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안정법은 대학을 병영(兵營)화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입법을 포기하시오.”-김수환 추기경 1986년 8월

전두환 정권은 1986년 9월, 대학교 2학기 개강을 앞두고 학내 반정부 투쟁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유례없는 초강경 대책을 담은 학원안정법 제정을 서둘렀다. 학원 내에 경찰은 물론 군대까지도 투입하여 대통령 직선제 개헌, 정권퇴진 등 반정부 활동을 일체 봉쇄하려는 내용들이었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총재 이민우, 고문 김영삼, 김대중)은 입법반대 입장을 대변인 성명으로 발표하였다.

8월 13일 신민당은 정무회의에서 학원안정법 반대 투쟁을 결의하였다. 회의 직후 당시 정무위원 겸 인권옹호위원장이었던 나 박찬종은 이민우 총재에게 김수환 추기경과 회동할 시 김추기경이 분명히 학원안정법을 반대할 것이 예견되므로 두 사람이 공동기자회견 형식으로 동법 제정 포기를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되지 않겠냐고 건의하였다. 이총재는 나의 건의를 받아들여 나에게 “곧바로 김추기경에게 달려가서 회동일시를 조정해 오라”고 지시하였다.

그 길로 명동성당 추기경 집무실로 달려가니, 오전 11시가 채 안 됐다. 나는 추기경을 뵙고 학원안정법을 제정하려는 정부 의도와 입법취지를 설명하고 신민당은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는데, 추기경께서도 입법을 반대하신다면 이총재와 공동으로 입장을 표명해 달라는 방문 목적을 말씀드렸다.

추기경께서는 비서신부를 불러 그날과 다음날 일정을 묻고는 “내일 오후라야 시간이 나는데”라고 하기에 이 일은 한 시가 급하니 서둘러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추기경께서는 “그래, 그럼 서둘러야지”라고 하시며 그날 오후 3시로 예약돼 있던 면담일정을 취소하고 그 시간에 이총재를 모시고 오라고 조치했다. 그날 오후 3시 추기경 집무실에서 이총재와 김추기경의 면담이 이루어지고 나는 배석자로 참석했다. 두 사람은 학원안정법이 제정되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병영국가로 지탄받게 되고, 민주화 일정은 더욱 암담해진다는 데 의견의 완전한 일치를 보았다.

한 시간 면담 가운데 추기경과 이총재는 군사정권의 횡포와 포악성에 개탄을 금치 못했으며, 민주화를 위한 국민적 열망을 어떻게 성취시켜 갈 것인지에 대해서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 면담 후 두 사람은 주교관 현관에서 대기하던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해 주고 면담 요지는 별도로 내가 브리핑해 주었다. 정부가 제정하려던 학원안정법에 대해 ‘대학 병영화’를 지적한 것은 김추기경이 처음이었으며, 정부 의도를 병영화라는 말로 압축, 비판함으로써 정부가 더 이상 입법을 추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틀 후, 정부는 공식적으로 학원안정법 제정 포기를 표명하였다. 김추기경은 학원안정법 관련 야당 투쟁을 결정적으로 지지하였고, 그 추기경의 위광은 폭주하던 전두환 정권의 예봉을 꺾는 계기가 되었다.

학원안정법 파동은 김추기경이 나서서 가라앉힌 것이다. 나는 이 면담 사건으로 전두환 정권의 미움을 단단히 사게 되었다. 이총재와 김추기경의 면담을 카톨릭신자인 내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성사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는 조순형 의원 등과 그 전 해인 85년 9월 이른바 고대 앞 시위사건의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었고 변호사 업무도 정지된 상태였다. 안기부가 노골적으로 그 집시법위반 사건에 개입하여 법원을 압박해서 이 면담 사건 이후 재판 속도가 빨라졌다.

2009.2.21

박찬종(아우구스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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