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반도 정세: 기대와 현실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최근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일정한 해빙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정세주도의 핵심은 미국과 중국이지 남과 북이 아니다. 올 초 1월에 미중정상회담에서 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남북관계의 개선과 6자회담 재개라는 공감대를 분명히 했다. 2010년의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로 인한 한반도 긴장고조와 최악의 남북관계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후 북한의 고위군사회담 제의와 남북 군사실무회담 결렬이 있었고 김부자 표적지 사건과 남북 비밀접촉 폭로로 남북관계는 여전히 갈등국면이었다. 그럼에도 미국과 중국은 남북대화를 주문했고 급기야 7월 억지춘향식으로 남과 북은 비핵화회담이라는 사진을 찍었고 그게 끝나자마자 북한과 미국은 양자협상을 시작했다. 9월에 다시 개최된 베이징 비핵화회담 역시 별다른 합의나 성과는 없이 사진찍기용이었고 결국 북미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의 성격이 강하다. 결국 남북 외부의 정세조건이 남북관계 개선을 요구하고 압박하고 이에 대해 남북이 수동적 반응을 하는 형국이지 남북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관계회복에 나서지는 못하는 형국인 셈이다.

우선 김정일 위원장의 방러와 메드베데프와의 가스관 연결 합의는 남북러 가스관 연결 가시화라는 기대를 안게 하고 있다. 이미 2008년 한러 정상회담에서 가스관 연결에 합의했고, 이번에 북러가 합의한 만큼 형식적으로는 남북러 가스관 연결 프로젝트의 시동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가스관 연결은 러시아가 주도국으로서 북한지역을 경유해 한국에 판매하는 것이므로 이 자체가 남북이 함께 논의하고 합의해야 할 내용은 없다. 단지 판매자 러시아가 북한을 통과해 가스를 구매자인 한국에 파는 것뿐이다. 결국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 자체는 남북이 따로 대화를 통해 아젠다화할 성격이 못되는 것이다. 즉 북러가 따로 논의하고 한러가 별도로 논의하는 것이지 남북러가 함께 할 논의사안은 아닌 것이다. 최근 북러 가스회사가 회담을 갖고 한러 가스회가가 회담을 가졌지만 남북러가 같이 회담하지 않은 것도 그 이유다. 물론 가스관이 북한지역을 통과해 우리가 사게 된다면 그 분위기 자체가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본질적으로 이 사업 자체는 남북대화의 아젠다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남북관계의 분위기와 가스관 연결 자체를 반대하는 보수 진영의 저항 등을 감안하면 당장 가시화되기도 힘든 사업이다.

또한 류우익 장관의 업무개시로 대북정책의 변화가능성이 기대되기도 한다. 유연성을 강구하겠다고 밝히고 실제 민간차원의 사회문화 교류와 방북이 허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남북관계 정상화와 개선까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여전히 남북관계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고 상호 신뢰가 형성되지 않는 조건에서 한 두가지 이벤트가 구조적인 관계개선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우선 대북정책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 통일부 장관이 하는 게 아니다고 분명히 못박은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과 가스관 연결 및 대북 수해지원마저 거부하는 보수진영의 정치적 반대를 류장관이 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북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고 돌이키기 힘들만큼 가버린 상태여서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신임 통일부 장관에 의해 대북정책 변화나 남북관계 개선의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최근 베이징에서 비핵화 회담이 두 번째 열린 것 자체는 긍정적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만찬까지 이어진 북측의 태도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진지한 협상과 합의 도출은 애초부터 무망했고 역시 회담의 본질은 북미협상으로 가기 위한 사진찍기용 징검다리일 뿐이다. 남북관계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미국과 중국의 요구에 의해 남북이 비핵화회담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것이 성과를 내거나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지기엔 갈 길이 너무 멀다

미국의 입장이 전략적 인내에서 전략적 개입으로 조금씩 선회하고 있는 것은 맞다. 지난해 말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공개 이후 미국은 북한과 협상을 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실제로 남북 비핵화 회담 이후 북미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재미교포 이산가족 상봉과 미군 유해송환 등에 합의하고 대북 식량지원 등을 추진하는 등 분위기 조성에도 나서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미공조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가 어려운 조건에서 한국을 따돌리고 본격적인 북미협상에 나서기는 아직 시기상조다. 남북관계가 천안함 연평도로 교착되어 있는 상태에서 미국이 확실하게 북미협상에 나서기는 아직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요구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여전히 북한의 선행동 조치를 요구하면서 대북 압박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를 짐작케 한다.

결국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변화해야 하는 바, 이는 남북 비핵화 회담 개최와 신임 통일부 장관의 의욕 및 미국의 대북 개입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여전한 고집과 보수 진영의 정치적 반대 등에 의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지속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기실 대통령의 생각이나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상황변화를 예단하기 힘들다. 홍준표 대표의 개성공단 방북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남북관계는 정상화되기 어려운 구조를 안고 있는 것이다. 제비 한 마리 왔다고 봄이 온 것이 아니다. 여전히 상황은 녹록치 않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