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배를 타왔던 노 대통령과 '친노'(親盧)그룹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그 엇박자는 4대법안에 대한 처리 문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얼마전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4대법안 문제에 대해, "세상사가 자기 마음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너무 무리하거나 조급하게 굴지 말고 차근차근 풀어나가자"고 주문했다. 여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연내 강행처리론과는 거리가 먼 생각이었다.




묘한 것은 열린우리당내에서 '친노'성향으로 분류되었던 강경파 의원들, 그리고 노사모·국민의 힘·라디오 21을 비롯한 여당 외곽의 친노그룹의 반응들이었다. 이들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원론적인 얘기일 뿐이라며 애써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이후 이들의 '4대법안 연내 강행처리론'은 더욱 목소리가 높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노 대통령은 '당이 잘하고 있다"며 4인회담을 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격려하였지만, 친노그룹은 4자회담에 매달리는 여당 지도부를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4대법안을 차근차근히 풀어나가자고 했지만, 4대법안 연내처리를 요구하는 친노그룹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모두가 정치적 동지관계로 인식했던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 사이에 노선의 차이가 생겨난 것일까? 지금으로서는 그같은 조짐을 읽을 수 있다. 단지 4대법안 문제만이 아니다.




내년도 국정운영 기조와 관련해서도 상당한 인식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경제이며 내년에 경제회생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청와대측에서는 내년의 국정운영 기조를 민생경제 회복과 사회적 양극화 해소, 북핵해결을 통한 평화번영, 국민통합으로 요약하고 있다. 이러한 과제의 달성을 위해서는 정치적으로는 대화와 타협, 사회적으로는 관용과 화해의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청와대의 시각이다.




그러나 여당 안팎의 친노그룹이 보여주고 있는 4대법안 문제에 대한 인식은 역시 이같은 기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야당과의 대결이 따르더라도 4대법안은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수구세력'을 향한 관용과 화해는 고려사항이 아닌 분위기이다.




국정운영에서의 안정을 의식하는 노 대통령쪽의 분위기와는 달리, 친노그룹은 개혁을 위한 결전의 분위기이다. 이러다가는 이들 사이에서 노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최근 공개된 여론조사 결과는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만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이 38%로까지 상승하였다는 것이다. 한달전에 비하면 6%, 두달전에 비하면 10% 상승한 수치이다. 이 정도면 노 대통령 지지율이 일단 회복과 상승추세에 들어갔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청와대측에서는 이같은 지지율 상승의 원인으로 앞서 언급한 새해 국정운영 기조에 대한 호응을 우선적으로 꼽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경제문제에 대한 불만으로 이탈했던 40대 세대의 지지율이 뚜렷이 상승한 점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결국 노 대통령이 설정하고 있는 새해 국정운영 기조가 민심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노 대통령은 민심을 수용했고 변화를 선택했다. 그러나 문제는 노 대통령의 핵심지지세력은 변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분명한 것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고서는 어떤 개혁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지지율의 추락속에서 존립 자체가 어려운 정권이 어떻게 국민의 동의를 얻으며 개혁을 추진해나갈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노 대통령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는 민심을 다시 얻어 정권을 안정화시키는 일이다. 개혁도 정권이 제대로 유지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지, '식물정권' 소리를 들으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지켜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의 엇박자가 당혹스럽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내용을 따지고 들면, 친노그룹의 항의와 비난은 '이부영과 천정배'가 아닌 '노무현'을 향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친노그룹도 노 대통령의 변화가 갖는 의미를 읽어야 할 것 같다. 그 변화를 단지 실용주의라는 개념으로만 읽는다면 좁은 해석이다. 중요한 것은 정권을 잡은 세력이 민심을 겸허히 수용한다는 의미이다.




근래 들어 노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대통령으로서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지율의 상승현상은 그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같은 현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노그룹은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러다가 어제의 동지가, 내일은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지않을지, 그것이 걱정이다. 친노그룹도 이제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벗어나 민심의 바다로 나갈 필요가 있다. 여론의 시장에서 민심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읽어야 한다.




민심의 소재를 제대로 읽을 것. 그것이 정치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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