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신·구주류가 신당문제를 놓고 대화를 재개했다고 한다. 정대철 대표의 정치자금 수수를 둘러싼 파문으로 분당 위기가 커져서인지 양측간의 대화는 이전과는 달리 진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양측은 서로간의 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서로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신당창당의 접점이 찾아질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집권당의 내부 갈등 해소를 위한 이같은 대화모습이 그리 반갑게 비쳐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개월간 같은 문제를 놓고 씨름을 거듭하고 있는데 따른 식상함만이 그 이유는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 민주당 신·구주류간 협상의 본질이 민주당이라는 기득권 유지를 통한 담합의 논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민주당이 분당되어 지지표가 분열되면 내년 총선에서 패배할지 모르니, 어떻게든 분당은 막고 민주당을 그대로 껴안고 가는 신당을 하자는 것이다. 과거 새천년민주당식 신당창당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공천방식에 대한 이견은 존재하고 있지만, 민주당내에서는 이같은 통합신당론이 일단 숫적으로 다수를 점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도 민주당내 중도성향 의원 53명의 이름으로 '분열없는 통합신당'을 추진하겠다는 성명이 발표되었다. 여기에는 김근태, 조순형, 추미애 의원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분열없는 통합신당'이라! 나는 이들이 내건 기치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부패와 구태정치에 물들은 구정치세력과 분열하는 것이 나쁜 일인가. 그러면 구정치세력과 서로 좋은게 좋은 것이라며 담합하여 또 다시 한솥밥을 먹는 것이 옳은 일인가. 통합신당. 결국 신주류와 구주류가 손잡고 내년 총선에서 '호남 고정표'도 놓치지 말고 신당효과도 거두자, 꿩먹고 알먹자, 뭐 그런거 아니겠는가.




작금의 신당논의가 이같이 내년 총선을 앞둔 민주당의 생존차원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애당초 우리같은 사람들이 관심가질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신당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은 그동안의 지역주의 정당구도를 해체시키고 이제는 정책중심의 정당구도로 재편하는 정치사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당논의를 보면 철저히 민주당의 정파적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변질되고 말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민주당에다가 정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적당히 영입하여 '제2의 새천년민주당'을 만드는 일에 우리가 박수치고 말고 할 일은 애당초 없는 셈이다.




내가 놀라고 있는 것은 '분열없는 통합신당'을 주창하는 의원들이 갖고 있는 '빛나는' 자부심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선언했다.




"민주주의와 수평적 정권교체, 남북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으로서 빛나는 민주당의 전통과 역사를 계승해야 한다"


"개혁세력의 총본산이며 평화통일세력의 주요결집체인 민주당과 지지세력이 분열없이 신당에 참여하도록 통합신당을 이룩해야 한다"




민주당의 전통과 역사는 정말 빛나고 있는가? 민주당은 개혁세력의 총본산인가? 민주당은 분열없이 신당에 참여하는게 과연 옳은 것인가?




민주당이 남겼던 공적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민주당이 남긴 공과(功過)는 국민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평가하자는 것이다. 민주당은 과거 민주화를 위해 의미있는 역할을 해왔음을 인정할 수 있다. 민주화의 결정적인 고비때마다 변신을 거듭하여 흐름을 역류시키곤 했던 과오들을 잊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큰 흐름에서 보면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민주당 정권이 햇볕정책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지켜왔음도 높이 평가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이 DJP연합으로 개혁을 사실상 포기했고, 집권세력 내부의 부패비리로 인해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음도 엄연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민주당 정권은 3김정치 시대의 낡은 정치질서와 행태를 답습하는 한계를 드러내었다. 그런 민주당이 과연 국민에게 '개혁세력의 총본산'이라고 떳떳히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한마디로 계승할 것은 계승해야겠지만, 결별할 것과는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 민주당의 전통과 역사가 지금 모든 것을 껴안고 가야할 정도로 '빛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러한 분별없이 민주당을 그대로 껴안고 가야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논리속에 숨어있는 정략적 계산에 고개를 젓게된다.




우리가 원했던 신당은 민주당을 다시 살려주자는 그런 신당이 아니었다. 결론은 분명하다. 민주당이 깨져야 이 나라의 정치가 살 수 있다. 민주당이 그대로 있으면 한나라당이 그대로 있게 되고 왜곡된 정당구도가 그대로 있게 된다. 민주당이 깨져야 변화가 시작되고 정치판의 그림이 새롭게 그려질 수가 있다.




자신들의 기득권은 아무 것도 버리려하지 않고 만들겠다는 민주당의 신당. 또 다시 '호남 고정표'에 의존하여 쉽게 당선되겠다는 발상을 버리지 않는한, 신당간판을 백번 내걸어도 새로워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국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신당을 새로운 정당으로 봐줄리 만무하다. 민주당의 '빛나는 전통과 역사'를 계승한 정당이 과연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아직도 기대하는가. 그것이 착각임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않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열없는 통합신당'이 아니라 다름아닌 '민주당의 분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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