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자존심은 개와 달라서 "아무 것이나 던져주는 대로 먹지 않는다."
호랑이의 카리스마는 쥐와 달라서 "불구대천 원수와 같은 하늘 아래 살 지 못한다."

임인년 초하루, 한반도 남쪽바다 무역선이 바쁘다<사진=정하룡 작가>
▲ 임인년 초하루, 한반도 남쪽바다 무역선이 바쁘다<사진=정하룡 작가>

 

신축년이 지나고, 이제 임오년이다. 지난 해는 하얗고 올해는 검단다. 소는 우직하고 호랑이는 날래다... 
사람들은 시공에 변곡점을 설정하고, 여기에 온갖 의미를 부여한다. 시간의 무상함 때문이리라. 

그 무상함을 달래려함일까, '사자성어'란 것을 개발했다. 가까운 어제, 2020년 한 해를 교수신문은 '아시타비我是他非'라 했다. 대한민국 정치권을 보며 산 사람이라면 '내로남불', 딱 한 마디면 다른 해석이 필요없는 사자성어다. 2021년은 '묘서동처猫鼠同處'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산다는 뜻이다. 같은 뜻이지만 중국 당唐나라 역사서에 '묘서동유猫鼠同乳'라는 표현이 더 실감난다. 고양이와 쥐가 같은 젖을 빤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고양이와 쥐는 천적인데? 자연의 섭리를 벗어났다! 천륜을 벗어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개인의 일상에서 공공의 영역까지, 부모가 제가 낳은 어린 생명을 학대 살해하고, 권력자들의 존재기반인 자기 백성들을 약탈 착취하는, 입에 담기조차 힘든 일들이 다반사로 발생했다.

지난해 모 방송의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드라마 제목 참 잘 뽑았다 싶다.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이노행貍奴行이라는 시에 '단속하는 자와 단속받는 자가 야합하면 못 할 짓이 없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겉으로는 원수인 척하지만 한거풀 들춰보면 '그놈이 그놈인 셈'이다. 중앙대 김누리 교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사를 설명하면서 우리의 정치집단을 '올리가르키'라 규정했다. 올리가르키란 '과두지배'를 뜻하는데, 이런 토양에서 '한 통 속 정치집단'이 형성돼 '패거리 정치','짜고 치는 고스톱'을 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그 구체적 예로  '김종인'이라는 상징적 인물이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고 했다. 

하지만 '침류수석枕流漱石', 시냇물을 베개삼고 돌로 양치질을 한다는 사자성어도 있다. 원래는 침석수류枕石漱流,  "돌베개 하고 시냇물로 양치질한다"는 뜻이다. 세상과 등지고 자연 속 은둔의 삶, 은빈낙도의 삶을 표현한 것이다. 이 사자성어의 유래는 중국 명나라 유명 화가 진흥수(1599~1652)의 <은거隱居 16觀>라는 화첩에 실린 것이다. 

아시다시피 중국 역사에서 남북조시대는 난세亂世였다. 사람들은 세상 진흙탕(이전투구泥田鬪狗)속에 빠지거나 또는 권모술수權謀術數의 희생양이 되는 일이 허다했다. 인류 역사상 전쟁 기근 전염병이 창궐하는 혼돈기에는 이유없이 남을 죽이거나 제 스스로 덧없이 죽는 일이 예사였다. 

같은 세파世波에 대응 방식은 달랐다. 어떤이는 세상의 중심, 윈난雲南으로 들어가 젊은이를 가르치거나 재상이 돼 나름대로 세상을 구원하려는 꿈을 펼쳤다. 남조南詔국은 이들 가운데 뛰어난 인재를 선발해 청평관淸平官(재상,고위관료)으로 등원시키는 개방정책을 펼쳤다. 청평관이 된 이들은 사회시스템과 문화를 발전시켜 윈난을 개방적이고 고품격 문명국가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물론 현대 대한민국 정치판의 '윤핵관', '문고리 3인방'과 같은 면도 없지는 않았으리라...

또 어떤이들은 인간 세속을 등지고 숨어버렸다. 이를 은거隱居라 불렀으며, 이들이 은거한 영역을 죽림竹林이라고도, 송도松濤라고도 했다. 서진西晉에 은거하는 인물 가운데 쑨추孫楚라는 이가 있었다. 은둔자의 삶을 살았지만, 나름 세상에서는 꽤 알려진 사람이었다. 이는 뜻이 통하는 세속의 벗들과 소통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어느날 은둔자 쑨추에게 세상의 벗, 왕지王濟라는 이가 찾아와 냇가에 앉았다. 

왕지가 묻기를 "요즘 어찌 지내시는고?" 

쑨추가 대답하기를 "침류수석, 시냇물로 베개를 삼고 돌로 양치질을 하면서 지낸다네"

왕지가 재차 물었다. "시냇물을 베개로 삼는다 건 이해가 되는데, 돌로 양치질을 하다니?" 

몸을 물에 누이면 당연히 코구멍 귀구멍으로 물이 든다. 깨끗이 씻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돌로 양치하기는 매우 사납다. 이에 쑨추가 대답하기를 "말과 글을 무섭게 씻어 티없이 한다는 뜻이네" 라 한 것이다.

이 이야기가 뒷날 명나라 때 문인화가 노련老莲 천홍소우(진홍수)의 손에서 그림으로 표현됐다. 은둔자들의 삶을 다룬 '16가지 관조十六覌之', 이른바 '은거 16관'의 풍경 가운데 7번째 그림으로 탄생한 것. 그림 제목이 '수구漱句'다. 말과 글을 깨끗하게 씻다枕流漱石는 뜻이다. 

세상과 말을 섞을 필요도 없는 존재, 세속을 등진 은둔자들도 이렇게 '말과 글'을 소중하게 여겼다. 하물며 세상의 중심에 든 정치인들임에랴...

임인壬寅年 3월과 6월에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는 해다. 대한민국 새로운 리더십과 함께 새 시대가 열릴 것이다. 적어도 공갈과 협박으로 가득찬 '험한 입'을 가진 자는 피해야 한다. 미혹과 속임수에 능한 '거짓의 입'도 피해야 할 것이다. 

임인壬寅年은 검정 호랑이의 해다. 임인壬寅은 동북 방향을 가리킨다.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옛부터 호담국虎談國으로 불렸다. '근역강산 맹호기상도槿域江山 猛虎氣象圖'를 보면 안다. 

호랑이의 자존심은 개와 달라서 "아무 것이나 던져주는 대로 먹지 않는다." 호랑이의 카리스마는 쥐와 달라서 "천륜을 벗어나, 불구대천 원수와 적당히 타협하며 같은 하늘 아래 살 지 못한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삼재(전쟁·기근·질병)를 쫓아낸다고 여겨왔다. 호랑이의 기운이 절실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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