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 사태를 악화시킨 잘못 세가지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통합진보당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분명 발단은 비례대표 후보 선출과정의 부정 의혹이었는데 지금은 종북파에 대한 마녀사냥으로 번져버리고 말았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논란에서 대한민국의 국체를 부정하는 주사파 색깔론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 논쟁으로 이념적 전선이 확대되면서 이제 통진당 사태는 전체 진보진영에 대한 흑색선전과 야권 전체에 대한 무조건식 매도로 이어지고 있다. 다가올 대선을 앞두고 보수진영은 호재를 만났고 이른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 역시 야권연대와 운동권출신 진보정당을 비판하는 데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 되었다. 후보자 선출과정의 논란문제가 진보진영에 대한 색깔 덧씌우기로 악화되어버린 데는 정치적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이를 활용하려는 정치세력과 일부언론의 의도도 책임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러한 빌미를 제공한 통합진보당의 초기 대응에 일차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민주주의 제도 안에 들어와 있는 정당이 공직후보자 선출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를 위반하거나 무시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에 대해 응당한 반성과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선거부정을 인정하고 깨끗이 비례후보자가 사퇴하고 지도부가 책임을 졌다면 그동안 관행처럼 묵인되어 오던 당내 선거의 절차적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진보당이 거듭날 수 있는 정치적 계기가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진보당은 초기 대응을 잘못함으로써 호미로 막을 상황을 가래로도 못막는 상황을 자초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같은 오류를 범한 데는 진보 진영 일부의 오랜 문화와 의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목표가 정당하다면 수단의 사소한 잘못은 묵인될 수 있다는 ‘목적 편의주의’의 존재다. 군사독재 시절 엄혹한 탄압 속에서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시절에는 응당 독재 타도라는 정당한 목표를 위해서라면 학생회 선출과 지도부 선발 등에서 민주적 절차는 적절히 무시되어도 되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런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면 이는 큰 잘못이다. 진보세력의 원내진출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노력해온 인사를 비례후보로 뽑기 위해 일부 절차적 오류와 하자는 본질적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편의주의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둘째 잘못은 나만 한 게 아니라는 ‘상대주의’ 함정이다. 진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쉽게 빠지는 오류의 하나가 바로 상대방이 더 나쁘지 않는가라는 상대적 우월의식이다. 내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보수는 더 나쁘고 더 잘못을 했기 때문에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식의 대응은 자칫 진보의 자기반성과 성찰을 불가능하게 한다. 내 눈에 분명 티가 있다면 남의 눈의 대들보가 더 큰 문제라는 식으로 자기 잘못을 피해갈 게 아니라 작은 티라도 내 눈에서 먼저 드러내는 자기반성이 우선이어야 한다. 상대가 아무리 더 큰 잘못을 하고 나쁘다 하더라도 내가 잘못한 게 분명하다면 깨끗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과 책임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잘못은 비교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셋째 진보당에 대한 비판을 마치 조중동 프레임에 포섭된 이적행위로 간주하는 이른바 ‘진영논리’이다. 진보당 구당권파에 대한 비판과 공격을 조중동이 앞장서서 정치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구실삼아 애정 어린 진보 진영 내부의 비판마저 진보진영을 해하려는 이적행위로 간주해 배척한다면 진보 내부에서의 반성과 성찰은 애초부터 불가능해진다. 조중동 프레임에 갇혀 정세와 현상을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분명한 잘못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조차 조중동과 같은 목소리라고 고개를 돌린다면 어떻게 스스로의 변화가 가능하겠는가? 이는 마치 군사독재 타도를 외치는 청년학생들의 주장이 북한의 대남선전 구호와 동일하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 이적행위로 구속했던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지배권력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통합진보당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되면서 전체 진보진영이 큰 상처를 입고 정치적 후유증을 앓고 있다. 지금이라도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진보진영과 전체야권이 거듭날 수 있는 자기혁신과 성찰적 반성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일부 진보 진영의 ‘목적 편의주의’와 ‘우월적 상대주의’ ‘경직된 진영논리’의 덫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제발 부탁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