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제 정부안 국회소위 통과는 사기극




8월20일 국회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주5일제 실시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제출한 법안을 골자로 하되 시행시기는 1년 더 늦춰지는 안으로 표결 처리하였다. 언론은 일제히 이 사실을 보도하고 오는 28일 본회의 통과를 낙관하고 있다.




먼저 내용에 대해 살펴보자. 휴가일수에 대해서다. 실질노동시간단축은 어디 가고 휴일휴가 논쟁을 벌이다가 연월차휴가의 축소라는 결과를 가져 왔다. 월차휴가를 폐지하는 대신 이를 통합한 연차휴가 15~25일이라는 것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휴가의 축소를 의미한다. 주 5일 근무가 가져오는 52주 토요 휴무는 52일의 휴일수 증가가 아니라 8시간 기준 26일에 불과하고 주말에 노동을 해야하는 광범위한 서비스 업종(관광, 레저, 식당 등 요식업, 운수업 등)에는 무관한 일이며 주5일을 도입하는 다수의 공공.사무직의 경우 토요일의 업무량이 그대로 평일에 분산된다.




1년 미만 노동자의 15일 휴가와 그 이후 2년당 1일 가산 최장 25일이라는 점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1년 근무자의 경우 10일의 연차휴가가 주어지고 거기다가 매년 1일씩 휴가가 늘어나면 최고 20일이고 만 11년 이상 근무자에게는 돈으로 보상해주게 되어 있다. 물론 월 1일의 월차휴가로 연간 12일의 휴가가 있어서 연차휴가와 합하면 22~32일이 된다. 물론 이러한 휴가를 모두 사용한 노동자는 거의 없다. 생계비를 메우기 위해서는 휴가를 반납하고 수당으로 지급 받아 왔다.




그런데 이번에 통과된 법에 따르면 1년 미만 근로계약 노동자들인 광범위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휴일휴가문제는 완전히 도외시하는 결과를 가져 온 점이라는 점이다.1년 미만인 경우 노동계의 1개월당 1.5일의 휴가 요구를 묵살하고 1일만 부여함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휴가를 대폭 축소하였다. 거기다 여성 노동자들의 생리휴가를 무급화함으로써 여성노동자들의 휴가권을 축소하였다. 이번 법안은 다수의 중소.영세.비정규.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임금을 삭감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연장근로시간의 경우 현재의 주당 12시간에서 16시간으로 상향조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최초 4시간의 할증률을 현행 50%에서 25%로 하향 조정하였다. 사용자들은 할증률을 25%로 낮춤으로써 노동자들이 초과노동을 포기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실질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초과노동의 여부가 다수의 경우 사측에 달려 있거나 다수의 노동자들이 생계비 임금에 턱없이 미달하는 상황에서는 할증률을 낮춘다고 노동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이는 임금을 줄이려는 의도에 불과하다.




임금보전에 대해서는 기존의 임금수준과 시간급, 통상급이 저하되지 않도록 포괄적 임금보전을 부칙에 명시하였으나 임금이란 다양한 임금체계 속에서 산정되는 것이므로 개정법안에 기초한다면 임금은 삭감될 수밖에 없다. 이미 휴가일수와 초과근로 할증료의 조정으로 말미암아 임금저하는 불가피하게 되어 있다. 이번 주5일제의 핵심이라 할 노동시장의 유연화이고 임금저하, 고용불안, 탄력적 노동시간이 주요 내용이다.




시행시기를 보면 이번 법안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알 수 있다. 2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2011년부터 시행하되 대통령령으로 위임하도록 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도 초과노동수당조차 받지 못하는 다수의 노동자들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은 이 법안이 자본가들의 요구만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노동자들간의 차별을 철폐하려면 중소영세 비정규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민의 대표기관이라는 국회가 노동부안보다도 더 개악한 형태의 시행시기를 통과시켜 버렸다. 4년짜리 임기의 국회의원들이 8년 뒤에도 될지 어떨지도 모를 시행시기를 법안으로 통과시킨 것은 일종의 제도적 폭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6월말 산재현황에 따르면 금년 상반기의 산업재해자수는 4만 7천여명으로 전년 대비 20.2%나 증가하였고 재해율 역시 21.6% 증가하였다. 아직 우리사회의 후진성과 야만성을 나타내는 사망자수는 상반기 중에만도 1500여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3% 증가하였는데 실제 사망자수가 훨씬 더 높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비정규직 채용이 급격히 늘어남에 따른 미숙련 노동자들의 증가와 기업규제의 완화, 기업의 비용절감을 위한 산업안전시설 미비 등이 대규모 산업재해를 불러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5일제의 단계별(정확하게는 차별)실시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 뻔하다. 정부나 사용자 단체 그리고 언론이 항상 나서서 주장했던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간의 차별은 현재 정규직 노동조합의 과도한 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통해 노동자들의 단결을 저해하고(노동자들끼리 서로 멸시하고 욕하게 만들어서) 임금을 착취하고자 하는 자본의 일반 원리의 산물이다.




주5일제의 함정은 휴일이 52일 더 늘어나 연간 134~144일이나 된다는 허구적 논리에 있다. 항상 주장하는 바이지만 휴일은 반드시 노동시간과 연동되어 얘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숫자놀음이거나 사기일 뿐이다. 지금도 공무원 사회에서 일반적인 숙직의 경우 다음날 오전이나 하루를 집에서 쉰다면 그것을 휴가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연간 노동시간 2500시간에서 52주의 토요일 208시간이 줄어 계산상 2300시간(그것도 실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다)이 된다고 하더라도 연간 1300~1500시간대의 유럽국가들과의 휴가일수가 비슷하다면 그 휴가일수는 분명 함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8시간 기준으로 현재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휴가일수는 59일이고 만약 208시간이 실제 줄어든다면 그때서야 85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 직장에서의 월급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없는 광범위한 노동자들의 두 개 내지 그 이상의 직업(two or three jobs)을 가지게 되는 추세 속에서는 노동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휴일이 늘어나고 심지어는 이틀에 한번씩 노는 날이라고 난리를 쳐대는 언론 한 귀퉁이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과로사하는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번 임금협상에서 온통 나라 경제가 망할 것처럼 공격하였던 현대자동차의 경우 작년 한 해 과로사한 노동자가 18명에 이르고 있고 모든 산업부문에서 근골격계를 비롯한 직업병과 산재사망건수의 확대는 장시간 노동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음을 말해 준다.




주5일제는 본래 이러한 세계적인 최장시간(OECD 국가 중 1위, 전세계 6위)노동을 줄임으로써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사회적 합의 하에 출발하였다 그러나 자본측은 이를 기회로 노동에 대한 전면적 공격의 기회로 악용하였고 노동계는 이러한 기만적 함정에 빠지게 된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논쟁에서 주5일제 논쟁으로의 전환하게 된 것은 휴일수 증가, 그것도 허구적인 선진국 수준의 휴가일수라는 언론조작과 대국민 사기극을 통해 노동자들의 권리를 박탈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재벌과 자본가에 기생하여 보수정치판에서 추잡하게 목숨을 연명하는 국회의원들에 의해 노동자들의 권리는 짓밟히고 말았다. 이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노사정위원회 공익안을 토대로 한 노동부안이 국회에 송부될 때만 하더라도 마치 나라 경제가 망할 것처럼 떠들어대던 재계가 현장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주5일제를 관철시키자 정부안에 대한 적극적 지지를 표명하기 시작했고 국회환경노동위 법안 소위에서 통과된 후로는 환영을 표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시점에서 노동시간단축투쟁을 전개해 온 노동조합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시간 단축과 주5일제는 유사한 부분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일치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입장정리 없이 함께 사용해 온 점,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주5일제와 삶의 질, 중소영세비정규여성노동자 희생 없는 주5일제 등으로 요구를 변화시켜 오면서 거기에 걸 맞는 전략. 전술을 수립하지 못한 점, 뜨거운 감자처럼 맴돌던 노사정위원회는 팽개치고 그 보다 훨씬 수구보수적이고 친자본적인 한나라당이 다수당인 국회에서 협상을 하겠다고 시도한 점, 특히 양 노총 단일안이라는 이름으로 시행시기를 조정하기는 했지만 차별(실시)를 인정했다는 점, 투쟁동력과 관련하여 현장동력을 전혀 활용하지 못한 상태에서 양노총의 미약한 파업전술이 오히려 수구보수 국회의원들에게 정부안보다 더 개악된 상태에서의 법안을 통과하게 빌미를 준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동조합의 대응부족이 오늘의 개악법안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자본주의 역사는 노동시간단축의 역사이고 그러한 역사를 만들어 온 주체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었고 그들이 연대하한 조직은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시간단축으로 고용을 확대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동자들과 장시간 노동의 구조 속에서 노동력의 무한착취를 통해 이윤을 확대하려는 자본가 사이에서의 대립점은 노동시간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법이라는 것은 노동과 자본간의 힘의 관계, 즉 정세의 반영일 뿐이다. 그러나 똑 같은 힘의 발휘를 누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하는가는 그 투쟁을 이끌어 가는 앞선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비록 개악의 마지막 지점에 와 있다고 할지라도 현재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단축하는 투쟁은 계속되어야 하고 휴일수 증가라는 기만적인 사기극의 그물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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