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의식한 비민주적인 법안들 철회해야

한나라당 정치관계법 정비특별위원회가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관계법들에 대한 제·개정안을 내놓았다. 그 내용을 보면 2002년 대선에서 역전패당한 전철을 밟지않겠다는 의지가 불타고 있다. 그러나 그 의지가 너무 앞선 나머지, 법으로서의 기본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한나라당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단합대회, 야유회 또는 촛불시위 기타의 집회를 개최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이라는 기존 조항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이란 표현으로 바뀌면서 그 대상도 확대된 것이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있었던 두 여중생의 사망사건 촛불집회가 당시 한나라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판단의 결과로 보인다.

주관적이고 모호한 조항들

그러나 아무리 선거기간이라 하더라도 헌법에 보장된 집회 시위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금지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이라는 규정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모호한 내용이다. 해석에 따라서는 거의 모든 집회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허위사실이 대통령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줬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당선 무효로 하고 재선거를 치른다”는 조항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줬다고 인정하는 문제 역시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의 것이다. 도대체 '중대한' 영향을 주었는지, '사소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누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자칫 선거결과 승복여부를 둘러싼 갈등과 혼란의 장기화만 초래할 위험이 크다.

아마도 2002년 대선에서 김대업씨의 등장과 '병풍'으로 입었던 피해를 되풀이 하지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내용일 것이다. 그래서 "후보자에 관한 사항을 연설·방송·신문·정보통신망을 통해 공표할 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72시간 이내에 밝혀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후보자의 신상에 관한 의혹제기는 확증을 갖고 있지 않는한,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물론 '아니면 말고' 식의 무분별한 의혹공세도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보에 대한 검증 자체를 막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낳는다.

'분명한 증거가 없는 한’ 언론의 보도금지 가처분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가 심각하게 제약받을 수 있는 조항이다. 그렇게 되면 분명한 증거가 없는한 언론을 통한 의혹보도와 추적도 불가능해진다.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시키는 조항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 할만하다. '선거일 기준 3년 이내에 국가로부터 보조금 또는 지원금을 받은 시민단체'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시민단체가 선거운동을 하는 것에 대한 타당성은 시민단체들 차원에서 신중히 판단되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를 법으로 막아놓는 것은 위헌적 발상이다. 시민단체가 국가의 지원금을 받는다고 해서 정부의 홍위병처럼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가 하면 심지어‘후보 단일화’ 방송토론 등을 금지하고 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정몽준 후보간에 있었던 후보단일화 토론같은 것을 막자는 취지이다. 범여권이 시도할 수 있는 막판 단일화의 효과를 차단하기 위한 내용으로 풀이된다.

목적의식만 앞선 비민주적 발상

한나라당 정치관계법특위가 발표한 법안 내용을 보면 마치 '2002년 대선 반성문'을 읽는 느낌이다. 당시 한나라당이 왜 패배했는지를 일일이 복기하며, 다시는 그런 상황이 없도록 하려는 목적의식이 앞서고 있다. 그같이 목적의식이 앞서다보니, 법이 갖추어야 할 기본요건도 무시되고, 비민주적인 발상이 바탕에 깔리는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갖고 있는 피해의식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우려하는 문제들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적지않다. 특히 흑색선전을 통해 허위사실들이 유포되어 선거전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막아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현행법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처벌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굳이 민주주의의 틀을 흔드는 입법을 하지 않더라도 법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해서 선거를 입막고, 귀막고, 계엄령같은 분위기 속에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느 정도의 부작용과 혼란이 빚어진다 해도 민주주의의 비용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결국 최종적인 판단은 국민들이 내리게 되어 있다. 법으로 모든 것을 다 막으려 하기보다는, 새로운 모습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는데 힘을 기울이는 모습이 아쉽다. 이번에 내놓은 법안들은 한나라당의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 차원의 근본적인 재검토와 철회가 필요해 보인다. 빈대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울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