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월간 폴리피플 2011년 3월호(20호) ‘COVER STORY’에 게재되었습니다. >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폴리뉴스> 및 자매지 월간 <폴리피플>은 본격적인 후보검증에 들어간다. 첫 번째 주자는 민주당의 정동영 최고위원이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지난 1996년 15대 총선에서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되어 일약 스타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정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명대변인으로 입지를 굳혔고 순탄한 정치행보를 해오다 DJ정부의 아킬레스건인 동교동계 이선 퇴진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정풍운동으로 주자반열에 오른 2002년 국민참여경선 완주와 2007년 대선 실패 등의 부침을 겪고 지난 10.3 전당대회를 통해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지난 2월 17일 이명식 편집주간 진행 하에 고성국 정치학박사, 황인상 P&C 대표이사, 윤희웅 KSOI 조사분석실장, 김능구 e윈컴 대표가 정동영 최고위원의 정치행보와 정책, 비전 그리고 2012년 가능성에 대해 점검했다.

사회: 그동안 <폴리피플> 특집이 대선을 둘러싼 여러 가지 변수를 짚어봤다면 이번 20호 특집은 대선 후보들을 직접 검증하는 순서가 되겠다. 첫 번째 순서로 야권에서 거론되는 후보 중 정동영 후보를 검증하는 자리다. 정동영 후보는 야권후보 중 대중 인지도도 높은 편이고 여러 가지 정치적 행적이 많기 때문에 굳이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이다. 96년 15대 총선에서 정치무대에 데뷔해 오늘에 이르렀는데 정동영 후보의 정치행적을 짚어보는 이야기로부터 좌담을 시작하겠다.

고성국: 제가 몇 가지 포인트만 말씀을 드리겠다. 정동영은 긴급조치 세대이다. 유신체제가 들어섰을 때 대학교 1학년이 돼서 학생운동으로 감옥도 갔다오면서 70년대 세대와 맥을 같이 했다. MBC 기자로서 삼풍백화점 붕괴와 김일성 주석 사망 등 국민이 기억할 만한 중요한 사건을 다루는 앵커 역할을 하면서 깊은 인상을 줬다.

그러나 정치권에 들어오는 과정을 보면 DJ 사관생도처럼 들어왔다. 15대 때 젊은 피 수혈 차원에서 김대중 당시 총재가 직접 사람들 인터뷰 하고 영입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이른 바 ‘천신정’이 다 그때 영입 됐다. 이들에 대한 DJ의 애정과 지원은 대단히 두터웠다. 세 사람을 각별히 챙겼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정치권에 입문했고 DJ의 배려 속에서 지역에 출마했고 무난히 당선되었다. 정동영은 당 대변인을 하면서 일산 DJ 자택에서 거의 2년 동안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기도 했다. 대변인 시절 활동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본다. 김대중 같은 거목을 대변인으로서 매일 아침 만나서 보고하고 지시받고 언론에 실수 없이 문장화시켜서 보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정말 대과없이 잘 해낸 것만으로 굉장한 정치적 역량으로 평가 받았다.

그 이후에 정풍운동이 있었다. 정풍운동 과정을 보면 ‘기획에 천정배, 행동에 정동영’이 빈말이 아닌 것 같다. 실제 정풍운동을 같이 했지만 정풍운동 과정에서 유일하게 이를 자기 브랜드로 만들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한 정치인은 정동영이었다. 정풍운동을 거치면서 정동영은 리더 반열에 뛰어올라버린다. 그런 면에서 타이밍 감각이 매우 뛰어나고 승부사의 천부적인 재질이 정치 초년생 시절에 드러났다고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530만 표의 패배가 너무 컸던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보통 대통령 나갔다 떨어지면 ‘참 아깝게 떨어졌다’, ‘아쉽게 떨어졌다’, ‘한 번 더’라는 생각을 하는데, 정동영의 참패는 그렇게 생각할 여지를 안 준다. 지금도 여전히 그 벽이 있다. 둘째, 정동영이 2004년 총선 때 비례대표를 노풍(老風) 발언으로 반납하고 5년 동안 국회의원을 못 했다. 너무 오랜 공백이 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실 무리해서 탈당했다가 무소속 당선해서 복당했다. 저는 이것은 직전 대선후보가 취할 행동이 아니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아주 치명적인 상처를 안게 됐다.

이 두 가지 벽을 넘어설 수 있겠는냐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동영의 정치행보를 이러한 몇 가지 포인트에서 의미 있게 보고 있다.

김능구: DY 이전 정치인과 이후의 정치인으로 구분된다고 할 정도로 새로운 모습의 정치인으로 우리 정계에 나타났다는 평가가 있다. 그전의 정치인 하면 뭔가 전부 우중충하고 권위주의적이었는데 정동영은 말랑말랑한 TV스타 같은 정치인의 모습으로서 각인됐다. 방송기자시절 활약상과 더불어 정치권에 들어와서도 몽골기병과 같이 질풍노도(疾風怒濤)의 모습을 보이면서 새로운 정치인의 모습으로서 대권주자로까지 성장 했다.

고 박사의 말씀을 좀 더 보완하자면, 정풍운동 이후 지도자 반열에 들어서고 대선경선에 출마하고 경선지킴이로서 참여정부의 1등공신이 됐다. 이후 통일부장관을 하면서 개성공단을 성사시켰고 현역 정치인 중 박근혜와 함께 김정일을 만난 유이(維二)한 사람이다.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반면 지난 2007년 경선 때의 무리수, 예를 들어 차떼기 등으로 인해 ‘정동영은 스마트하고 정직한 정치인’이란 인식이 경선 이후 구시대 정치인으로서 온갖 술수는 다부리는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그렇다 보니 지금 정동영이 지적받는 진정성 결여가 그때 데미지에서부터 생산됐다고 본다. 후보 되기 위해서 온갖 것 다 할 수 있다는 지난 경선 때의 모습이 DY의 결정적 이미지를 형성했다. 정동영이 지난 전주 보궐선거 나와서 배지 단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 이미지가 짙게 깔려 있다. 얼마 차이는 안 났지만 ‘비호남 후보론’ 때문에 손학규가 호남에서 몰표를 받아 당선됐다고 봤을 때 차기 대권에서 정동영은 호남 출신이라는 이중의 멍에를 갖고 있다고 본다.

황인상: 고 박사님이 이야기하신 것과 비슷한데, 정동영이라는 정치지도자가 현재에 오기까지 2단계가 있다고 본다.

첫째, 정치적 리더로서 정점에 이르는 데까지 성장했던 과정, 결국 17대 대선후보로 귀결되는 과정이 있다. 둘째, 대선후보 실패 이후 지금까지 오는 두 번의 과정들이 있다고 본다. 전반기에 정동영 후보 스스로 쓴 글을 보면 ‘거침없이 살았다, 달려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동영이 정치를 시작할 때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95년도 새정치국민회의를 DJ가 창당하게 되는데 몇 번의 대권 실패 후에 마지막으로 당을 창당하면서 천정배, 신기남, 추미애 의원 등을 영입하게 된다. 그 당시로서는 야권이 그동안 호남을 주축으로 이뤄온 정치역량의 한계로 인해 새로운 정치인들을 수혈했는데 그 실험이 대체적으로 성공한다. 본인 스스로도 전국 최다득표라는 정치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야권이 정치에 있어서 하나의 영역을 더 넓혀 나가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 이후 그 당시 야권이 갖고 있던 한계를 끝없이 확장하고 도전하는 데 본인의 역량을 주로 투여한다. 대변인의 역할이었는데, 과거에 대변인들이 비교적 투쟁적이었다면 이분은 대중성을 감지하면서 화려한 언술을 지니면서 야권이 미디어적 포커스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또 정풍운동이 하나의 계기가 됐다. 야당이 성장하고 집권하는 과정에서 곪아 있던 문제 중 하나를 본인이 돌파하고 해결했고 상당히 개혁적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 신선한 이미지에 대중성, 개혁성까지 포함한 면과 그때까지만 해도 정치적으로 깨끗했다고 본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200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끝까지 완주하는 아름다운 모습과 국민참여운동 본부장을 맡아서 정권재창출의 핵심으로서 서는 과정은 굉장히 주목할 수밖에 없고, 국민에게 정치적 리더십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성장의 과정이 있었다고 본다. 반면 본인이 당 의장이 되고 점점 정치적 비중이 커지면서 생기는 책임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는 정동영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들이 고질적 문제를 드러낸 모습으로 스스로도 전락해가고 말았다고 보고 있다. 그러한 환경적 요인이 1차적이었다. 둘째, 반성문에서도 중요한 이야기를 했는데 본인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다고 반성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격변의 과정, 특히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약화되고, 이를 극복하는 대안지도자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데미지를 받았다고 본다.

대권실패 이후 본인이 미국에 있다가 다시 당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당과 또 한 번 대결양상을 보였고 이것이 정치과정에서 꼭 풀어야 할 하나의 과제로 남게 됐지만, 결과적으로 지난 전당대회 때 예상보다 선전한 저력을 보인 것은 아직도 정동영이라는 인물을 배제한 민주당 또는 민주세력은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느냐, 그 안에 내재된 역량이 일정부분 남아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것이 소멸할 성격인지 더 확장할 수 있는 성격인지는 앞으로 더자세히 살펴봐야겠다.

윤희웅: 정동영 후보가 우리 정치사회에 나타나면서 미디어정치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수려한 외모와 달변에 의해 사람들이 이제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이미지를 보게 되면서 앞으로 미디어정치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대중적 인기스타의 이미지가 정치에 일정부분 반영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정동영 최고위원으로부터 보여졌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더불어 지금까지 새로운 이슈에 대한 도전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다. 반면,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이지만 탈당한 점에서 대중들에게 책임을 소홀히 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됐다. 또, 일각에서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난번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다거나, 전당대회 역시 더 기다려야 한다는 주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출마하면서 큰 정치인으로서 장기적인 목표를 갖는 모습, 인고하고 기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측면들이 지금까지의 행적에서 대중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고성국: 논쟁적인 말씀을 드리자면, 정동영이 미디어정치의 시작, 힘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테면 정동영의 미디어정치의 핵심은 감성이기보다는 논리였다. 화려한 언변이라고 표현하는데 감동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새롭다, 신선하다는 느낌은 줬지만, 미디어정치 차원에서 볼 때 노무현이 훨씬 더 감동을 준 사람이고 박근혜가 감성적인 방식으로 미디어와 결합하고 있다. 최초의 미디어정치 스타라는 평가는 맞지만, 과연 이 사람이 앞으로 전개될 미디어정치에 최적의 모델이냐에 대해서 굉장히 논의할 부분이 많다. 저는 정풍운동이 지금까지 정동영 정치의 최고 정점이었다고 본다. 정풍운동을 가만히 보면 DJ가 그 정도 허용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정풍 주체들 입장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는데, 만약 DJ가 안 된다고 했다면 양상이 어땠을지. 제가 보기에 이미 DJ는 정권을 잡아서 대통령이 됐고 30~40년 같이 고생한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동교동계가 국정운영에 필요하다거나 미래로 가는 데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가야 된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정치에 입문시켜서 정말 교육시키고 키워온 ‘천신정’을 중심으로 한 세대가 동교동을 치고 올라오는데 과연 DJ가 내심 어느 쪽 손을 들어줬을지, 저는 동교동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일종의 흐름으로 만들어져서 된 것이라고 본다.

정풍운동을 자신의 정치적인 성과로 확고히 만들어내려면 동교동계를 정계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그 기세를 몰아 포스트DJ의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비전과 내용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것은 정동영의 실패이기도 하고 천정배, 신기남의 실패이기도 하다. 이것은 민주당 정동영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정치권이 다 어떤 면에서는 포스트3김의 리더십에 대해서 갈구하고 있는 것이고 아직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저는 박근혜는 포스트3김의 리더십이라기보다는 박정희를 계승한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는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의 유지를 잘 해석하고 그것이 비전이라고 주장하면 충분히 자기를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복지 부분도 아버지의 염원이었다고 한 마디로 정리하고 가버린다. 나의 철학을 설명할 이유가 없는데 다른 사람은 안 그런다. 3김을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과 철학을 제시해야 하는 엄청난 숙제를 못 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점도 저희가 토론해봐야 할 대목이다.

윤 실장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이분이 58세 되셨을 텐데, 내년 아니면 끝이라고 하는데 생물학적으로 그렇지 않다. 60대 중반인 2017년이 오히려 적기일 수 있다. 정동영은 굉장히 빨리 출세한 케이스다. 김영삼, 김대중이 40년 고생해서 대통령 됐는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14년 정도 되나? 그렇다고 그 사이에 아주 농축적으로 뭔가를 겪은 것도 아니다. 양에 비해서 순탄하게 정치에 입문했고 순탄하게 여기까지 왔다. 그런 여러 가지 점에서 보면 서둘러야 될 이유, 쫓겨야 될 이유가 별로 없는데 너무 일찍 출세한 나머지 이번이 아니면 끝난다고 생각하는 조급증이 있다. 이것이 앞으로 남은 2년간의 행보를 헝클어뜨릴 가능성 있다. 이에 저는 여유 갖고 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제까지도 직전 대통령 후보였고 그 참담한 패배에 대한 가장 무거운 책임을 자신이 인식하고 그 상태에서 뭘 할 것인지 10년 정도 고민했다면 행보가 그랬을 리가 없다. 그 부담은 부담이고, 다음에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급증이 탈당 결행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만든 것 같다. 지금도 어떤 면에서 내년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이 또 다른 패착으로 나올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다.

사회: 행보를 짚어보는 이유 중 하나로, 정동영 지지도가 과거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 야권세력이라 했을 때 호남, 친노, 개혁세력으로 분류했을 때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으로 가장 앞장섰던 사람 중 한 사람이 정동영이었고 그만큼 호남에서 섭섭함 내지 배신감이 컸다고 생각된다. 이후 2007년 대선 무렵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으로 친노세력과도 완전히 결별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멀어지는 두 번의 과정이 중요한 부분으로 보인다.

김능구: 중요한 지적이다. 정동영이 미디어정치의 시대를 열었다고 하는데, 이후의 행보에 대해 사람들이 일관되게 ‘얄밉다’, ‘얌체 같다’고 본다. 너무 민첩하고 배운 척하는 사람을 부러워도 하지만 얄미운 생각도 갖는다. 정동영은 한때 정말 해야 할 말을 하고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순발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봐왔는데, 정풍운동을 그 시대의 용기 속에서 했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DJ의 허용할 수 있는 한계 속, 암묵적 지지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한 자리에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제1당으로 승리하게 되는데, 이 사람은 노인폄하 발언으로 국회의원 비례대표로도 못 나오고 단식으로 사과하고 불출마선언 했다. 그랬던 사람이 이후 경선 때 후보 되기 위해서 온갖 술수를 다 부렸다. 사람들은 뭔가 지도자로서 희생하는 모습을 바랐는데 희생과는 전혀 거리가 멀고, 민첩하게 이해관계에 충실하다는 인상을 갖게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대선 이후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대패 이후 국회의원 자리가 뭐라고 당을 뿌리째 흔들었다.

고 박사께서 말씀하신 길게 내다보지 못한 이유 다 떠나서, 항상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구나 그런 인식이 깔려버렸다. 물론 지난 전당대회에서 2위로 컴백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한계가 뿌리 속 깊이 있기 때문에 10%대의 유의미한 지지도로 나아가는 데는 상당히 힘들 것이다. 대의명분과 자기희생으로 지도자는 나가야 하는데 정치행보 속에 이미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버렸다.

사회: 반성문에 담겼던 내용을 어떻게 평가하나? 최근 제시하는 ‘담대한 진보’, ‘역동적 복지국가’, 한미FTA 반대 등의 내용이 반성문에 단초로 들어 있다.

고성국: 10.3 전대 때 TV토론 사회를 보면서 현장에서 느낀 부분인데 다른 후보들이 탈당, 무소속출마, 복당 과정에 대한 문제들을 제기했는데 역시 토론을 잘하더라. 그 질문이 나오니까 이래서 탈당했고 다시 복당했다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당원 여러분께 심려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사과 드립니다”라면서 절을 하더라. 그러고선 끝이었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머쓱해지더라.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이 장인어른 이념으로 공격 받을 때 딱 한 번 “그러면 내 아내를 버리라는 이야기입니까”라면서 주는 잔잔한 감동 혹은 울컥하는 느낌은 노무현 인생이 전부 응축돼서 한 마디로 표현됐다고 사람들은 느꼈다. 사람들이 감동 받고 더 이상 그 질문하는 놈 나쁜 놈으로 됐는데, 이 경우는 그것이 아니라 잘 짜여진 시나리오에 의해서 움직이는 아주 연기력 좋은 배우처럼 보였다. 본인은 정말 진정성을 갖고 할 수도 있고 굉장히 답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능구 대표 말씀대로 정치인은 배우가 아니다. 10년이면 10년, 20년이면 20년 정치 이전에 삶의 행적까지 포함해서 국민이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이미 상당부분 진정성을 전달하기 어렵게 정치행보가 헝클어졌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어떤 문제보다도 큰 벽으로 갖고 갈 수밖에 없다고 말씀 드리겠다.

황인상: 반성문은 자주 쓰면 쓸수록 거짓말쟁이가 된다. 반성문은 꼭 필요할 때 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동영 후보가 전대를 통해서 자신이 하나 털어내고 가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고 우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낸 것까지는 좋은데 그것에 진정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국민이 다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이후에 계속 주시하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 이전의 내용을 돌이켜볼 때 정동영 후보의 정치입문 면에서 고 박사님 의견에 공감이 가고, 이후 정권 잡았을 때도 2인자로 활동했었고, 정권 재창출 했을 때도 나름대로 통일부장관이나 제일 요직들을 거쳐 왔다. 문제는 당신이 그것을 맡으면서 한 것이 뭐가 있는지 물었을 때 딱히 내세울 게 없다는 것이다. 정동영 의원 자신이 정치를 해오면서 자신의 브랜드, 자신의 내용으로 딱 부러지게 내 것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에 정풍운동 하나 기억나는데, 그것도 당시 역학적 구조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평가한다면 사실 스스로 내용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가치로 환산해본다면 DJ는 역시 민주화이고 노무현은 지역주의 탈피로, 거대담론을 브랜드 로 가져가면서 일관된 행동을 보여줬다. DY의 경우는 지금까지 오면서 소재가 많이 바뀌었다. 한때는 개성공단을 통한 통일을 주장했고, 열린우리당 때는 성장노선 등 어정쩡한 내용을 취했고 최근에 와서는 복지, ‘담대한 진보’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정동영 후보는 진보보다는 중도우파 쪽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였었다. 반성문에 안에 있듯이 본인이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서 실천적으로 일관되게 갖고 오지 못했다.

다시 말해 두 가지가 제일 큰 문제다 첫째, 자기가 브랜드로 삼을 일관되고 특정한 담론을 갖고 있지 못하다. 둘째, 자신의 담론을 실천하고 이슈화하고 발전시켜가는 모습이 부족했다. 독보적으로 국민에 심판받기 위해 제시할 게 없는 것이다. 그래서 때만 되면 현재 가장 국민이 원하는 요구가 뭔지를 분석해서 제시하지만, 본인의 트레이드마크로 쓰기에는 굉장히 낯설다. 이러한 현상들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이것이 DY가 갖고 있는 현 수준이다. 그나마 지금 하나 남아있다는 것은, 그래도 일관되게 호남 정서를 담아내는 몇 안 되는 지도자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는 있는 것 같다. 이에 정치력을 금방 소진시키지 않고 위기가 오더라도 복구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봐서는 그것만으로 큰 승부를 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윤희웅: 지금 DY에 대한 정치 이미지 모습과 민주당에 대한 대중들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와 상당부분 중첩된다. 민주당 지지도가 일정수준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먹고 사는 민생문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부분과 그럼에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DY 지지도 역시 동일하게 민주당에 대중들이 느끼는 두 가지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유가 크다. 황 대표 말씀대로 현저히 낮게 형성돼 있는 DY 지지도가 개선되고 신뢰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재기하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이 메시지를 이야기할 때 그것에 대해 귀를 열고 들어주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DY는 메신저로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지만 대중들이 귀를 열고 들어주지 않고 있다. 인터넷 상에 ‘악플보다 무서운 무플’ 상황이 DY에게 나타나고 있다. 여러 이슈를 제기하더라도 별로 대중들이 반응하지 않는, 본인으로서는 굉장히 답답한 상황이니까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을 수밖에 없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패착을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대선 이후 악순환 되고 있다.

고성국: 저는 어떤 느낌을 갖느냐 하면, 어차피 내년에 복지와 통일·안보가 핵심이슈가 될 텐데 정동영 자신은 통일부장관을 지냈으니 통일에 대해서 할 말이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상품으로 가치가 있다고 간주하고 있다. 이에 복지 쪽으로만 제대로 해놓으면 ‘야권에서 나만큼 콘텐츠 잘 갖춘 사람이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저는 착각이라고 본다.

이를테면 박근혜가 복지공청회를 하고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제안했다고 해서 바로 박근혜표 브랜드가 되나? 박근혜는 복지를 이슈로 선점했을지는 모르지만 아직 박근혜표 복지브랜드를 갖지는 못한 단계다. 통일부장관이 돼서 김정일도 만났기 때문에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귀는 더 기울이겠지만, 그것은 이슈파이팅에 다소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뜻이지 정동영표 통일정책이 따로 브랜드화 돼서 자기의 것이 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김대중은 통일문제와 경제, 복지문제에 대해서 ‘대중경제론’과 ‘연방 3단계 통일론’이라는 자기 브랜드를 갖고 있었다. 이것 만드는 데 20년 넘게 걸렸고 혼자 만든 게 아니었다. ‘대중경제론’은 박현채 선생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지식인들이 모여서 만들었다. ‘연방 3단계 통일론’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정말 집단적 노력의 산물이고 10년~20년 묵히고 숙성시켜서 비로소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물론 미디어의 도움을 받아서 숙성기간을 조금 단축시킬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숙성 자체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숙성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집중도는 훨씬 더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브랜드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인데 지금 전혀 그러하지 못하다.

제 앞에 책 3권이 있는데 제가 정말 읽기 싫은데 억지로 읽은 책은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이다. 반면 중간중간에 재미도 느끼면서 자꾸 보게 됐던 것은 『개나리아저씨』였다. 이것은 누가 대필해줬다 하더라도 자기 성과를 자기가 쓴 것이다.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은 마치 정부홍보 책자 보듯 했다. 이런 것을 내놓고 브랜드라고 착각하고 있다. 복지논쟁과 관련해서 부유세 제안하고, 10.3 전당대회 과정에서부터 시작한 일인데, 그렇게 열심히 이슈파이팅 한다고 자동적으로 정동영 브랜드가 되느냐, 그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를 착각하고 이슈파이팅을 세게 하면 자기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불필요하게 세게 하는 측면이 있다. 마치 유시민이 처음부터 노이즈마케팅 식으로 세게 하듯이 정동영도 그런 측면이 있다.

이명식 주간 말씀대로 호남이나 친노세력이나 제대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없다. 자꾸 튕겨나가고 있다. 그것이 오히려 지지도 상승에 족쇄가 된다고 생각한다.

김능구: 미디어정치인으로서 정동영이 국민적 각광을 받게 됐는데, 미디어정치인에게 가장 큰 위험요소는 연출된 과장이 드러났을 때로 치명타를 받게 된다. 프로레슬링이 각본에 의한 경기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하루아침에 인기가 추락했다. 일본의 국기라 할 수 있는 스모도 연출임이 드러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큰 행보에서 DY는 자기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오바마의 말을 재빠르게 캐치해서 ‘담대한 진보’를 내세웠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내년 대선의 핵심이슈인 복지와 통일이기 때문에 그것에 맞게 제출했다. 응당 정치인이라면 해야 하지만 이미 정동영은 학습효과 때문에 DY가 하면 자기 이해관계, 자기 입지, 로만 보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과제다.

제 생각에 진보를 이야기할 때 ‘담대한’은 그냥 빼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담대한’이 들어가면서 마치 자신이 오묘하고 쥔 것처럼 보이게 하는데 단순하게 ‘진보는 필요하다’면서 좀 무식하게 가는 편이 차라리 낫다. 본인들도 ‘감동’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참 갑갑한 대목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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