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박찬종 게이오대 방문연구원

지난번 처음엔 64조만 쓰겠다더니 이리저리 편법을 써서 110조의 빚을 만들어 냈다. 이 110조가 기업, 정부, 은행의 부실을 더 키웠다. 어차피 폭발할 수밖에 없는 가스통에 가스를 더 채워준 것이다.

또 다시 50조를 주면 편법으로 또 다른 50조 가량을 만들어 100조를 털어 부을 모양이다. 집권당 식구들을 충분히 먹여 살리면서 정권의 기간을 탈 없이 넘기려는 뜻이다.
지난 2년 반, 우리는 경제가 잘 돌아간다고 알아왔다. 110조와 또 다른 국가 채무를 대팻밥처럼 태워서 낸 불꽃을 본 것이다. 또 다른 100조의 대팻밥을 태우면서 정부는 “자 보시오. 경제가 훨훨 잘 타고 있지 않소?” 하면서 나머지 집권기간을 넘기려 할 것이다.

그 후에 남는 건 허탈, 자살, 이민, 소요, 실인, 파괴 등의 온갖 무질서일 것이다. 국민만 망하고, 대팻밥을 챙긴 사람들은 해외로 도주하고, 호살은 모두 차기 정권이 맞고 피를 흘릴 것이다.

DJ는 다시 금년 12월까지 3개월 내에 기업과 구조조정을 끝마치고, 내년 2월말까지 5개월 내에 공공분야와 노사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국민을 그때그때 속이고 넘어가려는 자세다.

정부, 기업이 어우러져 도덕적 해이에 빠져있다. 더 많은 세금, 더 많은 빚을 내서 펑펑 쓰면서 집권기간을 넘기려 한다. 더러는 그 돈으로 월급과 퇴직금을 올리고, 더러는 비자금으로 빼내다가 달러로 바꿔 외국으로 빼돌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은행에 진 빚은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한국의 사기업들 중에 흑자를 낼 수 있는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대우의 경우를 보자. 60여 개 기업들 중에 흑자를 내는 기업은 한 개도 없다. 다른 그룹을 보자. 내부 소문들에 의하면 현대나 삼성이 가지고 있는 기업들 중에서 흑자를 내는 기업은 불과 5%내외다. 90% 이상의 대기업들이 적자를 내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1달러를 쓰면 1달러를 내놓지 못하기 때문에 해마다 빚이 커지는 것이다.

적자를 내는 기업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문을 닫아야 할 때 조용히 문을 닫고 사라져 가는 기업들이 있다. 이러한 기업은 국민에게 빚을 떠넘기지는 않지만 종업원을 실직자로 만든다. 이러한 기업들은 지난해 IMF 고금리를 맞아 이미 도산돼 버렸다.

쓰러지기 전에 욕심껏 빚을 지고, 그 빚을 은행에 전가시킨 기업들이다. 한보, 진로, 동아, 해태, 삼미 등 수년간 쓰러진 대기업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 빚은 정부가 갚아 주었고, 정부가 갚아준 돈은 결국 국민이 부담하고 있다.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빚을 눈덩이처럼 키워 가는 기업들이다. 진도 4와 진도 7의 기업들은 이미 쓰러지고 없다. 지금 살아있는 기업들의 대부분, 특히 대기업들의 대부분이 진도 20의 기업들이다. 대우의 경우 가장 크고 잘나간다는 12개 기업들이 진 빚이 63조이고 그중 18조에 대해서는 이자조차 내지 못했다.

PS. 이 글은 필자(박찬종)가 2000년 10월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연구 중 집필한 글입니다. 후속편은 내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000년 상황과 현재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대기업들의 채무 때문에 죽어나는 건 여전히 국민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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