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6자 회담이 합의되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일단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계기로서 다자간 대화가 시작되었음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여전히 북미간 속내는 알 길이 없다.




예의 경우처럼 대화 시작이 문제 해결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체제위기와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에 밀려 다자회담에 응하긴 했지만 북한이 대화과정에서 속시원히 핵을 포기할 거라고 보기는 힘들다. 미국 역시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보장과 일괄타결을 말끔히 들어줄 리는 만무하다.




북핵문제의 본질은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북한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힘겨루기만이 아니다. 핵문제를 통해 북한은 탈냉전 이후 북미관계 개선과 체제보장을 얻어내려는 의도이고 이에 반해 부시 행정부는 핵카드를 고집하는 북한과는 관계개선은 말할 것도 없고 김정일 체제보장도 쉽게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지금의 핵문제는 탈냉전 이후 북미관계 정립의 방향을 놓고 벌어지는 양측의 대립인 것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에도 북한은 핵카드를 이용해서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받고 나아가 관계개선을 이루려고 했다. 이에 대해 당시 클린턴 정부는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대북정책의 방향을 놓고 고심하다가 결국은 북한의 붕괴가능성을 예상한 상황에서 북의 핵동결을 전제로 북미간 새로운 관계개선을 시도하려 했다.




북한 핵문제 파생의 근본원인은 사회주의권 붕괴이후 북-미 양국의 관계 재정립 필요하기 때문




그러나 제네바 합의는 양국간 불신의 온존으로 인해 이행여부를 놓고 지속적인 긴장과 갈등을 유발했고 결국은 잃어버린 10년을 지나면서 지난 해 2002년 북미는 농축 우라늄 핵프로그램의 부각으로 또다시 갈등국면으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결국 북한은 핵카드를 이용해서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받고 북미관계 정상화까지를 노리는 것인 반면 미국은 핵문제를 빌미로 여차하면 북한 정권의 교체까지 노려보겠다는 의도인 만큼 지금 북핵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상황임도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우리가 북핵문제를 푸는 기본원칙 역시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단순히 북한의 핵의도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제재와 압박 나아가 군사적 수단의 사용가능성까지를 활용해서 이를 관철시킬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북핵문제가 탈냉전기 동북아 신질서의 구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핵문제 해결을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comprehensive approach) 접근해야 한다.




이에 유의한다면 우리가 북핵문제의 해결원칙으로 견지해야 할 원칙은 첫째, 북한의 핵개발 능력과 의도의 확실한 포기를 이루어내야 한다. 북미관계 개선과 평화로운 동북아 신질서 형성을 위해서도 한반도의 안보우려사안이자 북미간 핵심적 쟁점인 핵문제는 당연히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전제로 해야 한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우리의 북핵해법 제일원칙임이 분명하다.




둘째, 북핵문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방식을 견지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삶의 터전을 영유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군사적 대응과 이로 인한 한반도 전쟁가능성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 전쟁불사의 강경대응은 북한의 핵을 포기하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한반도의 평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반쪽의 해법일 뿐이다.




셋째, 북핵문제는 반드시 그 해결을 통해 북미관계 정상화와 이를 통한 동북아 평화구조를 지향해야 한다. 물론 일각에서는 북한을 붕괴시키거나 정권교체를 통해서도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고(undesirable) 또한 가능하지 않다(impossible). 우리 정부가 북핵해법에서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대북 지원과 경제협력 및 북한의 국제사회 참여문제 등을 종합적인 로드맵으로 제시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원칙에서 비롯된다.




북핵문제 해결 3원칙 : 북한의 핵포기, 평화적 해결방식, 북미관계정상화에 의한 동북아 평화정착 지향




이러한 원칙을 전제할 때 지금 진행되고 있는 6자회담이 북핵문제의 원만한 해결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도 우리 정부는 긴밀한 한미공조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대북정책 기조가 이라크식이 아니라 '북한식'이라는 명확한 동의를 얻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의 기독교 근본주의가 여전히 북한붕괴와 김정일 정권교체의 유혹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6자회담의 개최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의 의미 있는 진전은 힘들 것이다.




북한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점이 바로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받는 문제인 만큼 적어도 미국은 북한의 핵포기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도 체제붕괴와 정권교체의 유혹을 하루빨리 떨쳐내야 한다. 그렇게 시작된 북미대화만이 사실상 핵문제 해결을 넘어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정착 나아가 동북아 평화구조의 실타래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6자회담이 희망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바라고 또 그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북한과 미국의 극한적인 대결의 경우 우리 정부는 한반도의 전쟁까지를 불사하는 '추가적 조치'에 합의하거나 북한정권의 교체를 기도하는 미국의 전략에 동의하기보다는 전쟁반대와 평화적 해결 고수라는 한국판 '벼랑끝' 전술을 만들어 배수진을 쳐서라도 이를 막아야 한다. 즉 어떤 경우에도 노무현 정부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고수할 것임을 명확히 천명해야 한다.




둘째, 한국정부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한미공조와 함께 남북관계 유지를 일관되게 병행 추진해야 한다. 핵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이 대북 강경정책을 완화해야 하고 동시에 북한은 핵포기의 명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미국과 북한이 이같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한미공조와 남북채널을 통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한미공조 없이 미국의 태도변화를 이끌어 내기 힘들 듯이 역으로 남북관계 진전 없이 북한의 입장변화는 매우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셋째, 한국정부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대외적 주도권을 확보해야 하며 다만 상황과 현실에 따라 유연하고 실용적인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시기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대북정책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주도권이 과거에 비해 성장 강화되었던 데서 가능했던 것이다.




예컨대 1999년 금창리 의혹 해결, 1999년 페리 보고서의 햇볕정책 수용, 1999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유예 합의, 2000년 정상회담 개최, 2002년 악의 축 사태시 한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 긴장완화, 2002년 북핵사태시 평화적 해결원칙 주도 등 김대중 정부 동안 한반도 문제는 우리의 주도에 의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처리되고 해결되었다.




정부는 한미간의 신뢰와 공조를 바탕으로 우리의 입장(3원칙)을 관철시킬 수 있어야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과 대북 화해협력의 지속 원칙이 흔들릴 경우 그만큼 우리 정부의 주도권 확보는 난망하게 된다. 다만 원칙의 견지가 단순히 발언과 주장만으로 미국, 일본 등을 압박하는 것이어서는 안되며 한미간 신뢰와 공조라는 실용적 외교력을 발휘하면서 우리 정부의 원칙이 관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강경한 주장만으로 한미신뢰를 불안케 하고 그 결과 급기야는 한미공조 회복을 위해 원칙마저 양보하는 좌충우돌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6자회담 개최로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의 가능성이 조심스레 전망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그리 녹록한 편이 아니다. 여전히 한편에서는 대북 압박과 대화결렬의 가능성이,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협상과 대화성공의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6자회담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지금 노무현 정부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 한미공조와 남북관계 병행 원칙,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 확보 원칙 등을 견지하면서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찾아가는 일이 더욱 필요하다.




김근식/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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