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임시국회가 최악의 파국을 간신히 모면한 채 막을 내렸다. 그러나 여야간 격돌을 가져온 4대법안 가운데 언론관계법만 처리됐고, 나머지 3개 법안에 대한 논란은 다시 올해로 이월됐다. 2월 임시국회까지 이들 법안을 둘러싼 여야간의 대립이 재연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4대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대결 과정은 국민에게 참담한 실망을 안겨줬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공히 정치력 부재 현상을 심각하게 드러냈다. 정치적 현안에 대한 여야간 입장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그것을 조정하고 해결할 정치력이 두 당에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여야 협상의 막바지 국면에서 열린우리당이 보여준 모습은 집권당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다. 4대법안이 갖는 역사적·사회적 의미야 공감할 수 있지만, 나라를 책임진 집권여당에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4대법안을 둘러싼 갈등을 가급적 빨리 매듭 짓고, 민생·경제 살리기, 북핵 문제와 같은 긴급한 과제에 눈을 돌릴 책무가 있다. 명색이 집권당이라면 지금 국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과 고통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이제는 정치 안정을 도모하는 여당의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4대법안의 연내 처리를 위해서라면 파국도 감수할 수 있다는 식의 밀어붙이기를 선택했다. 여야를 대타협 직전까지 끌고 갔던 잠정합의안은 여당의 손에 의해 깨졌다.




그렇게 해서 4대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연장될수록 집권세력의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듯 했다. 여당 내 강경파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당론에 대한 절충을 거부했고 천정배 원내대표는 결렬을 선택했다.




4대법안을 통과시킬 아무런 전략도 대책도 없이 밀어붙인 강경책이 가져온 소득은 정작 아무것도 없었다. 열린우리당은 4대법안이라는 나무에만 매달리다가, 정작 민심이라는 숲을 못보는 우를 범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안겨준 실망의 깊이도 전혀 다르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4대법안 논란과정 내내 무조건적인 반대의 목소리만 냈지, 협상과 절충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자신들과 주장이 다르다고 해서 4대법안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전면적인 거부에 나선 것은,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집권여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였다. 자신들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국회에 제출된 법안의 정상적인 처리를 가로막고 나설 권리가 한나라당에는 없지 않은가.




한나라당이 그나마 협상 테이블로 나온 것은 막바지 과정에서다. 그러나 박근혜 대표의 태도는 완강했다. 협상 당사자가 당내에서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니, 그 협상이 제대로 진척될 리가 없었다. 협상장에는 자기들의 당론이 무엇인가를 새삼 확인해 주기 위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양보하면 자기가 양보할 것은 무엇인가를 말해주기 위해 나오는 것이다.




이번 과정에서 박근혜 대표는 당내 강경파와 공동운명체가 되어 움직이다가, 결국 정치력의 한계를 보여주고 말았다. 그나마 막바지 협상에 탄력이 붙은 것은 '박심(朴心)'과는 다르게 움직인 김덕룡 원내대표의 고군분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말국회가 끝난 뒤 여야가 후폭풍에 휩싸이고 있다. 그런데 강경론자가 협상론자를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한다. 파국을 자초한 사람들이 파국을 막으려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전도된 상황이다. 여야가 당내 강경파에 의해 휘둘리는 현상이 계속된다면 올해의 정국 전망도 매우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의 정치구도에서 여야 어느 한쪽이 자신의 뜻을 100% 달성해 완승을 거두기는 어렵다. 정치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선에서의 절충과 타협은 불가피하다. 그것을 백안시하는 사람들은 굳이 정치를 할 이유가 없다. 정치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 정치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결국 고생하는 것은 국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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