밝히는 현실이다. 보수 언론은 교육감 단일화 진영마저 좌익 종북으로 규정하고 연관짓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시베리아 가스관 연결사업마저도 호전분자들은 극성스럽게 반대하고 있다. 남북러 모두가 윈윈할 수 있고 한반도가 평화로운 지역임을 과시할 수 있는 최적의 사업임에도 보수 일각에서는 북이 가스관을 막을 수 있다는 이유로 호들갑을 떨며 반대한다. 남북화해의 상징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해서도 억지 조건을 걸어 끝까지 관광재개를 거부하고 있다.

전쟁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호전분자들은 실제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비인간적이며 반이성적인가는 관심 갖지 않는다. 평화주의를 대북 굴종으로 매도하고 전쟁불사를 단호함으로 찬양한다. 그러나 아무리 값비싼 평화라도 그것은 가장 값싼 전쟁보다 백번 낫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깨닫지 못한다면 지금이라도 호전분자들은 고지전 영화를 보기 바란다. 영화를 내리기 전에 서둘러야 할 일이다.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폴리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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