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열린우리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4대법안의 연내처리를 공언해왔지만, 이제 시간은 얼마 남지않았고 한나라당의 반대는 여전히 완강하다. 그렇다고 한나라당과의 실력저지를 뚫고 4대법안을 통과시키려니, 새해 예산안도 걱정이고 무엇보다 여론이 어디로 흐를지 두렵다.




지금 열린우리당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가장 상징적 문제가 되어버린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여론의 호응이 여전히 낮다는 사실이다. 먹고살기 어려운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국보법 폐지가 아니라 경제를 챙기라는 것이 되고 있다. 인정하고 싶든 아니든, 그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4대법안을 연내에 처리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겨워 보인다. 4대법안은 고사하고, 지금대로 가면 한 개의 법안도 처리못하게 될지 모른다. 지금 시간은 여당의 편이 아닌 것 같다. 한 개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한채 올해를 넘기게 되면, 열린우리당은 자중지란속에서 스스로 주저앉게될지도 모른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한때 국보법 폐지는 유예하는 대신, 나머지 3개법안은 한나라당과의 협상을 거쳐 표결처리하는 절충안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보법 폐지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당내 비판, 국보법 폐지를 유예해도 한나라당이 나머지 3개법안의 표결처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결국 '4대입법 연내처리'라는 입장을 고수하게 되었다.




국보법 폐지 유예에 대한 당안팎의 반발은 지도부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당장 노사모와 국민의 힘이 주축이 된 국민참여연대는 국보법 연내처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여당 지도부와 '안개모' 의원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국민이 열린우리당에 쥐어준 과반수의 힘을 이용, 4대 개혁입법을 비롯한 각종 개혁입법들을 적극적으로 통과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도 싸워보지도 않고 포기하느냐는 반발이 적지않다.




그러나 문제는 막상 국보법 폐지안을 통과시킬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다는 점이다. 이미 몸을 던져 막겠다고 공언한 한나라당은 국보법 폐지에 대해서는 몸싸움을 통해서라도 막으려 할 것이다. 과거처럼 '날치기' 처리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보법 폐지안을 통과시키려면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같은 장면은, 매우 역설적이지만, '탄핵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국보법 폐지의 정당성에 상관없이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경위들에 의해 제지당하는 상황에서 표결처리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이 장면은 그렇지 않아도 국보법 폐지에 소극적인 여론을 어디로 향하게 할 지 예측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유시민 의원조차 '후폭풍'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지금의 환경에서 여당이 몸싸움을 뚫고 국보법 폐지안을 강행처리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자칫 국보법을 폐지하려다 여당이 바닥으로 추락할지 모르는 '폭탄'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국보법 폐지의 역사적 당위성을 신뢰하느냐 여부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며, 상황판단의 문제이다.




국보법 폐지를 간절히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국보법 폐지안의 연내처리는 물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객관적인 환경 자체가 그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차라리 전원위원회를 소집해서 자유투표를 통해 결론을 내자는 주장도 일리는 있지만, 이 역시 국보법 폐지를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동의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지금 열린우리당 안팎에서 국보법 폐지안 처리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논란은 다분히 명분적인 성격이 강해보인다.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막상 결과가 다르게 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허해 보이기도 한다.




국보법 폐지가 어려워질 경우 열린우리당은 내부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도 있다. 책임의 소재에 대한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전반적인 환경을 도외시한 협소한 책임론 공방이 될지 모른다.




국보법폐지를 먼저 꺼낸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었지만, 자칫하면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갈지 모르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정당한 일을 하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아무리 옳은 일이어도 국민의 지지를 얻지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지금 열린우리당에게 4대법안 통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 일이다. 설혹 4대법안 모두를 통과시킨다해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못하게 된다면, 작은 것을 얻고 큰 것은 잃는 결과가 될 지도 모른다.




지금 열린우리당에게는 4대법안 문제를 넘어선, 보다 크고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어떻게 하다보니, 4대법안을 놓고 한나라당이 아닌 열린우리당이 시험대에 서게된 형국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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