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헌법을 지킬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월 1일 현행헌법 개정절차에 착수할 것을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게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을 계기로, 그동안 수면아래에 있던 개헌 논의가 이른바 친이계 의원들 중심으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1. 개헌필요성의 논거

이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의 개헌필요성의 논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대통령에게 집중된 제왕적 권력을 분산, 완화할 필요가 있다.
② 국회가 정상 운영되지 않고, 여야격돌의 파행사태가 항시적으로 지속되어 정치적 혼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③ 지역주의정당의 폐해를 혁파하기 위한 선거구 획정과 행정구역 개편의 필요가 있다.
④ 양성평등, 기본권조항, 기후변화협약에 관한 조항을 보완하고 21세기 스마트시대에 맞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
⑤ 공정 청렴사회 건설을 위한 시대적 요구를 헌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2. 위 논거에 대한 판단

①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현행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엄격한 삼권분립, 국회의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비판, 견제기능에 관한 조항을 철저히 이행하지 않음으로서 결과한 것인데, 이를 현행헌법 탓에 돌리는 것은 천만부당하다.
헌법 46조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자율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정당의 국회의원후보 공천은 반드시 민주적 절차에 따른 상향식 방법으로 결정하도록 강제하고 있다(헌법 제8조). 상향식 공천으로 당선된 국회의원이어야 자율권행사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3년 전 18대 국회의원 후보공천은 이대통령이 직간접으로 개입하여 이른바 친박계 후보들을 대량으로 배제하였고(친박계에서는 학살이라고 주장), 친이계 중심의 공천을 자행한바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자율권을 행사하여 대통령과 행정부를 제대로 비판, 견제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면목구어일 따름이다. 국회의원들로부터 제대로 비판, 견제 받지 않는 대통령권력은 제왕적 권력이 될 수밖에 없고, 국회는 행정부의 종속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국민은 지금 목격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킨 빌미를 스스로 만들어놓고 이를 완화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② 국회가 정상 운영되지 않고, 여야격돌 파행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자율권행사가 원천 거세된 국회의원들이 대통령과 정당의 똘마니 패거리로 전락한대서 비롯된 것이다. 자율권보장을 위한 공천제도 개혁 등의 결단으로 국회정상화는 가능하다.
③ 선거구 획정과 행정구역 개편은 헌법사항이 아닌 공직선거법 등 하위법률사항이다. 국민적 합의를 거쳐 법률을 개정하거나 제정하면 된다.
④ 현행헌법은 평등권 등 기본권조항을 완벽하게 보장하고 있고, 기후변화협약과 같은 국제조약도 전향적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21세기 스마트시대에도 헌법운용에 아무런 장애가 없도록 체재와 내용이 갖추어져 있다.
⑤ 공정 청렴사회건설과 관련하여 현행 헌법은 국회의원과 공직자의 청렴의무의 준수와 깨끗한 국가건설에 관한 전향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
도대체 헌법에 어떤 조항이 없어서 청렴 공정사회가 이루어지지 않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3. 대통령중임제와 내각제의 유혹

① 개헌론자들은 미국에서 성공하고 있는 대통령의 4년 임기에 1회 중임을 허용하는 제도가 대통령권력 집중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현행 단임제 아래서는 대통령의 치적에 대한 국민적 평가기회가 없으므로 중임을 허용하여 심판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4년 중임제를 채택했을 경우 첫 임기 4년에 관한 심판의 기회는 있겠지만, 중임에 성공했을 경우 후반기 4년의 치적에 대한 심판의 기회는 언제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이론상 그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다시 3선을 허용하는 개헌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단임제의 폐단을 중임제로 극복하려는 것은 대단히 짧은 생각이다. 오늘의 정치현실에서 중임제가 되면 대통령당선자를 배출한 정당이 당선확정순간부터 중임까지의 8년을 내다보고 권력남용, 정경유착을 자행하여 정치발전을 후퇴시킬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② 내각제는 정당간의 권력이동이 핵심이다. 진성당원이 사실상 전무하고 지역주의의 기반위에서 서 있는 선거전문 정당들의 정권 쟁탈노름판이 되고 말 것이다. 권력을 쥔 쪽은 장관 등 요직을 독점하게 되며, 지역주의는 더욱 심화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탕평인사 관행마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남북분단 상황에서 정권쟁탈유지를 위한 추악한 소용돌이가 국가의 근본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이원집정부제도 이와 유사한 위험이 있다.

대통령임기 중임제와 내각제는 현 단계에서 절대 고려될 수 없다.

4. 이대통령은 헌법수호의 최고책임자로서 헌법상 허용된 대통령의 권한으로 정치개혁을 결단할 때이다. 헌법 66조는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수호책임이란 무엇인가?

헌법에서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행사하여 그 가치를 보전하는 것이다. 헌법 8조는 대통령에게 정당의 국회의원후보 과정이 비민주적이거나 정당이 국회의원에 대한 자율권행사를 침해한 사실 등이 발견되었을 때는 그 정당의 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18대 국회의원 후보의 공천이 헌법 8조에 위반되는 비민주적 절차로 결정되었음이 명백하고, 정당이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개별국회의원에 대한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 상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도, 대통령은 정당해산제소권한을 행사한 일이 단 한 번도 없다(87년 이후 역대대통령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대통령 취임 후 역대 어떤 경우보다 정당해산 사유가 현저하다.) 대통령은 정당해산 제소권을 행사하기 전 단계에서 국회법, 공직선거법, 정당법의 개정을 국회의원들에게 촉구하고, 불응시에는 정부가 개정안을 만들어서 국회에 제출하여 이의 통과를 설득해야 한다.

그 어떤 노력도 이대통령은 한 바가 없다.

5. 현행헌법의 최대맹점, 위험요소

헌법 68조에는 대통령이 궐위 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 판결 등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5년 임기의 대통령을 다시 뽑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고시에 잔여기간 승계자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극단적으로는 60일마다 선거를 치러야 한다.

남북분단현실에서 대단히 불안정,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 유고시의 잔임 기간 승계 규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가령, 부통령제 신설 등이다. 그러나 이 조항을 보완하기 위하여 지금 ‘원포인트 개헌’할 때는 아니라고 본다.

6. 결론

헌법은 활자로 표현된 문서이다.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운용의 책임을 진 헌법상의 각 기관들이다. 지금은 현행헌법을 대통령을 비롯한 각 기관이 철저히 준수, 실천해 전력을 다해야 할 때이다. 개헌논의는 국력낭비, 혼란을 초래할 따름이다.

2011. 2. 7
박찬종 (올바른사람들 대표/폴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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