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법 논란의 오해와 진실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촉발된 종북 논란이 급기야 민주당으로까지 번졌다. 북한인권법을 발의한 새누리당과 법안 통과에 부정적인 민주당이 종북과 색깔론으로 날선 각을 세우고 있다.

북한인권 개선 요구를 내정간섭으로 규정한 이해찬 전총리의 발언은 북한을 인정해야 하는 남북관계의 현실과 주권 존중이라는 국제규범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살만한 것이었다. 오히려 민주당의 북한인권법과 관련한 입장은 내정간섭이라서 반대하는 게 아니어야 한다. 참담한 북한의 인권현실을 개선하고 증진시키기 위한 외부의 노력과 관심은 보편적 가치로서 정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북한을 자극하고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법안통과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어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은 부차적 이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북한인권과 관련해 진보진영 일각에 존재하고 있는 ‘특수’의 과잉과 ‘남북관계’의 과잉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

오히려 새누리당의 북한인권법을 반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법안의 내용에 인권개선의 실효성이 전혀 담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진보진영은 북한인권의 현실이 참담하고 따라서 북한의 인권이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국제사회가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정당함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다만 명분과 정당성만을 내세운 법안통과 강행이 아니라 인권개선의 실질적 효과를 제고시키기 위해 진보와 보수가 머리를 맞대고 충분히 더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즉 인권개선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인권개선의 실효성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실제 북한인권법안의 주요 내용은 새누리당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북한인권 대사 임명, 북한인권자문위원회 구성, 인권기록보존소 설치, 북한인권 재단 설립 등 대한민국이 북한인권 개선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상징적 조치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들 조치는 굳이 법률이 아니더라도 정부의 정책기조로 얼마든지 실행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서독이 설치했던 중앙법무기록보존소는 동독인권법이라는 법제정 없이도 묵묵히 역할을 수행했다. 실질적 효과보다 상징적 의지를 담고 있는 것에 불과한데도 마치 법안 통과가 되면 북한주민의 인권이 당장 엄청나게 개선되는 것이 되고 법안 통과를 반대하면 북한 인권 개선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매도되는 것 자체가 사실왜곡이자 과잉주장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북한인권법이 인권개선의 만병통치약인 양 호들갑을 떠는 것은 또 다른 점에서 진실을 숨기고 있다. 주권국가에 대한 인권개선 요구는 정당하지만 그것이 실제 효과를 내려면 최소한 상호 신뢰관계에 토대하고 있어야 한다. 새누리당이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예를 들고 있는 김대중 전대통령 구명운동에 미국이 기여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한미관계가 동맹에 기반한 상호 신뢰관계였기에 미국이 한국에 대한 인권요구가 가능했음을 숨긴다면 그건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 동포에게 식량지원을 중단하고 대통령이 기회만 나면 급변사태를 언급하는 조건에서 남북의 상호신뢰는 눈꼽 만큼도 찾아보기 힘들다. 상종불가와 불구대천의 적대관계에서 대북강경을 고수하고 있는 정부가 굳이 만사를 제쳐두고 북한인권법 통과만이 인권개선의 지름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래서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법안 반대라는 이유만으로 김정은 체제를 추종하는 종북세력으로 낙인찍는 정치적 이분법에만 매달린다면 정작 저의가 의심스러운 것은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이 된다. 이제 불필요한 오해와 논쟁을 뒤로 하고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실질적 조건과 방도를 찾는데 여야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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