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게이오대학 방문연구원 박찬종

△ 한국 반도체산업은 껍데기만 남아있다

비메모리 칩은 다품종 소량 생산품이다. 고객의 요구에 맞춰 특정기능만 수행해주는 시스템 상품인 것이다. 그래서 지식 상품이고 그래서 부가가치가 높은 것이다.

1980년대에 미국의 3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모토롤라, 인텔, 몰스텍이 일본의 집중공격을 받아 폐쇄됐다. 일본의 대량생산 시스템이 미국을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1990년까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일본이 100% 가까이 장악하고 있었다.

일본이 이에 만족해하는 동안 미국은 인텔을 선도로 하여 비메모리 분야에 치중했다. 메모리 시장이 점점 더 축소돼 가고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하자 이를 간파한 일본인들 역시 미국을 따라 비메모리 분야로 뒤늦게 뛰어들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인들이 팽개친 메모리 분야를 한국이 이어받아 수조 원씩의 설비를 투자하여 대량으로 찍어내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메모리 상품은 어느 날 갑자기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 있다. 우리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카뷰레터라는 자동차 부품을 기억한다. 그러나 연료 분사 시스템이 등장하자마자 바로 그날부터 카뷰레터를 만들던 모든 시설들이 고철 신세가 됐다. 이러한 현상이 메모리 반도체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메모리 반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신소재를 개발했다고 발표하면 바로 그날부터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어려워질 것이다. 삼성은 지금 경기도 화성군 일대에 64메가 D램과 256메가 D램을 생산하기 위한 제 2의 반도체 단지를 건설하는데 20억 달러를 투입할 예정이지만 이 역시 메모리 D램의 호황여부에 그 운명이 달려있는데, 더러는 메모리칩의 호황이 앞으로 3년 정도면 끝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수학적 응용능력을 필수로 하는 비메모리 응용소프트웨어반도체 상품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은 요원한 바람일 뿐이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21세기에 한국을 먹여 살릴 산업을 정보, 통신, 소프트웨어에서 찾고 있다. 더러는 한국 사람들이 머리가 좋고 팀워크가 약해서 소프트웨어 산업에 적합하다고 말한다. 소프트웨어는 팀워크에 의해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 의하여 개발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엄청난 착오다. 개인이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는 상품가치가 별로 없다. 또한 응용능력 없는 우리나라의 교육수준을 가지고는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 산업이 양성되기 어렵다.

한국인들이 일부 수출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패키지는 겨우 게임용 소프트웨어와 같이 저부가가치 패키지일 뿐 만들기에는 교육수준과 인프라 모두에서 역부족이다. 1998년도 한국의 소프트웨어 수출액은 겨우 1천만 달러 정도인데 비해 수입액은 4억 달러가 넘었다.

우리가 지금 자랑하고 있는 CDMA휴대폰 전화기 역시 껍데기 산업의 상징이다. 핵심 소프트웨어에 대한 원천기술이 없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때마나 미국 퀄컴사에 의존한다. 배터리, 안테나 잭 키 버튼까지도 수입에 의존한다. 한국이 독자기술로 개발해서 수출까지 했다며 그토록 자랑하던 TDX 교환기도 국산화율은 가격으로 따져 25%수준이다. 수출 효자 상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CD롬 드라이브의 국산화율은 35%, 디지털tv는 30%, 하드디스크 11%. 레이저프린터 44%, 그리고 미래형 ATM교환기는 2%정도에 불과하다.

PS. 이 글은 필자가 2000년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방문연구원 활동 중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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