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까지 동반된 날치기 예산 통과가 2010년 정기국회의 송년회가 됐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돼 온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이번에는 유독 집권여당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와 부실한 예산 내용으로 예산국회 자체에 대한 불신까지 낳고 있다. 날치기 와중에도 국가 예산은 정부여당 실세들의 지역 이권을 챙기는‘구유통(소․돼지의 여물통/pork barrel)’이 됐다. 민주당과 야당은 민주주의의 유린, 사실상의 독재 권력이라고 정부여당을 성토하며 한파 속 장외투쟁에 나서고 있다.

그 동안 반복돼 온 날치기 국회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흑백대결의 한국정치 현상이자, 그 산물이다. 흑백대결의 구조는 말 그대로 타협과 양보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흔히 민주주의의 원칙처럼 말해지는 다수결도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흑백대결 구조에서는 다수의 횡포에 불과하다. 현재의 흑백대결 구조를 유지한 채 한국의 의회민주주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흑백대결의 정치 중심에 대통령, 또는 대통령 권력이 있었다. 여당이 대통령에 종속돼 있는 상황에서 국회에서의 갈등은 대통령 권력을 둘러싼 갈등의 대리전에 다름 아니었다. 대통령은 갈등의 축이면서, 동시에 국정을 중재하고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 리더십 스타일에 따라 여야 관계와 의회정치는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 들어 심화된 국회의 물리적 충돌은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운영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소수파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야당의 비타협적 반대에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야의 충돌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의 지도부는 이번 날치기도 야당의 발목잡기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야당의 무조건적 반대가 뻔한 상황에서 예산 의결의 지체를 막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잘한 일로 옹호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비판 여론을 감지한 한나라당 스스로의 내홍이 말해주듯, 정부여당의 책임이 크다.

당초 4대강 예산이 관건이었던 이번 예산안 날치기는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국정운영, 성과 위주의 반정치적 리더십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서 야당과의 소통 노력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여야를 초월해 공동 대처해야 하는 연평도 포격 사태와 같은 국가 안보 위급 상황을 두고도 야당의 협력을 끌어내려고 하는 노력조차 없었다. 증폭된 여·야간의 극한 대립은 야당을 중요한 국정 파트너로 보지 않는 안하무인의 비민주적 국정운영 방식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

민주정치는 국민과 함께, 또 상대세력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과정으로서 정치를 무시하는 성과 위주의 기업가적 리더십이 4대강 사업 추진 과정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야당은 물론 4대 종단, 무엇보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조정해 추진하기를 바라고 있음에도 그대로 밀어붙였다. 사업 추진 초반에는 집권 여당 인사들의 대다수도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는데도 그냥 밀어 붙였다. 해놓고 보면 그때 잘했다고 평가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갑문을 완성해 물이 차 출렁거리면 그땐 국민들이 감탄할 거라는 소리까지 측근들 입에서 나오고 있다.

이번 예산안 날치기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 밀어붙이기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도 해석된다. 정국 경색을 감수하고도 밀어붙이기 위해 몇 개의 법안들도 한꺼번에 직권 상정해 통과 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국내정치, 대북관계 모두 일방적인 강경책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 그 대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점에서 또 공통적이다. 알다시피 미디어법 밀어붙여 통과시켰지만, 의결정족수 부족한 상태에서 가결하고 대리 투표 논란까지 불러와 헌재로부터 위법한 절차라는 결정을 받았다. 이번 날치기 통과도 그렇다. 완력을 동원해 통과시켰지만, 예산 내용은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정기국회 임하면서 친서민 국회라고 선언하더니 실제 서민예산 실종은 방치했다. 이 와중에 실세들은 지역구 예산을 증액하거나 신설해 챙겼다. 안보를 강조하며 대북 억압 전략을 폈지만, 천안함, 연평도 사태에서 보듯이 갈등 관리 대책이나 안보 대응 전략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안하무인 국정운영은 도를 넘고 있다. 형님 예산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포항 동지상고 동문 후배를 또 육군참모총장에 임명했다. 육·해·공군 세 명의 참모총장 모두 영남 출신이고, 그 중 2명은 포항 출신이다. 설령 개인적으로는 적임자라도 국가적 차원에서는 피해야 하는 건 상식이다. 군부 독재 시대에나 이런 인사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날치기로 증폭된 여야 대립의 정치가 당분간은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야당에서는 이번 날치기가 MB 정권의 몰락을 자초한 것이라고 말한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MB정권이라는 저수지에 쥐구멍이 뚫렸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레임덕을 감안해 차기 정권을 존중하거나 국민 여론에 순응하는 자세를 쉽게 보일 것 같지 않다. 이대로 가다간 차기 총선도 대선도 없다는 의견이 한나라당 내에서 나오고 있지만, 날치기를 정당화하는 청와대와 당 지도부가 정부여당 기류를 주도하고 있다. 정권에서 배제된 소수 야당이 국민여론에서는 다수 세력이 된다면 모르겠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또한 불투명하다. 흑백대결의 정치 구조에 이명박 정부의 일방주의까지 가세해 한국의 의회민주주의가 더욱 구겨진 가운데, 여권 실세들의 ‘구유통 정치’가 기승을 부린 2010년의 송년 정국이다.

김만흠(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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