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 어느 날 내가 방문연구원으로 있던 일본 도쿄의 게이오대 교수연구동 휴게실에서 나는 서울에서 보내 온 국내 신문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인사동정란에 김수환 추기경이 ‘강론집‘을 출판했다는 소개와 함께 서문 일부가 실려 있었다.

“나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약한 자들을 위한 삶을 살다 간 예수를 닮아 가야 한다고 결심하고 성직자의 길에 들어섰으나, 수십 년이 흐르는 사이 초심과는 달리 어느 사이 귀족이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고 부끄러워 한다”는 기사였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서울, 명동, 추기경 집무실, 김추기경과 사적으로 맺은 여러 인연들을 떠올렸고, 이래서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울림이 뇌리를 스쳤다.

해외 시각으로 한국경제를 살피고자 게이오대학에서 1년 2개월간 한일교류기금 장학금에 기대어 2권을 출간했던 그 시절, 추기경과 교분을 나누었던 추억들이 그의 책자 서문 위로 아득히 흘러갔다.

나는 추기경이 다녔던 상지대학(上智大學), ‘롯본기’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지날 때 추기경을 떠올리며 일요일마다 외국인을 위한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연 등을 편지지에 옮겼다.

“저는 평소 성경 읽기와 기도를 게을리 하는 불성실한 신자임을 스스로 인식하고, 내 탓이라는 자각 속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카톨릭 신앙에 대한 확신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추기경님께서 새로 출판하신 강론집 서문에서 예수의 삶을 닮아가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시고 어느 사이 귀족이 된 자신을 부끄러워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제가 그 미미한 신앙심마저 포기할 수 없게 하시는 어떤 마력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인편으로 보낸 내 편지에 김추기경은 손수 서명한 강론집을 보내 왔다.

“따뜻한 글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취지의 회신이었다.

김추기경은 거짓을 품지 않고 사시려고 노력하신 분임을, 또 자신의 고뇌를 스스럼없이 토로하는 분임을 가까이서 그렇게 지켜본 인연일까?

빈소가 차려진 첫날 새벽,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심경으로 명동성당 길을 어떻게 걸었는지도 몰랐다. ‘이 시대 그 누가 이 분만큼 정직하고 진솔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말하고 살다 갈 수 있을까?’ 영구 앞에 서는 순간, 그를 여읜 한 시대가 억제할 수 없는 서글픔으로 전신을 엄습했다.

이제 김추기경과의 일화를 우리 가슴에 아로새기는 일은 내게 남겨졌다. 우리공동체의 화합, 하나 될 그 날은 김추기경을 위해 드리는 기도이기도 하다.

내가 김추기경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려 펜을 드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함이다.

2009.2.21

박찬종(아우구스띠노)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