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에서든 정치는 동네북이다.

국가기관과 더불어 가장 불신받는 영역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더 그렇다.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는 곳인 만큼 비판적 시각으로 감시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가운데서도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현실을 옹호하는 쪽이었다.

정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지, 특별히 정치만 더 나쁠 것도 없다는 주장이었다. 때로는 정치권에 몰매를 가하는 언론계나 학계가 정치권보다 더 후진적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정치 현실을 보면 우리사회의 요구와 기대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동문서답하며 놀고 있는 ‘봉숭아학당’, 알고도 모른 척 버티는 ‘벌거숭이임금님’이 돼 있다.

물론 오늘의 한국정치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그 책임의 대부분도 이들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정치가 민주적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 것은 야당, 특히 민주당의 무기력에 있다. 민주당이 오늘의 이명박 대통령에게 권력을 넘겨준 당사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야당이 돼 있는 오늘에서도 민주진보 진영 위기 논란이 등장했던 참여정부 후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6.2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한나라당의 독주 구조가 지방정치 영역에서 깨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대한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은 여전히 집권여당을 더 지지하고 있다. ‘친서민’에서 ‘공정사회’에 이르기까지 야당이 주도해야 할 정치적 의제도 여당에 뺏기고 있다.

물론 정부여당의 친서민, 공정사회 구호가 ‘반서민, 불공정 정권’의 현주소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정부여당이 구호만 내세울 뿐 정책 기조는 그대로라는 야당의 비판이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구호를 뒤따라가며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야당의 존재감을 회복하기 어렵다.

민주 진영은 민주화 이후 국민 다수가 공감하는 새로운 정치적 담론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이미 지난 몇 년 전 민주화라는 추상적 구호는 동력을 소진했고, 참여정부 리더십에 대한 실망까지 겹치면서 민주진영의 위기를 초래했던 것이다. 추상적 민주화를 넘어서는 구체적인 비전 제시와 민주 진영에 대한 신뢰의 회복, 이 두 가지가 야당이 된 민주진영의 과제였다.

유감스럽게도, 이명박 정부 2년 반, 이 두 가지 어느 쪽도 별 진전을 보지 못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민주주의 위기론을 들며 반독재 운동 시대의 민주화 에너지를 다시 동원하려 했다.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국정운영, 표현 자유와 시민참여에 대한 규제는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할 만했다. 그러나 그것이 반독재 운동 시기의 민주주의 문제는 아니었다. 만일 그런 민주주의 위기 상황이라면 야권은 제도권 의회정치를 포기하고 반독재 투쟁을 했어야 했다. 미디어법 파동 당시 민주당의 대표와 세 의원의 의원직사퇴 표시가 있었지만, 결국 유야무야 됐다.

알다시피 이명박 집권 초반 한국정치는 촛불집회로 대표되는 시민의 직접참여 정치가 주도했다.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시민저항이 수입쇠고기 문제 같은 생활정치 의제를 매개로 나타난 것이었지만, 야당에 대한 불신, 야당의 무기력도 큰 요인이었다. 두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추모 에너지로 직접 참여의 동력이 다시 충전되기도 했다. 물론 대의제가 제도화된 상황에서 정치의 구심점은 대의제일 수밖에 없다. 결국 수권 야당의 중심이 돼야 할 민주당은 대의제 정치에서는 거대 여당에 종속되고, 직접참여 정치에서는 존재 의미가 약화될 수밖에 없는 어정쩡한 위치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6.2 지방선거를 두고 나왔던 것이 (반MB)야권 연대였다. 그렇잖아도 불만이 큰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 심판 선거에서 시민사회 단체까지 가세한 야권 연합은 효과를 보았다. 대통령과 정부, 국회, 지방자치, 한국정치 전 영역의 한나라당 독주체제를 지방자치에서 깨뜨렸다. 야권 출신이 주도하는 혁신자치에 대한 기대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존재감조차 미약한 민주당과 야권의 취약상은 그대로라는 것이 전문 분석과 여론의 지배적인 견해였다. 그 현실은 7.28 재보선에서 직접 보여주었다.

민주당이 10.3 전당대회를 새로운 전기로 삼고자 한다면 그 과제는 분명하다. 민주진영의 위기를 초래했던 두 과제, 리더십에 대한 신뢰의 회복과 추상적 민주화를 넘어서는 국민적 요구를 반영하는 비전 제시를 이뤄내야 한다. 역동적 복지, 담대한 진보, 따뜻한 진보, 정의로운 복지국가 등 지도부로 나서는 사람들이 복지, 진보 등을 민주화 이후 담론으로 제기하고 있다. 맞는 방향이다. 그러나 아직 이런 구호들이 가슴으로 전달되지는 않는 것 같다. 무엇보다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 차기 대권 지지도가 낮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낮기 때문에 문제이다.

전문가들의 절대 다수는 존재감조차 없는 최약체 제1야당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성공적이었다는 지도자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제1야당이 자력으로 집권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연합 전략만을 내세우는데 존재감이 커지겠는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앞장서 반대했던 사람이 갑자기 이쪽에서 계승하겠다고 나서는데 얼마나 호소력이 있겠는가? 민주당을 추락시킨 국민불신이 한미FTA 체결 같은 신자유주의 노선에 있었다며 쓴 반성문이 국민 신뢰를 불러올 수 있겠는가? 과연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불신이 신자유주의에 있었는가? 그렇다면 더 신자유주의적인 한나라당을 왜 대안으로 채택했겠는가?

민주당 전당대회, ‘벌거숭이임금님’들이 주도하는 ‘봉숭아학당’의 학예회가 안 되길 정말 바란다.

김만흠(金萬欽)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서울대 정치학과 및 대학원 졸(정치학 박사)
-가톨릭대 교수,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역임
-현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현 CBS 객원해설위원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