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종 게이오대방문연구원(2000)

반도체에 버금가게 우리 경제를 지탱해주는 유화 업종을 보자. 유화제품은 전 세계적으로 공급과잉 상태에 이른지 오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대, 삼성, SK, 대림, 한화, 대한유화들이 저마다 ‘우르르’ 뛰어들어 유화제품의 가격을 폭락시키고 10조를 넘는 빚을 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1999년 5월 H그룹은 1조 3천억 원을 쏟아 부으면서 충남 대산에서 국내 최대의 유화공장 준공식을 치렀다. 이 공장은 96년 에틸렌의 톤당 가격이 1천 달러로 반짝했을 때 짓기 시작한 것이었지만 한동안 300달러로 폭락하여 생산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기도 했다. 이러한 투자는 S그룹의 경우에도 중복돼 있다.

또 하나의 기능인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한참 잘 나가던 기아의 아벨라는 최근 한때 미국 포드사와 연간 8만5천대에 대해 확정가로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었다.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여 겉으로 보기엔 매우 화려해 보였다. 그러나 완성차 부가가지의 80%는 마쓰다를 비롯한 밀본 부품 업체들에게 바쳐야 했다. 엔화가 급등하자 아벨라는 포드사에 수출하면 할수록 손해만 누증시켰다. 포드사로부터 만든 단가는 정해져 있는데 부품 값이 오르니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장거리를 출퇴근하는 사람들 중에는 미국에서도 가장 비싼 벤츠가 BMW를 구입한다. 안전성과 승차감 그리고 특출한 오디오라는 장점은 제외하더라도 우선은 20만K를 뛰어도 부속품 하나 바꿀 필요가 없는 새차이기 때문이다. 이런 유럽 차들은 가속페달을 밟은 후 불과 20초안에 시속 200K에 도달하고 시속 200-300K의 속도로 24시간을 달려도 엔진이 과열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한국 차들은 10만K를 뛰기 이전에 고장 나는 것들이 많다. 10만K이전에 점화플러그는 3번, 타이밍벨트는 2번, 충격흡수기(쇼크업소바)도 2번 정도 교환해야 하며, 동시에 여러 가지 전자회로와 간단한 부품들이 고장을 일으킨다. 머플러는 불과 5만K만 넘으면 삭아 문들어 진다. 문을 올리고 내리는 전기장치도 10만K이내에 두 번 정도는 갈아야 한다. 이런 종류의 고장들은 유럽차의 경우 폐차시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핵심기술인 엔진과 트랜스미션은 아예 통 채로 수입하거나 100%의 부품을 수입해야 조립만 한다. 대우 레간자는 호주 홀덴사에서 직수입한 엔진을 달았고, 쌍용의 체어맨과 이스타나도 독일 벤츠사에서 직수입한 엔진과 트랜스머신을 달고 다닌다. 어떤 기업은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국산화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부품을 들여다가 조립만 한다는 뜻이다.

자동차에 고장이 잦거나 달릴 때 창에서 소음이 나는 등 사소한 결함이 발생해도 우리는 외국의 기술자들을 데려다 치료할 수밖에 없다. 차량 한 대당 평균 결함건수는 업체에 따라 다르긴 해도 국내에서 가장 앞서간다는 현대가 2건이고 다른 기업들은 3건 정도다. 이는 세계 자동차업체에서 꼴찌 급에 속한다.

자동차 회사의 생산성도 일본에 비하면 턱없이 떨어진다. 유럽의 자동차 산업 잡지인 “모터 비즈니스 인터내셔널”은 98년 말 자동차 업계의 생산성을 1인당 생상대수로 표시했다. 미쓰비시는 인단 147대, 혼다 및 토요다가 각각 123대, 대우 103대, 현대 93대, 기아 74대였다. 연간 수주 물량 150만대, 대수 물량 130만대를 기록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듯 취약하다. 선진국들이 자동차에 대한 환경규제를 매우 빠른 속도로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기업들은 전기 자동차 등 새로운 개념으로 파워를 얻는 미래 자동차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당장 잘 팔리고 있는 물건을 보아야 그때부터 부품을 들여다가 조립하기에 바쁘다.

하청 부품업체라 해봐야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중간 납품상에 불과하다. 대기업과 친족관계 등으로 납품권부터 따놓고 그 때부터 외국 부품을 들여다 마진을 남기고 납품하는 것이다. 이렇게 장님 제 닭 잡는 식의 관행을 가지고는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외국으로부터 밀려오는 기술점령군을 맞아 싸울 수 없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그래서 답답하다.

한국경제를 지탱해주고 있는 마지막 버팀목들을 시스템적으로 진단해 보면 이렇듯 허망한 것이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전자제품들도 다 이러한 취약점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잘 나간다는 휴대폰 역시 75%의 부가가치를 외국에 주고 있다. 박막액정표시장치(LCD)에 대해 우리는 삼성과 LG가 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공장설비의 100%가 일본제이고, 제품에 대해서도 생산가의 65%를 일본에 바치고 있다.

이렇듯 우리 경제는 시스템에 의해 주도되는 경제가 아니라 몇 개의 장치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경제를 진단하는 데 있어, 그 경제를 움직이는 시스템 자체의 건전성을 평가하려는 게 아니라 그 시스템이 발생시키는 무작위적인 수치들을 근거로 경제를 진단하고 있다. 경제를 시스템적으로 진단하지 않는 한 시스템적 대안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센 시스템적인 대안은 없고, 경제 수치를 보기 좋게 만들려는 무리수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PS. 연재를 마치며
7편까지 잃어주신 선배, 후배, 국민여러분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혹자는 2008년도에 왜 2000년 얘기를 꺼내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과거를 교훈삼아 현재와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000년에 비해 나아진 것이 거의 없는 2008년입니다.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는 대의명분이지만 현재는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많이 부족합니다. 수출을 많이 해도 부품 값과 기술료로, 벌어들이는 외화의 대부분을 써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저자 박찬종 약력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사법고시, 행정고시, 공인회계사 합격
전 한나라당 상임고문
1984 민정당사 점거 농성사건 대학생 변론
1985 미문화원 점거 농성사건 대학생 변론
1985 고대앞 시위사건으로 구속, 3년6월 변호사 업무정지
1987 아키노자유평화상 수상
1997 아시아경제연구원 이사장
2007 BBK사건 김경준 변론
2008 올바른사람들 공동대표, 인권변호사 jp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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