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의 대북정책을 비판함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인 박근혜 대표가 외국 저널 기고를 통해 자신의 대북정책 구상을 밝혔다. 미래 권력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정치 지도자인 만큼 그의 대북정책 기조를 냉정하고 엄정하게 평가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대표는 대안 없는 대북강경정책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속적인 지원도 북한을 변화시키지 못했고 동시에 ‘수년간 시도된 지속적인 압력도 북한을 변화시키지 못했다’면서 사실상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박대표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 대신 ‘보다 유연한’ 대북정책 구상을 직접 밝힌 바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결과를 실패한 것으로 규정하는 박대표의 평가는 전면 중단의 남북관계를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나름 긍정적이다.

또한 박대표는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과 함께 눈길을 끌고 있다. 기고문에 직접 언급된 경제협력 프로젝트, 인도주의적 지원, 특별경제구역 설정, 인적물적 자유왕래, 해외 투자 유치 등의 중요성과 함께 2002년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논의된 한반도 철도연결 사업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박대표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화해협력을 증대시킨다는 목표는 바람직한 것이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현실적 방도는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목표는 명확한데 이를 위한 구체적 해법이 결여된 것이다. 사실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과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노태우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대북정책 목표는 민족공동체 형성, 화해와 협력, 평화와 번영, 상생과 공영으로 시종여일하다. 박대표의 대북정책 구상에서도 남북간 ‘신뢰’ 형성은 당연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안보와 교류협력의 균형, 남북관계와 국제공조의 균형 역시 역대 어느 정부도 포기할 수 없는 한반도 상황의 당연한 목표다. 그러나 여전히 박대표의 구상에서는 ‘신뢰외교’를 위한 현실적 해법이 잘 보이지 않고 ‘균형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한 구체적 접근이 애매하다.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구호(slogan)만 있을 뿐 해법(solution)이 없어 보인다.

당위적인 구호와 목표만 있을 뿐, 실제로 관철하기 위한 구체적 해법이 부족하다는 점은 바로 박대표의 접근법이 철저히 ‘내탓 아닌 남탓’으로 일관하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대북정책의 핵심인 신뢰외교(Trustpolitik)의 두 원칙으로 박대표는 ‘북한이 한국 및 국제사회와 맺은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점과 ‘평화를 파괴하는 행동은 확실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신뢰를 강조하면서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한국 속담을 인용해놓고 정작 신뢰의 조건으로 박대표는 북한이 해야 할 일만 제시하고 있다. 즉 신뢰외교를 위한 북한의 선행동과 대북 경고만 있을 뿐 남측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함으로써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지는 고민하지 않고 있다. 박대표가 강조해 마지않는 남북의 상호 신뢰는 한국이 할 일은 없는 대신 북이 전제조건을 수용해야만 가능한 논리구조로 되어 있다.

대북정책의 또 다른 핵심인 균형정책(Alignment Policy)에서도 박대표는 교류협력을 위한 조건으로 ‘북한이 남북한 및 국제사회와 맺은 약속들을 지키려는 진정한 협력의 자세’를 먼저 보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균형정책에 따른 남북관계의 개선도 철저히 북한의 변화가 전제조건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박대표의 대북정책은 북에 대한 요구만 있을 뿐 남측의 노력과 액션은 없다. 이른바 선북한 변화론, 선북한 굴복론의 연장선인 셈이다.

또한 박대표가 제시한 ‘균형정책’은 전임 정부의 대북포용 정책도 비판하고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 정책도 비판하면서 궁여지책으로 찾아 낸 애매한 단어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 개념을 통해 대북포용정책과 대북강경정책을 동시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 박대표의 균형정책은 안보와 교류협력, 남북관계와 국제공조의 올바른 관계를 잘못 이해한 데서 나온 것이다.

원래 대북포용정책은 일관되게 안보와 교류협력의 병행, 남북관계와 국제공조의 병행을 강조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 3원칙에 ‘튼튼한 안보’와 ‘화해협력 추진’이 나란히 놓여 있고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시종여일하게 ‘남북관계와 한미공조의 선순환’을 추구했다. 올바른 대북정책은 안보와 교류협력, 남북관계와 국제공조의 ‘균형’이 아니라 오히려 ‘병행’이어야 한다.

그러나 박대표의 균형은 두 가치의 동시 병행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오고가는 냉온탕에 가깝다. 즉 ‘군사도발을 감행한다면 도발의 대가를 깨닫도록 즉각 대응함으로써’ ‘단호한 입장이 요구될 때는 더욱 강경하고’ ‘북한이 협력의 자세를 보이면 걸맞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안보와 교류협력을 동시에 병행하는 개념이 아니라 북이 도발하면 최고조의 강경함으로 대응하고 북이 협력적이면 유화적으로 행동하는 김영삼식 왔다갔다 개념인 것이다. 이는 안보와 교류협력을 병행 불가능한 상호 모순적 관계로 간주함으로써 대북 강경과 대북 유화가 극적으로 교차하는 오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대표가 강조하는 안보와 교류협력의 균형은 대북포용정책하의 병행노선이 아니라 대북강경을 기본으로 하면서 북이 변화하면 손을 내미는 사실상 대북압박정책에 다름 아니다.

결국 박대표의 대북정책 구상은 현실적 해법 없는 공허한 목표, 북한의 선행동만을 요구하는 일방주의, 사실상의 대북강경정책 재확인이라는 점에서 결정적 한계를 안고 있다. 야심차게 내놓은 ‘신뢰외교’와 ‘균형정책’이 새로운 작명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난해하고 복잡한 남북관계를 풀어가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박대표의 대북정책으로는 이명박 정부가 분탕질해놓은 최악의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키기에 한참이나 부족해 보인다. 더욱 분발을 요구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