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죽어나가는 북한의 숙청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최근 북한에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단다. 과거 남북관계를 관장했던 이른바 대남 대화파 30명이 숙청당했다는 일부 언론의 1면 보도는 보는 사람의 눈을 의심케 했다. 남측과의 대화에 나섰거나 대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른바 ‘대화파’들이 강경파의 득세로 대거 숙청되고 처형당했다는 미확인 보도였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선정적인 내용을 유력 일간지 1면 톱에 올리는 것 자체가 우리 언론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북한 당국자들이 죽어나간다는 보도는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가깝게는 국가안전보위부 실세였던 류경 부부장이 최근 처형당했다고 전해졌고 주상성 인민보안부장도 숙청당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2010년에는 노동당 실세인 이제강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이용철 부부장도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이 역시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정치적으로 타살 당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2009년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총살당했다는 박남기 당 재정계획부장의 경우는 처형 장소와 처형 과정까지 상세하게 보도되기도 했다. 도대체 믿기지 않는 무수한 처형과 총살이 북한에서 이렇게 자주 벌어지는 것에 대해 우리 언론은 상당부분 사실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권력 엘리트의 이합집산과 내부 갈등 및 암투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는 곧 패배한 쪽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조선 왕조식 권력투쟁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다.

언론의 잇따른 숙청설 보도는 심지어 집권여당의 대표까지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싶어도 북에서 대화파 30명이 숙청당했기 때문에 남북대화 상대가 없어져서 어쩔수 없다는 식의 책임전가 발언까지 하고 나선 것이다. 지금의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북한 내부의 복잡한 사정 탓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떠넘기기 수법에 우리 언론의 숙청설 보도가 그럴듯한 근거를 제공한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최근 잇따라 보도되고 있는 처형설의 신빙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고위 인사가 사고나 건강상 이유로 사망하는 경우는 분명 있을 것이다. 자연적인 노환이나 불가항력적인 사건 사고로 죽은 것에 대해서도 이상한 색안경을 끼고 그럴듯한 소설을 그려내면 안된다. 이제강 부부장의 교통사고를 권력투쟁에 희생된 고의적인 살인이라고 본다면 고영희의 암투병 사망과 조명록 차수의 사망까지도 김정일과의 권력암투나 후계갈등으로 그려내야 할 것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근거와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사고사나 자연사까지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과 숙청으로 몰아가는 것은 언론의 정도가 분명 아니다.

또한 정책적 실패의 책임을 물어 해임하거나 좌천된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특히 최근 남북관계의 완전파탄 상황에서는 북한 스스로도 남북관계를 잘못 전망한 책임을 묻거나 상황 악화에까지 이른 일정한 잘못을 물을 수도 있다. 예컨대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실무 주역이었던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이 좌천되었던 것은 그럴만한 정황이 짐작이 간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남측의 대북정책이 그리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제출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북한 입장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 여부가 초미의 관심이었을 것이고 최승철 부부장은 정권 교체 이후에도 10.4 선언 이행이 지속되고 대북정책 변화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정책은 전면 수정되었고 10.4 선언은 휴지조각이 되었으며 남북관계는 최악에 이르렀다. 결국 정세 판단과 상황 전망에 책임을 물어 최승철 부부장은 한동안 사라졌고 일정 기간이 흐르고 이제 그는 직업총동맹 부위원장으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북한에서도 정책 담당자의 정책적 실패에 대해서는 일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고 특히 수령의 무오류성으로 인해 누군가는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책에 대한 실패의 책임은 좌천이나 해임 정도이고 대부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복귀되는 게 정석임에도 일부 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이를 숙청 혹은 처형으로 단순화해서는 안된다. 최승철 부부장의 경우에서 드러나듯 일정기간 좌천 혹은 자숙의 기간을 갖고 다시 복귀하는 것이 정상적 경로이지 정책의 실패를 물어 총살하거나 처형하는 식은 아직 북에서 공식 확인하기 힘들다.

북한의 정치사는 건국 이후 1970년대까지 매우 역동적인 권력투쟁기였다. 김일성 주석은 남로당파를 숙청하고 이어서 소련파와 연안파를 차례로 제거한 다음 결국은 갑산파까지 몰아내면서 결국 유일지도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이 시기는 분명 정치 세력간의 치열한 권력투쟁이었고 패배할 경우 철직되거나 숙청되었다. 유일지도체제와 수령의 유일영도체제가 완성된 1970년대 이후에는 북에서 권력집단간의 암투는 존재하지도 허용되지도 않았다. 수령제와 유일사상체계에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다.

다만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북한이 심각한 체제위기에 봉착하게 된 1990년대 이후에는 국가재산 착복이나 횡령, 거액의 달러 보유 등의 경우 법률에 의거 처형하는 경우가 있었다. 외자유치를 담당하거나 해외 업무를 하면서 거액을 횡령하거나 빼돌릴 경우 그것은 어려운 국가상황에서 용납되기 힘든 것이었다. 개방파로 알려진 김정우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장이 1990년대말 갑자기 사라진 것을 두고도 수십만 달러의 현금보유설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간첩죄와 반역죄 등은 여전히 북에서 처형의 대상이 된다. 북미 적대관계가 온존하고 ‘공화국을 압살하려는 국제사회의 책동’이 상존하고 있다고 믿는 북한 입장에서는 외부의 불순한 세력과 연계된 간첩죄와 반역죄는 용납하기 힘든 게 된다. 1990년대 서관히 농업담당 비서의 숙청과 관련해 간첩죄 등이 거론된 것은 그 맥락이었다. 따라서 지금 북에서 처형 등의 극단적 책임을 묻는 경우는 수령제나 유일사상체계에 저항하는 행위, 거액의 국가재산을 횡령하는 행위, 외부와 연관된 간첩죄 등이라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이를 넘어서 당국자의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처형이나 총살을 한다면 이는 북한적 상황에서도 이해되기 힘들다. 지금 우리에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박남기 부장 처형설도 그런 맥락에서 신중하게 들여다 봐야 한다. 강건군관학교에서 당 간부들 보는 앞에서 총살당했다는 박남기 부장의 경우, 만약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죽인 거라면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북한의 권력운영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으로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수령제와 유일사상에 저항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지만 그렇게 때문에 북한의 수령제는 더더욱 권력엘리트들의 충성심을 조직하고 유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당정책을 관철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정책집행이 현실적 이유로 실패했다고 해서 그 책임을 물어 목숨을 빼앗아버린다면 그런 식의 권력운용으로는 결코 수령제하에서 엘리트들의 충성심을 결집시킬 수 없다. 남북관계 전망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최승철을 총살하고 대화일꾼들을 모두 죽인다면 누가 또 수령과 당의 지시를 받아 대남사업에 열심히 나서겠는가?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어 총살했다는 보도는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수령제 시스템의 속성상 비현실적인 권력운영 방식이고 때문에 여전히 박남기 총살설은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가 파탄난 상황에서 북한 내부에도 통전부와 아태가 아닌 국방위원회와 군부가 대남전략의 주도권을 가질 수는 있다. 그리고 남북대화를 주도했던 당국자들 중 곤욕을 치루거나 힘든 시기를 보낼 수도 있다. 이 정도는 우리 쪽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수준을 넘어 총살과 처형으로 책임을 물었다면 신빙성도 없을 뿐 아니라 북한적 상황에서도 이해되기 힘들다. 우리는 언제까지 사실 확인 없는 선정적인 북한 기사의 홍수 속에 살아야 하는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아니면 말고’식의 북한관련 기사가 마치 사실인양 간주되는 우리의 현실은 지금의 파탄난 남북관계를 반영하는 것 같아 더더욱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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