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제재와 한미동맹의 '덫'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시작되면서 한국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모든 은행을 제재하겠다는 미국의 법은 일단 내용부터 고압적이다. 제재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른 주권국가들의 경제행위마저 법으로 제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초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동맹국의 강력한 동참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제재 동참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마냥 감수하기도 만만치 않다. 이란으로부터 원유수입을 중단할 경우 당장의 수입선 다변화도 어렵고 유가 비용 상승을 견뎌내기도 쉽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거래 중단으로 경제교역과 투자마저 위협받는다면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수출입도 타격을 입게 된다. 한국으로선 제재동참으로 많은 것을 잃어야 할지도 모른다.

내키지 않는 제재 동참에 한국이 끌려들어가는 것은 오로지 동맹이라는 이유에서다. 동맹 때문에 원하지 않는 곤경 심지어 전쟁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을 국제정치학은 ‘연루’의 위험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른다면 이란제재야말로 한국이 연루라는 동맹의 ‘덫’에 제대로 걸린 셈이다.

그런데 원래 한미동맹은 이런 경우까지 연루되는 것을 상정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과 미국은 공동의 목적 하에 전쟁을 공동 수행했다. 한국은 공산군의 적화통일을 막아야 했고 미국은 사회주의 진영의 확장을 막기 위해 참전했다. 따라서 정전협정 이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상대방이 무력공격과 침략을 받을 경우를 상정한 동맹 조약이었다. 실제로 한미동맹은 북한의 남침을 억지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던 게 사실이다. 한미 연합전력과 인계철선에 의한 미국의 자동개입은 북한의 전쟁의욕을 억지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이후 한미동맹은 연루의 덫에 조금씩 빠져 들었다. 단지 북한의 남침 억지라는 소극적 동맹을 넘어 미국의 군사적 목적을 지원하기 위한 한국의 전쟁 참여라는 적극적 동맹의 덫에 빠지기 시작했다. 1960년대 베트남전 참전과 파병은 그나마 6.25에 참전한 미국의 도움에 보은한다는 ‘의리’로 설명되기도 했고 경제적 효과 또한 적지 않았다. 공산화 방지라는 애초의 한미동맹과 연관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한미동맹이 본격적인 연루의 덫에 빠져든 것은 탈냉전 이후 사회주의가 붕괴한 다음이었다. 반공이라는 공동의 가치로 형성된 한미동맹은 공산주의 패망이라는 탈냉전의 상황에서 사실상 역사적 수명을 다해야 했다. 지구상 사회주의는 사라졌고 한국은 중국 소련과 수교했고 남북관계는 적대적 대결관계에서 협력적 공존관계로 전환되었다. 응당 한미동맹은 애초의 역사적 의미와 전혀 달라진 상황에 맞춰 재조정되고 변화해야 했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새로운 연루의 덫을 요구하면서 한국을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엄청난 비용과 부담을 계속 청구했다.

미국의 이라크전에 한국군을 파병한 노무현 정부의 결정은 그래서 탈냉전 이후 한미동맹의 불길한 시작이었다. 남침 억지 및 공산화 방지와 아무런 상관없는 이라크전에 단지 미국이 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군대를 파견하고 민간인이 목숨을 잃어야 하는 동맹의 덫에 갇히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원하는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적대적인 부시 정부를 협상으로 이끌기 위한 고육지책의 외교적 노력이었다는 평가가 그나마 가능했다. 이라크 파병을 빌미로 실제 노무현 정부는 부시 정부에 대한 지렛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요구도 노무현 정부는 한미관계와 한중관계 사이에서 나름의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다.

이에 비한다면 지금 이란제재 동참은 최악의 동맹의 덫이자 연루의 수렁으로 이끄는 늪이다. 반공도 남침억지도 아닐뿐 아니라 상대방이 전쟁 중이거나 침략을 당한 상황은 더더욱 아니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의 일환도 전혀 아니다.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는 북핵협상을 가로막고 지연하기 위해 한미공조를 활용할 뿐이었다. 이란 제재 동참은 오히려 북핵문제를 협상이 아닌 제재와 압박으로 일관하겠다는 메시지를 줄 뿐이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은 당연히 더 멀어지게 된다. 명분도 실익도 없이 전략동맹, 가치동맹으로 격상시킨 이명박 정부의 맹목적인 한미동맹 지상주의로 인해 우리는 치명적인 동맹의 덫에 빠져들고 있다. 이젠 빠져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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