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지도부체제 맞는 민주당, 제1야당·수권정당으로의 전환기”

손학규 민주당 새 대표가 정부여당에 맹공을 가하고 있다. “위장 운하 건설하는 4대강 사업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연일 현장을 뛰고 있다. “이 대통령은 권력집중 운운할 자격없다”며 청와대의 개헌 시도를 아예 무시하고 있다. 여당에서는 못 봐주겠다는 듯 일제히 견제하며 맞대응 하고 있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공세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역공세도 나온다. 그러나 그럴수록 손학규 대표는 정치권 이슈의 중심에 서고 있다. 거의 매일 ‘손학규 띄우기’ 하는 어느 신문사의 기사 효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급속 상승하는 손 대표의 차기 대권 지지율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아직 지지도 1위 박근혜 의원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얼마 전까지 ‘춘천 칩거’하면서 군소 후보 지지도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하면 차기 대권 구도를 소용돌이 치게 하는 변수임에 분명하다. 정력적으로 여기저기 민심현장을 탐방하는 손 대표의 에너지와 현장정치 또한 한나라당 탈당 후의 ‘100일 민심 대장정’을 상기 시키고 있다. 4대강사업으로 뒤엎어진 팔당유기농 단지로, 새벽 인력시장으로, 광주 서구청장 재선거 지원 유세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도 조금은 활력을 받는 것 같다.

손학규 대표가 정체성의 약점을 그대로 잠재운 채 새롭게 신뢰받는 차기 주자로 일서설 수 있을지, 또 민주당이 새 지도부 체제와 더불어 명실상부한 제1야당, 수권정당으로 일어설 수 있을지, 또 하나의 전환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민주당 내부에서 정체성 논란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손 대표가 이미 3년 전 민주당 진영에 참여해 이번 두 번째 대표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교수의 ‘손벽돌’이라는 비판도 옛일이 돼버린 것 같다. 그렇지만 손 대표보다 민주당의 적자에 훨씬 가까운 김부겸 의원은 자신에겐 여전히 굴레가 되고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최근에 호소한 바 있다. 이에 비해 한나라당에서 요직을 거쳤던 손 대표의 경우 정권 교체를 위한 ‘전략적 선택’의 도구로서 가치 때문인지 대표로 선출됐다.

사실은 민주당 스스로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전통적 정체성이 약화된 가운데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다. 몇 번의 정당 재편을 거치면서 인적 구성은 다양화 됐다. 한때 민주당의 중심을 이루었던 DJ 세력은 이미 중심이 아니다. 김대중 정신과 노무현 가치의 계승을 말하지만 그렇게 조화를 이루고 있지는 못하다. 하기야 이것이 오히려 야권연합의 필요성을 불러오고 연합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지지기반과 대변 집단 또한 중요한 정체성의 기반이다. 민주당의 지지 기반은 여전히 호남을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이다. 그러나 점차 그 집중도가 약화되고 있다. 민주당은 호남의 지지가 강할 때 힘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또 역설적으로 민주당의 전국 정당화에 방해물처럼 보이는 딜레마이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은 호남당 이미지를 탈색시키면서 전국 정당화를 도모했으나 실패했다. 새로운 지지를 확충한 효과보다 지지세력의 분열에 따른 손실이 너무 컸다. 잘못된 인식, 잘못된 접근이었다. 그 결과가 오늘까지 미치고 있다. 전통적 지지 기반은 약화됐지만, 새로운 지지세력은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게 저조한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새로운 지지를 받아 승리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민주당이 새로운 지지세력을 구축한 것은 아니었다. 그 새로운 지지의 대부분은 집권여당에 대한 불만세력 또는 야권 전반에 대한 지지였다. 야권연대를 통해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던 것이다. 1대1 대응구조를 요구하고 있는 승자 독식의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에 아래에서 야권연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야권연대에 의존한 민주당의 전략은 불투명한 당의 정체성을 지속시키는 요인도 되고 있다.

민주당은 10.3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진보 노선을 강조하고 있다. 언론들에서는 왼쪽으로 노선 이동처럼 말한다. 「새정치국민회의」 이래 강령에 들어 있던 중도개혁 용어를 삭제하고, 보편적 복지, 무상 교육 및 의료의 확대, 인권과 평화, 약자 보호 등을 내세웠다. 물론 복지, 인권, 평화, 약자 보호 등은 이전부터 있어왔던 민주당 강령의 기조였고, 민주정부 10년의 국정 기조였다. 최근의 진보 노선에는 보편적 복지로서의 복지 개념, 무상 교육·의료 등으로 진전돼 있다. 민주화 이후 진화된 명제로서 자연스러운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진보정당들과 야권연대가 진보노선을 촉구한 면도 없지 않다.

민주당만이 아니다. 시대변화와 더불어 한국 정당들의 전반적인 노선 이동이 시도되고 있다. 이미 친서민, 공정사회 등을 내세웠던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진보 이동으로 공백이 된 중도개혁을 안고 가겠다고 했다. 물론 민주당 등 야당에서는 구두선, 거짓이라며 비판하고 있지만, 적어도 한나라당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복지의 강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감세기조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도 한나라당에서 나온다. 민주화 이후 오랫만에 여야가 모두 구체적인 패러다임 모색기를 맞고 있다.

정당 재편의 전환기에 한나라당 출신들이 정당대표로 모두 포진해 있는 것도 흥미롭다. 한나라당 출신이 천하통일을 했다는 논평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 차기 대권 지지도 1위의 박근혜 의원, 그리고 제1야당 민주당 손학규 대표, 제2 야당 이회창 대표, 친박연대 승계한 미래희망연대, 소수 진보정당 빼고 모두 그렇다. 분단과 더불어 좌익이 몰락하니 한편이었던 이승만과 한민당이 분화돼 한국 정당의 여야 축을 이루었던 60년 전의 1공화국 초기의 상황이 연상된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민주당은 집단지도체제로 당의 정체성은 당 대표가 아닌 강령과 당원들의 당심에 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손 대표의 중도 노선을 견제하면서 정 최고위원의 ‘담대한 진보’를 강조하기 위한 말로도 해석된다. 손 대표 또한 일찍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주장했었다. 오늘의 민주당에서 내세우는 진보와는 다르다. 손 대표가 새 대표의 반짝 효과를 넘어 지속적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노선 못지 않게 리더십에 대한 신뢰 회복이 관건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와 당원으로부터의 신뢰, 국민으로부터의 신뢰가 우선이다. 지난 17대 대선 당시에도 객관적인 전문가들로부터는 한나라당에서 1위의 평가를 받았지만, 당원과 국민여론에서는 왜 군소 후보에 머물렀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김만흠(金萬欽)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서울대 정치학과 및 대학원 졸(정치학 박사)
-가톨릭대 교수,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역임
-현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현 CBS 객원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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